이동끄기
 
     
 
 
 
     
    우리나라는 지난 1991년부터 지방이양 내지 지방분권을 위해 비교적 체계적으로 노력해 왔다. 즉 1991년 노태우 정부에서 지방자치제도가 부활 실시된 이후 1998년 김영삼 정부까지는 지방이양합동심의회(총무처 소속 비법정 기구)를 두어 지방분권업무를 추진했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는 1999년 1월 「중앙행정권한의 지방이양 촉진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동년 8월 30일 지방이양추진위원회(국무총리 소속)를 구성하여 2006년까지 운영하였다. 이어 2003년에 집권한 노무현 정부는 2003년에는 관련 대통령령으로, 2004년에는「지방분권특별법」에 의해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대통령직속)와 지방이양추진위원회의 두 기구로 하여금 지방분권 업무를 추진토록 하였다. 그리고 2008년 이후 이명박 정부는 「지방분권촉진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동법률에 의해 설치한 지방분권촉진위원회(대통령 소속)로 하여금 지방분권 업무를 추진토록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들 역대정부의 지방분권 추진을 위한 노력들이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국민들의 기대수준이나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에 비춰볼 때 아직은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즉 역대정부의 분권의지와 분권추진 실적에도 불구하고 현 시점에서 볼 때 누구도 우리나라의 지방분권 수준이 만족스럽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차제에 그 본질적인 원인을 찾아 개선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지방분권은 정치인들이나 언론인들의 아전인수 격 구두선에 그치고 말 것이다.  
     
    실질적이고 지방의 경쟁력을 살리는 지방분권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통령과 정권실제들이 지방분권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이를 실천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의 의지를 실천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범정부적 분권추진기구가 이를 뒷받침해 줄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들과 정권실세들은 지방분권의 필요성에 대한 지식도 갖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설상가상 분권과 자치에 대한 철학이나 의지는 부재했던 것 같다. 더구나 지방분권 추진체계에 관해서는 범정부적 기구 구성이 필요한지도 몰랐고 일단 기구만 만들어 놓으면 분권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더구나 세계화 시대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분권과 자치가 불가피한 정책방향임을 체감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과거 정부에서 실수했던 것 중 또 다른 하나는 비록 형식상으로는 총리소속 내지 대통령 소속 하에 지방분권 추진 기구를 두었지만 실질적으로는 행정부의 관리 하에 두었다는 것이다. 사실 지방으로 분권해야 할 주요한 권한을 가진 곳은 바로 행정부인데, 그 행정부에다 대통령소속 지방분권 추진기구의 관리를 맡겼다는 것은 처음부터 분권을 어렵게 한 조치였다. 분권추진 기구의 위원관리나 실무위원들의 선정과 위원회 운영에 관한 모든 실무와 지원을 행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반대하는 분권내용을 그들과 싸워가면서 강제적으로 지방으로 분권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더구나 국회의 협조가 없어 분권을 위한 개정 법률안까지 이를 지연시키거나 폐기시켜버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하였다는 것은 국회 차원의 지방분권은 생각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지방이양 내지 지방분권 추진 기구는 총리나 대통령 소속으로 회의체의 단일기구로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지방분권은 하나의 기관에서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중앙과 지방의 모든 정부가 협력해야 하고, 국회의 지원과 협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과거 정부에서는 사실상 이러한 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기구 하나 만들어 놓고 분권을 기대해 왔다. 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부에서는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와 지방이양추진위원회로 이원화 했는가 하면, 이명박 정부에서는 지방분권촉진위원회가 활동 중인 과정에서 뒤늦게 지방행정체제개편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지방분권에 역행하는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현 정부의 지방행정체제개편위원회는 동 위원회를 탄생시킨 관련 법률이 국회를 통과할 때부터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지방분권의 가장 난제는 중앙정부 고위공직자들의 중앙집권적 독선적 태도와 지방 불신의식과 지방 경시풍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잘못된 의식구조 때문에 아직도 중앙정부의 공직자들은 지방에 분권하는 것은 가능한 자제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지방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고, 지방의 경쟁력이 바로 국가의 경쟁력이 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중앙공무원들에게 분권과 자치는 먼 나라의 동화로만 들리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아직도 지방분권이 오히려 국가경쟁력을 저하시키는 것이라고 신념처럼 믿고 있다.  
     
   
     
    새 정부는 향후 이 나라를 분권과 자치를 통해 국가경쟁력을 제고시킬 수 있는 이념적 체계를 구체적으로 정립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집권기간 동안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작성하여 국민들에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분권국가로의 헌법 개정에 대한 정책과 방향, 범국가적 지방분권체제의 구축방안, 구체적인 분권 로드맵의 작성, 자율과 자치역량이 강화되는 지방자치제도의 개혁방향, 중앙과 지방의 재원배분에 관한 방침 등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특히 새 정부는 지방분권과 자치발전을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고, 따라서 국가경쟁력 위원회와 지방분권추진위원회의 통합 내지 교류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국정지표로는 ‘분권형 국가로의 지향(헌법개정)’을, 국정목표로는 ‘분권과 자치를 통한 국가경쟁력 제고(국가발전의 패러다임 혁신)’를, 국정과제로는 ‘지방분권과 자치발전의 선진화(법령체계의 대대적 정비)’를 그리고 추진체계로는 ‘지방분권 추진 대통령 위원회’를 중심으로 국회의 지방분권특위의 협력과 행정부 및 지방정부의 지방분권 추진 조직들이 입체적으로 기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새 정부는 과거정부의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지난 여러 정부가 동일한 실수를 반복한 것은 지방분권 추진 기구를 단일의 회의체 기구로 구성하였다는 점과 그 기구의 구성과 운영 대부분을 분권 대상인 행정부에 떠넘겨버렸다는 것이다. 새 정부는 이러한 잘못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지방분권 업무는 어느 특정한 기관이 독자적인 노력만으로 그 효과를 달성할 수 있는 성질의 업무는 아니다. 따라서 새 정부의 지방분권기구는 범정부적인 입체적이며 복합적 기구로 만들어야 한다. 즉 지방분권을 총체적으로 관리하고 추진해 나갈 대통령 소속의 지방분권 추진 기구를 만들고 그 아래에는 중앙정부(행정부 각 부처)의 지방분권추진기구와 지방정부(광역정부와 기초정부)의 지방분권 추진 기구를 각각 두어야 한다. 그리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분권 추진 기구는 각각 어떤 권한을 분권할 것인가와 어떤 것을 분권 요구할 것인가에 대해 지속적으로 조사하고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분권 실적에 대해서는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제도를 갖춰야 한다. 대통령 또한 우선적으로 분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국정의 주요과제로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새 정부는 5천년 우리 역사가 국민들에게 심어 놓은 중앙집권적 수장 중심주의적 의식을 지방분권적, 주민중심적인 의식으로 바꾸어 놓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지방분권 업무는 범정부적, 범국가적 과제로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국회에서도 독자적으로 지방분권추진특별위원회를 가동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국회의 특위는 행정부의 반대로 표류하는 분권과제들을 국회 차원에서 국민의 입장에서 합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에서 넘어온 분권관련 개정 법률안들은 상임위가 아니라 분권특위에서 직접 처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회의 각 상임위원회 위원들은 평소 업무관계로 행정부 고위관리들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분권관련 개정법률안들을 공정하게 처리할 수 없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국회의 분권특위는 대통령 소속의 지방분권추진기구와 긴밀히 협력하여 상호 보완 내지 협력하는 관계로 분권업무를 함께 추진해 나가야 한다. 특히 국회의 분권특위는 학계와 언론계 그리고 시민사회단체 등 민간영역으로부터의 분권 요구에 더 민감할 필요가 있다.
 
     
 

  지방분권 기구의 위상은 단순한 행정부의 권한을 분권하는 기구가 아니라 입법부와 사법부의 권한까지도 필요한 것이면 지방으로 분권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그 위원 구성이나 권한 및 기능 등은 범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범국가적 차원에서 지방분권을 추진할 수 있도록 대통령 소속의 특별위원회로 그 위상을 제고시킬 필요가 있다. 둘째 위원수와 위원의 성분의 문제이다. 위원 수는 10명 내외가 가장 이상적이며 20명이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위원들은 지방분권과 지방자치에 전문성을 가진 자로 위촉해야 하며, 평소 분권지향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바람직하다. 특히 지방분권 추진 기구에는 중앙 집권자들을 위촉해서는 안 된다. 분권하자고 만든 대통령위원회에 집권을 주장하는 위원들이 있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특히 위원 중에 당연직 정부위원을 두는 것은 가능한 억제할 필요가 있다. 과거 그들 때문에 기구 활동이 정상궤도를 이탈하고 분권 실적이 부진했음을 깨달아야 한다. 셋째 위원 비율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대변하는 위원을 균형적으로 위촉해야 한다. 과거 정부의 경우 중앙정부를 대변하는 위원들이 언제나 더 많아 위원구성에서부터 분권을 어렵게 만들었다. 지방분권추진위원회에만은 지방을 대변하는 위원들이 더 많은 것이 바람직하지만 최소한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분권 추진기구의 장은 위원 중에서 호선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분권하자고 모인 위원회에 집권적인 임명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넷째 위원회의 관리와 지원문제이다. 분권추진위원회를 지원하고 사무를 관리하는 지원단은 계약직 민간인 출신들로 구성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각 지방정부로부터 적절한 인원을 파견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종래까지는 모든 정부 차원의 위원회에는 행정안전부에서 직원을 파견하고 실무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기구 운영을 전담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위원회가 행정안전부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것이 분권 추진을 더욱 어렵게 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자치와 분권화는 시대가 요구하는 피할 수 없는 국가생존의 과제이자 전략이다. 세계무대에서 날로 격화되고 있는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역과 지방의 활발한 국정참여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까닭이다. 최근까지도 각계각층에서 지방자치단체의 국정참여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고조되어 왔다. 일례로 지난 6월 28일 한국공법학회와 법제처,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주최한 아시아법제포럼과 함께 열린 제3회 한국공법학자대회 제4분과에서 ‘분권형 국가로의 재구조화’를 모색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현 시점에서 정치권의 화두가 온통 경제민주화와 복지에 쏠려 있지만, 자치와 분권화야말로 새 정부가 복지와 정의, 경쟁력이라는 세 가지 토끼를 잡기 위한 거시적인 국정 구조조정의 핵심고리라 할 수 있다. 대선 후보들마다 다양한 정책들을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이들이 지향하는 목표는 ‘골고루 잘 사는 번영하는 나라’로 집약된다. ‘골고루 잘 사는 나라’는 계층과 지역을 가리지 않아야 할 뿐 아니라 중앙과 지방, 지방 사이에서도, 나아가 중앙에 비해 지방이 오히려 더 잘 사는 나라, 지방이 국정의 또 다른 축이 되는 나라가 될 때 번영의 길로 접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과 지방자치단체의 국정참여는 중앙집권적 타성에 밀려 극히 저조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고, 지방자치는 여전히 중앙집권적이며, 경직성과 비효율성이 강한 낙후된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동안 지방자치를 강화하고 중앙정부 권한의 지방이양을 추진하는 등 자치와 분권화를 향한 많은 시도가 이루어졌으나 오늘날 지역과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거두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자치·분권화가 봉착한 성장의 위기, 애로를 돌파할 법제도적 대안 모색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은 제3공화국 이래로 단일국가(unitary state)-단원제를 기조로 삼아 왔다. 나라 규모나 초기 국가건설과정에서의 어려움을 감안할 때 충분히 그 배경을 이해할 수 있으나, 헌법상 국가구조를 자세히 뜯어보면 중대한 맹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헌법이 국가 수준에서의 대표민주주의와 수평적 권력분립은 비교적 충실히 구현하고 있으나, 국정, 특히 입법과정에 대한 지역의 참여와 이익 대표를 위한 통로를 마련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방국가가 아닌 프랑스가 지역 및 지방자치단체 대표 등으로 구성되는 지역대표형 상원을 둔 것도 바로 그러한 지역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대의민주주의의 핵심고리인 의회에 지역·지방자치단체를 위한 자리가 없는 것이다. 이 점은 헌법학계에서조차 종종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헌법의 중대한 설계미스 중 하나이다. 주지하듯이 헌법은 국회의원의 위상과 임무를 국민 전체의 대표자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 즉 선거구 해당 지역의 대표가 아니며 따라서 해당 지역의 이해관계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헌법의 이론과 실무 양면에서 지배적인 인식이다. 비례대표제를 통해 지역·지방자치단체의 대표를 충원할 수도 있지만 전국구 의석은 어디까지나 정당의 몫일 뿐 지역대표성의 구현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정치학 또는 헌정 현실의 관점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이 사실상 지역 대표로서 역할과 기능을 가진다는 점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헌법 수준에서 지역과 지방자치단체의 국정 참여를 위한 제도적 통로가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바로 이 점이 헌법제도의 설계미스라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 동안 지방자치단체의 입법과정 참여방식으로서 지역대표형 상원 도입에 관한 공감대가 어느 정도 확산되어 온 것도 바로 그 점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2010년 헌법학회의 조사, 2008년 한국공법학회의 조사 결과 등을 통해 그러한 경향이 뚜렷이 나타난 바 있다. 양원제와 이를 통한 지역대표형 상원 또는 가칭 ‘지방원’ 설치 방안은 향후 우리나라 헌법 및 국정운영 시스템에 대한 재구조화를 내용으로 하는 헌법 개정이 이루어질 경우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대안이다. 가령 통일에 대비하여 남북연방제나 이를 전제로 양원제 도입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고 그런 맥락에서 연방제나 분권형 통일국가 구조에서 지역대표기능을 가지는 상원 또는 지방원을 설치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반드시 연방제로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광역지방정부의 대표로 구성되고 그 지역대표성에 기초하여 지역의 이익을 대표하고 필요한 법안을 제안하거나 지역 이익에 반하는 법안에 대한 거부권과 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권한을 지닌 지역대표형 상원 또는 지방원 도입을 구상해 볼 수도 있다. 프랑스식 상원모델은 이를 위한 좋은 참조사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대안을 추진하는 데에는 몇 가지 선행조건이 있다. 우선 현행 지방자치시스템을 그대로 놓고 이러한 구조개편을 추진하기는 여러 가지 난점이 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입법과정 참여에 따른 부작용과 폐단 - 지역적 이해대립 격화로 인한 갈등과 혼란의 심화 우려, 국가 전체의 관점에서 본 국정운영의 효율성 저해 등에 대한 근거 있는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신중하고도 용의주도한 접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계 정립을 위한 사회적 합의 형성이 중요하다. 이것은 마땅히 국회가 주도할 과제이지만 새로 등장할 정부의 역할이 기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분권형 국가를 지향함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있는지, 그 경우 어느 수준의 지방자치단체가 입법과정에 참여할 지위와 권한을 부여받아야 할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가령 광역단체 또는 지방행정체제 개편을 통한 중대규모 지방자치단체 중심으로 구조개편을 선행할 필요가 있는지, 하원으로서 국회의 입법권과 상원의 입법권 배분의 기준과 범위, 한계 등에 관한 대안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입법권 배분이 어렵듯이 국회와 지방상원의 역할 배분 역시 매우 어렵고 그것이 분명히 정립되지 않을 경우 오히려 훨씬 더 심각한 국정혼란을 유발시킬 우려도 없지 않다. 차기정부에서 개헌을 추진하고 이 과제를 목록에 포함시킨다면, 미리 충분한 연구와 조사, 공론화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한편, 국회법이나 지방자치법 등 법률 수준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전국적 협의체나 연합체에게 직접 법률안제출권을 부여하는 방안은 법률안 제출권자를 국회의원과 정부로 한정한 헌법 제52조에 비추어 헌법 개정 없이는 관철시킬 수 없는 방안이며, 헌법 개정이 이루어지더라도 그것이 헌법이 채택한 정부형태나 대의민주주의 구조에 부합되는지 여부를 둘러싼 논란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헌법 개정 등의 험로를 거치지 않고 지방자치단체의 입법과정 참여를 가능케 할 방법은 없는가. 그 가장 대표적인 입법대안이 최근 신동우 의원 등의 국회법개정 법률안을 통해 가시화되었다. 바로 국회에 지방분권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이다.

 
     
    지방분권특별위원회 설치방안은 헌법 개정 없이 법률 개정 수준에서 지방자치단체 입법과정 참여를 위한 제도적 통로를 마련하기 위한 최선의 실행 가능한 대안이라 할 수 있다. 그 동안 국회에 지방분권ㆍ재정분권관련 입법과 지방자치법 제165조 제6항에 따른 지방자치단체 협의체·연합체의 법률 제ㆍ개정 의견을 제출받아 심사할 주체로서 상설 지방분권특별위원회를 구성ㆍ운영하는 방안, 국회 상임위원회 형태로 가칭 ‘지방자치특별위원회’를 설치하여 지방자치 관련 법률안, 결의안 등을 심의하도록 하고, 지방자치에 영향을 미치는 법률안의 입법에 있어 필요적 절차요건으로 법정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어 왔다.
 
     
   
     
 

  이러한 배경에 비추어 볼 때, 국회 지방분권특별위원회를 설치하여 지방자치법 제165조 제6항에 따른 제출사항을 심사하고 지방행정 및 지방재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대한 심사를 전담하며, 소관사항에 관하여 지방자치단체의 의견을 청취하는 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국회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마련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 주요 내용으로는 지방재정 및 지방행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을 심사하기 위하여 상설 지방분권특별위원회를 신설하되, 위원장 1인을 포함한 20인으로 구성하고, 이 법에서 정한 사항 외에 필요한 사항은 국회 규칙으로 정하도록 하며, 소관사항 심사 시 지방자치법 제165조 제1항 및 제2항에 의한 지방자치단체 협의체 또는 그 연합체의 의견을 듣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 역시 매우 타당하고 적실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국회에 지방분권특별위원회를 설치해야 할 필요는 다음과 같이 집약된다. 첫째, 지방자치법 제165조 제6항에 따라 지방자치단체 장 등의 전국적 협의체에 부여된 의견제출권 행사를 받아 처리할 국회법상의 절차 및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둘째, 지방재정 등 지방자치단체 관련 사항에 대해 직접 이해 당사자인 지방자치단체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방재정 관련 사항, 사무의 재배분, 특별지방행정기관 지방이양 등 주된 지방분권과제는 다수 중앙부처와 관련되어 있어 일반 상임위원회 체제로는 심사하기 어렵기 때문에 집중 심사를 가능케 할 상설 특별위원회가 필요하다. 국회 내 지방자치단체 관련 사항은 행정안전위원회의 소관이지만, 대통령 소속 지방분권촉진위원회가 추진한 지방분권·지방이양 관련 다수의 법률안이 제18대 국회에서 제대로 심의도 못 받고 폐기되었다. 셋째, 그 동안 지방 관련 사항에 대한 국회 입법과정에서 지방정부나 지방자치단체 협의체의 의견 반영을 의무화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학계와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왔다. 일례로 2008년 한국공법학회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국회법 등을 개정하여 정부 각 부처와 국회 상임위원회 입법심의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 협의체의 의견수렴을 의무화하도록 제도화하는 데 대해 긍정적 응답이 85.4%로 부정적 응답 14.6%에 비해 약 6배 정도 높게 나타난 바 있었다.

  위와 같은 이유에서 국회에 지방분권특별위원회를 설치하여 지방자치법 제165조 제6항에 따른 지방자치단체 협의체의 법률 제ㆍ개정 의견을 제출받아 심사하도록 하고 지방자치 제도개선 관련 입법, 지방분권·재정분권관련 입법을 중립적 입장에서 처리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지역대표의 국정참여가 이루어져 우리나라의 대의제가 더욱 더 튼튼하고 충실한 풀뿌리 토대 위에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방자치단체의 입법과정 참여 문제는 과거 중앙집권적 타성에 젖어 당연시 해 왔던 국가중심주의의 유제를 재검토하는 문제이다. 오늘날 지방자치 없는 국정은 더 이상 생각할 수조차 없다. 지방자치단체는 이미 국정의 일상 한가운데 들어와 있다. 근 7-8할에 가까운 국가사무를 수행하면서 국정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중앙집권의 억지일 뿐이다. 중앙통제가 다른 모든 요구들을 압도하는 현실 속에서는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기대할 수 없고, 자치분권형 국가발전전략이라는 한 차원 높은 목표 역시 수사적(rhetoric) 수준에 그치고 만다. 지방자치단체의 입법과정 참여 문제는 실은 대표되어지는 자와 대표자 간의 주인-대리인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이자 대의민주제의 '끊어진 고리'(missing link)를 잇는 대안이다. 실용적 관점에서도 지방자치단체의 입법과정 참여가 가지는 긍정적인 측면, 즉 지방의 아이디어와 지혜의 상향식 반영과 국가와 지방, 지방상호간 갈등해소를 통한 사회적 비용의 회피 등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의민주주의 헌법구조에서 허용되는 최대한까지 참여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소망스럽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최근 신동우 의원 등이 국회법개정 법률안을 추진 중인 지방분권특별위원회 설치방안은 헌법 개정을 거치지 않고 법률 수준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입법과정 참여를 가능케 할 최선의 실행 가능한 대안으로서, 장기적으로 지역대표형 상원 도입을 통한 분권형 국가구조를 지향하는 첫 걸음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물론 지방자치단체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나 지역 간 첨예한 이해대립 사안의 대두 가능성 등 여러 가지 어려움도 예상되지만 제도와 운영을 통해 극복할 수 없는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앞서 지적했듯이 이것은 기존의 국회법 제165조 제6항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우선 긴급한 필요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치분권형 국가발전전략을 위한 제도적 인프라를 조성하는 의미를 지닌 중차대한 입법과제이다. 국회가 유연한 자세로 충실한 심의를 통해 조속히 입법을 실천해 나가야 할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