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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내음 가득한 우리고장 특산물

글 | 김영빈 푸드스타일리스트

지루할 만큼 길었던 겨울이 끝이 났다. 겨울과의 이별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봄을 맞으면 누구랄 것 없이 몸이 나른하고 졸음이 쏟아지고 입맛도 없어진다. 억지로 먹은 점심은 춘곤증을 몰고 온다. 봄이 오면 우리의 신체는 겨울의 동면기에서 봄의 활동기로 들어간다. 그로 인해 다량의 비타민과 무기질을 필요로 하게 되어 부족된 영양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른함, 춘곤증, 피로와 무기력증을 호소하게 된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입춘오신반(立春五辛槃)이라 하여 봄이 시작되는 입춘이면 움파, 산갓, 당귀 싹, 미나리 싹, 무싹 등의 매운 맛의 새로운 봄채소들을 새콤하게 무쳐 먹고 오장 육부에 영양을 비타민과 무기질을 공급해 주었다. 언 땅과 물을 녹이고 산과 들, 바다에 지 천으로 쏟아져 나오는 나물과 해산물들은 무기질과 미네랄이 풍부하고 쓴 맛, 신 맛 등을 가지고 있어 겨우내 무뎌진 머리와 내장기관을 자극하여 입맛을 찾아주고 신진대사를 원활히 하는 봄의 보약이라 할 수 있다. 이 봄의 보약들은 산해진미를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한 맛과 모습으로 전국 방방곡곡에 산재 해 있다.

나른한 입맛을 깨우는 중부의 풍미

서울과 가장 가까운 경기도에는 파주의 물쑥, 일산의 햇열무, 소래포구의 꽃게, 강화의 쑥이 유명하다. 물쑥은 습지나 냇가에서 자라 는 다년생의 나물로 잎과 줄기를 버리고 뿌리만 다듬어 먹는데 일반 쑥보다 쌉살한 맛과 향이 좋아 봄 철 잃어버린 미각을 돋우는데 한 몫을 한다. 열무는 일년 내내 재배하지만 잎이 가장 여리고 많이 달아지는 봄 열무가 제일이다. 봄 열무는 여려서 생으로 뚝뚝 끊어 비빔밥이나 생채를 해 먹으면 향이 좋다. 소래 포구는 예로부터 서울, 경기 일대의 해산물 공급처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봄과 함께 찾아오는 살이 실한 봄암케는 실로 여러사람 발길을 바닷가로 돌리는 강력한 매력의 맛을 지녔다. 강화도는 해풍 맞고 자란 약쑥이 유명하다. 쑥이 웃 자란 향과 효능이 진해진 것이 약쑥인데 약쑥도 약쑥이지만 이른 봄 해풍의 향기를 간직한 강화도의 향내 좋은 약 쑥은 봄 철 입맛 살리는 국으로 향기 좋은 떡으로 변신하여 우리의 입맛을 살려 준다.

충청도의 봄은 서해 포구의 풍년 인사와 함께 온다. 당진의 간재미,무창포의쭈꾸미,태안의 바지락, 괴산의 다슬기등이 대표적이다. 간재미는 이른 봄부터 6월까지가 살이 실한데 6월 이후의 간재미는 산란기가 지나 살이 늘어져 맛이 없다. 간재미는 회로 떠서 새콤달 콤하게 무쳐 먹으면 집나갔던 입맛도 돌아오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머릿속에 보석 같은 알이 꽉 찬 봄 주꾸미는 보는 것만으로도 생 명력이 넘친다. 조리법과 먹는 법이 다양하지 않은 것은 주꾸미가 워낙 몸집이 작기 때문인데 알 찬 주꾸미는 낙지보다 달고 문어보 다 찰지다. 봄이면 서해에는 무창포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주꾸미 축제를 하니 가족 나들이 코스로 한 번 쯤 발길을 돌려 봄 직하다. 바지락은 일 년 내내 볼 수 있지만 봄철에 살이 가장 실하다. 맛도 달기가 최고이다. 태안의 펄에서 나고 자란 바지락은 칼국수로 유명 하지만 이외에도 무침, 회, 볶음, 전, 튀김은 갖은 요리로 변신해도 누가 뭐랄 것 없는 별미 먹을거리가 된다. 다슬기는 지방에 따라 우렁쉥이,고동, 올갱이, 고디, 보말등으로 불리는데, 물이 맑은 개울가의 바위에 붙어 살아 다슬기가 사는 곳은 수질이 좋다는 반증이 된다. 다슬기는 시력보호, 간기능 개선, 숙취해소에 효능이 있어 웬만한 주당들은 눈독을 들이는 봄 먹을 거리이다.

강원도는 인제의 더덕황태, 정선의 곤드레나물, 양구의 두릅, 곰취, 속초의 가자미등이 유명하다. 겨우내 칼바람에 얼말라 살이 더덕 처럼 일어나는 황태는 맛도 맛이지만 봄 철 피로회복과 간기능 개선에 효능이 있어 더욱 좋다. 정선의 5일장에 나가면 여러 산나물을 볼 수 있다. 그 중 일미는 곤드레만드레 봄 바람에 머릿결 날리며 자란 곤드레가 아닐까 싶다.곤드레는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지만 곤드레 나물밥을 하여 먹으면 그 풍미가 더욱 좋다. 양구는 청청한 자연 환경으로 각종 농산물의 보고이지만 봄의 제왕 두릅과 곰취 등의 산나물이 더욱 유명하다. 쌉쌀한 향기가 있는 두릅은 살짝 데쳐 초고추장만 찍어 먹어도 더 이상의 요리가 필요 없다. 곰 발바닥 을 닮은 곰취는 여린 잎에 밥 한 술, 쌈 장 한 점 올려 먹으면 강원도의 봄 향기를 한 입에 만끽할 수 있다. 설악산의 눈이 녹아 동해로 흘러들면 동해 바다의 봄이 온다고 동해 어부들은 말한다. 이 동해 바닷바람과 함께 오는 봄 가자미는 살이 쫀득하고 살이 연해 싱싱 한 횟감으로 제일이다.

경상도는 남해의 따뜻한 봄기운과 함께 올라온 통영 도다리, 청도미나리, 김해의 참죽, 하동의 녹차등이 유명하다. 봄 제 철 도다리는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쑥과 함께 국을 끓여 도다리 쑥국을 끓여 먹어야 경남에서 봄을 났다 말할 수 있다. 청도의 미나리는 봄과 함께 살이 찐다. 청도군 청도읍 초현리, 음지리, 평양지, 상리 일대를 한재라고 부르는데 이 곳은 남산과 화악산 사이의 계곡을 따라 형성된 마을들로 전국에서 유명한 한재 미나리의 산지이다. 봄 미나리는 겨우내 쌓인 노폐물과 독소를 해독하는 디톡스 효과도 뛰어나 먹으면 미남 미녀가 된다. 원래는 가죽이라 불리지만 스님들이 먼저 먹지 시작하여 가중나물로도 불리는 이 나물은 참죽 나물만 식용으로 먹는다. 향이 좋고 씹는 맛이 좋아 나물, 전, 부침, 장아찌 등에 고르게 사용할 수 있다. 하동은 골골이 녹차 나무가 장관을 이룬 녹차의 산지이다. 하얀 벚꽃이 바람에 날려 지면 녹차의 어린 잎이 올라오는데 곡우 전 후로 올라오는 어린 잎을 최고로 치며 우전(雨前)이라 부른다.

맛의 고장 전라도는 충청도와 서해를 경상도와 남해를 나누고 있어 많은 봄 특산물을 나누어 가지지만 벌교의 꼬막과 고창의 보리순, 구례의 냉이, 달래 등의 나물, 담양의 죽순, 지리산의 고로쇠 수액등이 유명하다. 끝없이 펼쳐진 벌교 개펄의 영양의 가득 간직한 꼬막 류는 혈액의 성분이 헤모글로빈이 풍부해 피가 빨간 색을 띠는데 빈혈이나 혈액순화에 도움을 준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꼬막은 벌교 지방의 명실공히 특산품으로 봄 철 벌교로 나들이를 가면 꼬막만으로 차려진 한정식 상차림을 받아 볼 수 있으니 과히 그 조리법과 맛을 상상하고도 남겠다. 고창의 청보리순은 고창의 특산품 장만큼이나 유명하다. 언 땅을 뚫고 올라온 초록의 생명력은 또 다른 특 산품 홍어애와 함께 끓여져 보리순애탕으로 이름을 날린다. 구례는 냉이, 달래등의 소소한 나물거리들을 봄에 지천으로 볼 수 있다. 산과 평지가 조화를 이룬 구례의 특성상 타 지방보다 형 좋고 영양가 풍부한 봄 나물을 맛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선비의 고장 담 양은 봄이면 대 숲에서 죽순자라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죽순이 정신없이 올라온다고 한다. 죽순은 봄의 별미이긴 하지만 껍질을 벗기 고 삶아 아린 맛을 빼는 과정등의 어려운 손질법을 거쳐야 제대로 된 죽순 맛을 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다. 5월만 넘어가면 죽순이 억 세어지고 쓴 맛이 생겨 먹을 수 없으므로 발 빠른 미식가라면 죽순소식과 함께 잰 걸음으로 서둘러야 제 철 햇 죽순의 향취를 느낄 수 있다. 봄 기운이 시작되는 2월 중순부터 4월 경까지 채취되는 고로쇠 수액은 미네랄이 풍부하고 특유의 맛과 향이 있어 건강에 좋 다고 알려져 있는데 특별히 열처리를 하거나 하지 않아 봄 잠깐 맛 볼 수 있는 별미 식품이다.

동해 바다에서 봄 향기를 가득 풍겨내는 울릉도는 햇고사리와 명이나물, 부지갱이나물등이 유명하다. 육지와 떨어져 있어 울릉도 만 의 자생 식물로 이루어진 톡특한 봄 나물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해마다 4월이면 울릉도나물 축제를 열어 그 맛과 향기를 널리 알리고 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햇고사리는 나물이나 볶음으로도 맛있지만 봄 조기와 함께 조려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명이나물은 잎 이 여려 장아찌나 김치로 담가 오래 두고 먹는데 고기요리에 함께 싸 먹으면 고기의 누린내를 없애주고 소화를 도와 준다. 부지갱이 나물은 독특한 맛과 향이 일품인데 이른 봄 여린 것을 무쳐 먹거나 말린 것을 불려 무쳐 먹는다. 울릉도와 독도는 마음 먹고 나서도 일년 중 볼 수 있는 확률이 그리 높지 않는 신비의 섬이다. 울릉도의 봄 정취를 마음껏 누리고 싶다면 기상상태와 배편을 꼼꼼히 체크 해야 한다.

한국에서 가장 이국적인 정취를 간직한 제주도의 봄에는 유채 나물과 모자반, 톳, 미역등이 유명하다. 씹을때 톡톡 터지는 톳 은 돼지를 푹 고와 만든 육수에 끓인 모자반 국, 어린 미역으로 끓인 부드러운 미역새국과 함께 봄에 국으로 끓여 먹는 대표 적인 해조류이다. 봄 제주도의 해초들은 칼슘이 풍부해 어린 아이들의 성장이나 여성들의 골다공증에 좋고 중금속 배출에 도움이 되는 알긴산이 풍부해 황사가 불어오는 봄 철에 더욱 좋다. 노오란 꽃이 피어 절경을 이루는 유채는 꽃이 피기전에 채취해 잎을 나물로 먹는다. 하루나 라고도 부르는데 된장을 풀어 국을 끓이기도 하고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고 전을 부쳐 먹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봄은 맛있는 먹을거리와 함께 시작된다. 여기 소개한 여러 가지 봄 특산품과 함께 겨우내 텁텁했던 묵은 입맛 을 상큼한 봄입맛으로 바꾸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