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의 요구에 못미치는 더딘 발걸음

지자체의 자치조직권은 과거 50년 동안 조금씩 확대되어왔다고 할 수 있다. 1964년 지방의 기구와 인력에 대하여 중앙부처가 세세하게 통제하는 개별승인제를 채택한 이후 1988년 기준정원제로 발전하였으며, 1994년에는 지방자치제 부활을 계기로 표준정원제로 발전하였다. 표준정원제는 회귀식에 의해 산출된 표준정원의 범위 안에서 지자체의 기구와 정원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자치조직권을 크게 신장시키는데 기여하였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표준정원을 초과하는 기구와 정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중앙부처의 통제를 받도록 하였다는 점에서 자율성의 제약은 여전하였다고 볼 수 있다.

2007년에는 인건비 총액의 범위 안에서 기구와 정원을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는 총액인건비제를 채택하였다. 그에 따라 정원에 관한 자율성과 더불어 과장급 이하의 기구에 대해서도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총액인건비제 역시 지자체의 행정수요 변화에 따라 총액인건비를 탄력적으로 조정하지 못하는 한 기구설치와 정원관리의 자율성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하여 2014년부터 기준인건비제를 도입하였다. 기준인건비제는 안전과 복지 등 지자체의 행정수요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인건비의 1-3%를 추가적으로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처럼 지자체의 자치조직권은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의 요구에 훨씬 못미치는 황소걸음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총액인건비제와 기준인건비제의 경우에도 지자체의 공무원 정원에 대한 재량의 폭을 약간 확대하였을 뿐 상위기구의 설치에 대해서는 여전히 중앙정부(시행령)의 통제 하에 묶어두고 있다. 즉 국장급(광역의 경우 3급, 기초의 경우 4급) 이상의 기구 설치에 대해서는 시행령으로 규정함으로써 지자체의 조례에 의한 자율적 설치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완전 자율성 부여와 예상되는 문제점

지방자치제의 정신에 비추어볼 때 자치조직권에 대해서는 완전히 지방정부에 이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처럼 지자체의 행정기구와 정원에 대하여 법률과 시행령의 범위 안에서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정하도록 규정한 것은 지방자치제의 기본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 원칙적으로 지자체의 기구와 정원은 지방의회의 조례에 의해 정하도록 하는 것이 지방자치제의 본지에 부합하는 것이다. 일본, 영국, 미국 등 지방자치 선진국의 경우에도 지자체의 기구와 정원에 대해서는 지방의회의 조례로 정하도록 하거나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추세이다.

지자체의 기구와 정원에 대한 결정권을 완전히 지자체(지방의회에 의한 통제)로 이양할 경우 여러 가지 문제점이 예상되는데, 특히 공무원 수 및 상위기구(국장급)의 증대 가능성이다. 제주도의 사례를 들어 2005년 4,809명에서 2006년 5,170명, 2007년 5,137명 등으로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실국본부 등 상위기구의 측면에서는 8개에서 13개로 늘어났다.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실국본부 등 상위기구의 수가 안정화되고 있으나 초반에 충분한 성과를 거두었으므로 이후에는 그 필요성이 낮았다고 볼 수 있다. 박해육·최정우(2013)의 연구에 따르면, 2005-2011년까지 우리나라 지자체를 대상으로 총액인건비제를 전후하여 지자체의 조직기구는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고, 공무원의 정원에 있어서도 상위직 공무원은 증대된 반면 하위직 공무원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구와 정원에 관한 권한을 지자체로 완전 이양할 경우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사후에 감독(통제)하면 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먼저 이양하고 사후에 문제가 나타날 경우 감독하는 방식이 사전에 세세하게 통제하여 지자체의 창의성을 위축시키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지자체의 자율적 결정을 보장하되 그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지방자치제의 기본 정신에도 부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구와 정원은 경직성이 높고, 불가역적 성격이 강하여 한번 정해진 기구와 인력을 되돌리기 어렵다는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즉 공무원의 경우 헌법에 규정된 신분보장에 의해 한번 채용되면 30-40년은 지속되므로 사후적 보완이나 통제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또한 모든 지자체에 대한 자치조직권 이양이 대대적인 기구와 정원의 증대로 이어질 경우 여론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지자체당 평균 100명씩 증원할 경우 인건비만 1천337억 원이 소요되고(5.5천만 원x2,430), 30년 간 4조 원을 상회할 것이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자율적으로 조정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때까지 인내하지 못하는 문제가 초래될 수 있다.

지자체의 자율통제 능력은 있는가?

지자체에게 권한을 넘겨줄 경우, 지방의회에서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가 하는 문제와 더불어 있다면 모든 지자 체에서 유사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지방의회의 역량은 정당공천제에 의해 중앙당으로부터 제약을 받고 있으며, 특히 지역주의 정당구조에 의해 일부 지역의 경우 지방의회가 자율적으로 권한을 행사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아울러 지방의회가 기구와 정원에 대한 세밀한 통제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전문적 식견과 지식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에서 기구와 정원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었던 것도 특별법에 의해 설치된 정책자문 위원회의 지원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상임위별로 3명씩 총 21명의 전문가(박사학위 소지자 또는 그에 상응하는 자격과 경력을 소유한 5급 상당의 공무원)를 두고 있는데, 이들이 전문적인 검토를 통해 지방의회를 지원하고 있다. 다른 지자체의 경우 전문보좌관을 둘 수 없으므로 기구와 정원에 대한 지방의회의 통제능력이 담보 되기 어렵다.

더욱이 법률의 개정에 의해 전문보좌인력을 두도록 규정하더라도 다수 기초지자체들은 재정능력상 이를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 지자체의 재정력 격차 역시 사후적 통제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즉 재정력이 미약한 지자체의 경우 자치조직권의 남용이 발생하더라도 적절한 제재를 취하기 어렵다. 통상 자치조직권을 남용한 지자체에 대해서는 중앙정부의 이전재원을 인건비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데, 인건비의 대다수를 지방교부세에 의존 하고 있는 지자체에 대해서는 이러한 수단을 사용하기 어렵다. 참고로 2013년 현재 자체재원으로 인건비를 충당하지 못하는 지자체는 78개에 이르고 있다.

현실적 대안: 지자체의 선택에 기초한 정책실험

이상의 제약을 고려할 때 모든 지자체에게 동시에 자율권을 부여하는 방식보다는 순차적, 차등적 적용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차등적 적용을 위한 기준은 다양하다. 일본은 재정력과 의지, 우리나라는 인구, 영국은 성과평가, 북유럽은 지자체의 정책의지(신청) 등에 따라 권한이양의 수준을 달리하고 있다. 따라서 지자체의 선택에 기초한 정책실험(차등적 적용)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방식은 프랑스에서 시행하고 있는 정책실험과 유사한데, 5년간 기구와 정원에 관한 자치역량을 점검할 수 있다. 특히 1년간 시범실시 후 곧바로 전국으로 확대하는 방식과 달리 5년간 실시한 후 성과가 낮거나 가능성이 희박할 경우 폐기시킬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첫째, 스스로 기구와 정원을 관리할 의지가 있는 지자체를 신청받는다. 이는 특정 지자체에 대한 무조건적인 특혜를 주기보다는 정책의지와 성과를 전제로 자치권을 강화하는 조치에 해당된다.

둘째, 5년간 성과(기구와 정원에 대한 성과, 지방의회의 통제역량, 지자체 주민과의 거버넌스 등)를 평가하여 기구정원에 관한 권한의 이양여부를 결정한다.

셋째, 성과가 기대한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권한이양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고,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지자체도 스스로 포기하면 이양받지 않을 수 있다. 권한이양에 성공한 지자체는 5년 단위의 평가를 통해 연장 또는 탈락이 결정되고, 새로운 지자체도 이후의 정책실험(second round)에 참여할 수 있다.

넷째, 정책실험에 참여한 지자체와 그에 성공한 지자체는 권한이양과 동시에 일정한 제약을 받게 될 것이다. 자치조직권의 이양과 더불어 지방의회에 의한 효과적 통제를 담보하기 위하여 상임위별 전문보좌관을 둘 수 있도록 한다. 일본처럼 표준정원을 초과하는 지자체에 대해서는 지방교부세 등을 삭감할 수 있다. 지방교부세의 영향을 덜 받는 지자체에 대해서는 향후 일정 기간 신규 정원을 동결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의견차, 지방에 대한 중앙정부의 불신, 지자체 간 자치역량의 차이 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정책실험에 기초한 차등적 자치조직권 이양은 정책의 채택가능성을 높이는 동시에 불가역적 제도의 폐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