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지사뉴스레터 2014년 6월호

The Greatest City on Earth

‘The Greatest City on Earth’ 런던시가 2020년을 목표로 교통, 주택, 환경, 문화, 경제 등 각 분야별로 도시 발전의 비전을 정리한 자료인 ‘2020 vision’ 자료의 제목이다. 한국의 도시를 포함한 세계의 많은 도시들이 기업하기 좋은 도시, 살기 좋은 도시, 깨끗한 도시 등 여러 가지 구호를 도시 미래비전으로 발표하고 대외적으로 홍보하지만, 런던시 처럼 간명하면서도 야심 찬 목표를 제시한 경우는 흔치 않은 것 같다.

위대한 도시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는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1800년에 벌써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구 1백만 명이 넘었고, 세계 최초로 1863년에 지하철이 다니기 시작했다는 화려한 과거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도시이고, 또 가장 많은 언어가 사용되는 도시라는 점을 보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라는 목표가 허황된 홍보 구호에 그치지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런던을 다녀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런던에는 짧게는 200-300년, 길게는 1,000년 이상 오래된 건물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지하철을 타거나 시내를 걷다 보면 마치 인종 전시장처럼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다양한 언어를 쓰는 것을 직접 확인하게 된다. 고색 창연한 건물들 사이로 각양 각색의 피부색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 런던을 상징하는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최고라는 의미는 역설적으로 오래되고, 낡고, 불편한 것을, 최다라는 의미는 복잡하고, 시끄럽고, 갈등이 많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래된 역사적 건물들은 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살기에는 불편하고 에너지 비효율 적이다. 오래된 지하철은 항상 고장 또는 사고의 위험성을 동반하며 불결하고 또 불편하다. 전 세계에서 모이는 많은 관광객은 복잡한 교통과 편의시설 부족의 문제를 낳고, 다양한 민족과 언어는 항상 대립과 갈등의 소지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대도시에서 겪는 교통문제, 주택문제, 환경오염문제, 주민갈등문제, 실업문제, 빈곤문제 등의 과제가 런던과 같이 오래되고 복잡한 도시에서는 더 해결이 어렵고 복잡하고 많은 비용이 들 수 있다. 이 글을 통하여 산적한 대도시의 문제들에 대처하고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를 향하여 나아가는 런던시의 모습을 일부나마 들여다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ast End와 West End : 런던시의 균형발전 정책

영국의 국영방송 BBC1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는 연속극(Soap Opera) 중 ‘이스트엔더스(Eastenders,이스트엔드에 사는 사람들이란 뜻)’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시청율이 30%에 이르는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연속극인데 런던 동부의 가상의 지역인 왈포드구(London Borough of Walford) 일대의 시장, 병원, 거리, 펍을 배경으로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이야기를 줄거리로 하는 드라마이다. 흑인, 아시아인, 터키인, 폴란드인 등 다양한 소수민족과 장애인 등을 등장인물로 하여, 실업, 범죄, 동성애, HIV, 가정폭력, 성범죄 등의 이야기를 실제적으로 그려내어 영국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것이 높은 인기의 비결이다.

이스트엔드 지역은 런던의 시티지역 동쪽과 템즈강 북측 지역을 지칭하는 지역으로 런던의 9개 구(Borough)에 걸쳐 있으며, 이스트엔더스에서 묘사하는 대로 소수민족, 장애인 등 중하층의 서민들의 주거 지역이다.

서민중심의 거주지역인 이스트엔드와 대비되는 곳이 웨스트엔드 지역이다. 웨스트엔드는 흔히 런던의 대표적인 뮤지컬 극장들이 집결한 지역을 말하지만, 넓게는 시티지역 서쪽의 서부 런던 일대를 일컫는다. 웨스트엔드는 런던에서 가장 부유하고 문화적인 지역으로 웨스터민스터궁전, 켄싱턴궁전, 화이트홀 같은 관공서와 자연사박물관, 로얄알버트홀, 뮤지컬극장 같은 문화시설, 해롯백화점, 리전트스트릿 등의 고급 쇼핑시설, 첼시지역의 최고급 주택가 등이 집결된 런던을 대표하는 지역이다.

초창기의 런던이었던 시티지역을 가운데 두고 이스트엔드와 웨스트엔드, 양 지역의 불균형적인 발전은 런던시가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런던 동서지역의 격차는 소득, 교육, 주택 등의 각종지표에서 나타나는데 런던지역의 각종 데이터를 지도상에 나타낸 런던맵의 자료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런던시는 동서지역 간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하여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그 대표적인 것이 런던올림픽의 동부 런던 개최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개최한 올림픽 주경기장은 런던 북동부 스트라트포드구에 소재하고 있으며, 올림픽 이후 이 일대(퀸 엘리자베스 파크)를 공원, 주거, 상업시설 등으로 재개발하는 사업을 현재 보리스 존슨 시장이 가장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적인 금융중심지인 카나리워프와 로얄 알버트독 지역의 항만재개발, 런던의 도심공항인 시티공항 건설, IT, BT, ET 등 첨단 정보산업의 집적지로 제2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테크시티(Tech City) 육성 등이 모두 런던의 동부지역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들이다.

하지만 위의 각종 지표에서 보듯이 아직까지는 동서지역 간에 소득, 교육, 보건 등 전체적인 삶의 질에서 차이가 있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런던시의 중장기 계획인 런던계획(London Plan)에서는 동부지역에 대한 교통, 주택, 상업시설 등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계획을 담고 있다.

런던시 가운데 우뚝 솟은 73층의 건물이 있다. 피라미드 모양으로 생긴 이 건물은 EU에서 가장 높다고 하는데, 이 건물 꼭대기 전망대에서 런던시를 내려다 보면 특이한 전망을 보게 된다. 서쪽은 버킹엄궁, 국회의사당 등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하이드파크 같은 넓은 공원과 녹지에 둘러싸인 모습이, 눈을 돌려 동쪽을 보면 영국에서 보기 드문 고층건물의 숲 사이사이로 낡고 오래된 주택들이 보인다. 동서 간 불균형의 현실과 동부지역 개발을 통하여 이를 해소하려는 런던시의 노력이 동시에 보이는 전경이다. 앞으로 20, 30년 아니 50, 100년 뒤 이곳에서 어떤 전망이 보일지 궁금하다.

Coin Street Community Builders : 주민중심 재개발 사례

런던 중심부의 템즈강 남쪽 강변에 옥소 타워(Oxo Tower)란 건물이 있다. 이 건물에서 보는 템즈강의 야경이 아름답다고 하여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이 옥소 타워에서 영화 ‘애수’의 배경으로 유명한 워털루브리지까지 템즈강변을 따라서 강변 산책로(Thames Walkway)가 이어져 있어서 관광객뿐만 아니라 런던시민들도 주말이면 즐겨 찾는 런던 중심부의 명소이다. 그런데 이 강변 산책로 안쪽에 3층짜리 연립주택 같은 집들이 일련번호를 붙여서 나란히 있다. 방 1, 2개짜리 서민용 임대주택인 것이다. 어떻게 런던의 한 중심부 템즈강변 가장 좋은 위치에 서민용 임대주택이 있을까?

사연은 4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 지역은 템즈강의 수운을 이용한 화물수송의 해안거점으로 정비되어 대영제국의 물자집산기지로서 도크를 중심으로 수륙수송 시설과 공장, 창고, 노동자 주택들이 밀집한 지역이었다. 제2차 대전 후 해운업이 쇠퇴하고 부두가 폐쇄되자 실업률이 증가했으며 인구감소와 함께 지역도 쇠퇴하였다. 1974년 민간개발업자인 그레이트코트 컴퍼니는 유럽 최대의 초고층 빌딩 건설을 계획하고 바닥 연면적 13만㎡인 사무실과 호텔 개발을 신청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노동자가 살며 일하는 터전’으로써의 도시 재개발안을 원했다. 그리고 19년 가까이에 이르는 반대운동결과 1984년 비영리 마을 만들기 사업체인 ‘코인스트리트 커뮤니티 빌더스(Coin Street Community Builders)를 설립해 스스로 재개발하는 사업체를 조직했다. 코인스트리트 마을 만들기 사업체는 취득한 5.2ha의 토지를 에셋매니지먼트(Asset Management)하여 시장원리에 입각한 재개발 사업으로 배제되는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뿐만 아니라 녹지, 공원, 강변산책로, 복지서비스 제공 같은 도시재생사업을 실현하였다.

최초 개발이 시작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코인스트리트 개발은 진행 중이다. 최근 상업적 개발에 치중하여 주민 중심의 재개발의 취지가 흐려졌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지만, 대부분의 템즈강 주변이 대규모 자본을 무기로 한 부동산개발회사에서 고층빌딩, 고급아파트 중심으로 상업적 개발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코인스트리트 재개발사업은 영국의 시민사회의 저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행정이 협력하여 성공적인 재개발을 이룬 모범적인 사례로서의 그 의미는 여전히 크다고 하겠다.

【 코인스트리트 재개발 사업의 성공요인 】

상업성을 배제한 주민중심의 재개발사업이 런던시의 가장 중심지에서 성공한 요인은 무엇일까?필자의 생각으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런던시의 강력한 의지이다. 앞서 서술한 대로 런던시는 부동산개발회사에서 제안한 고층빌딩 중심의 상업적 개발 제안을 배제하고 주민들이 제안한 안을 채택하였다. 뿐만 아니라 민간개발회사로부터 매입한 부지와 시유지를 합한 52,000㎡의 부지를 당시 시가 400만파운드의 1/5도 안되는 75만파운드의 저렴한 가격으로 주민 사업체에 매각하고, 초기 사업에 필요한 자금까지 대부해줌으로써 주민중심의 사업체가 초기 투자부담을 줄이고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둘째, 시장원리의 도입이다. 주민중심의 개발이었지만 시장원리를 도입함으로써 경쟁력을 유지하고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개발을 할 수 있었다. 특히 개발 초기단계에서 템즈강변의 산책로 개발사업을 우선 추진하고 다양한 시민 축제를 개최함으로써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접근성 및 인지도를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노천음식점, 주차장, 옥소타워 운영으로부터 수익을 창출하여 주민복리사업과 서민주택개발을 위한 투자 및 운영재원을 마련하였다.

셋째, 주택조합(Housing Co-Operative) 방식의 채택이다. 코인스트리트내의 저소득 주택은 주택조합의 소유이고, 입주자로 선정된 개인은 주택조합의 회원에 가입하여야 한다. 입주자는 총 33시간의 입주자교육을 통하여 임대주택의 커뮤니티 멤버로서의 교육을 받고, 조합회의에 의무적으로 참석하여 조합 운영에 관한 주요 결정에 직접 참여하여야 한다. 이를 통하여 단순한 임차인이 아닌 커뮤니티의 일원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게 하였다.

21세기의 아테네?

미국의 경제잡지 포브스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도시 순위를 매겼는데 런던이 뉴욕을 제치고 1등으로 뽑혔다. 외국인 직접 투자, 기업 본사 집중도, 지배적인 사업 유형의 수, 다른 주요 도시로 이동하기 쉬운 항공 연결성, 생산자 서비스의 강점, 투자 서비스, 기술과 미디어의 영향력, 인종 다양성 등이 선정 기준이었는데, 포브스지는 "과거에는 가장 큰 도시가 가장 중요한 도시였지만, 이제는 자본과 정보의 능률성과 접근성이 더 중요하다”고 하였다.

포브스의 발표처럼 런던은 화려한 도시발전의 역사와 금융,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국제적인 영향력 등으로 이미 세계적인 도시로서의 위상을 누리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를 향한 런던시의 도전은 이미 절반의 성공을 이루었는지도 모른다. 시티지역의 세계적인 금융기관들, 웨스트앤드의 다양한 뮤지컬공연, 도심곳곳에 위치한 공원들, 효율적인 대중교통체계, 포용력을 가진 시민의식 등은 런던의 성공을 보여주는 몇 개의 단면이다.

필자의 생각으로 남은 절반의 성공은 몇 가지 런던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해결하느냐에 달려있지 않을까 한다. 매년 10만 명 이상 증가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한 도시 인프라 즉, 교통, 주택, 복지 등의 공급의 문제는 한 예이다. 심각한 수준의 재정부족 상황에서 어떻게 노후화 된 도로의 보수 및 개선, 증가하는 교통수요에의 대응, 서민 주택의 지속적 공급, 복지수요의 충족 등 증대하는 재정수요에 대처할 것인가. 아울러 최근 이민자증가에 따른 런던시민들 사이의 이민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확산, 일부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에 의한 테러 등 도시안전에 대한 우려 등 런던시가 자랑해 온 다양성의 존중에 대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의 하나이다.

현 런던시장 보리스 존슨은 고전(Classic) 전공자답게 런던을 고대 그리스시대의 아테네와 같은 도시로 만들 것이라고 한다. 민주주의와 토론, 시민참여, 예술과 문화가 융성한 국제적인 도시를 목표로 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한다. 과연 런던시가 아테네 같은 도시로 지속적인 발전을 누릴지, 낡고 오래된 옛날 도시로 쇠락할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