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양이 스페인과 프랑스를 사이에 두고 만나는 바다가 비스케만이다. 이 비스케만의 스페인 북부지역 해안선을 따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달리면 프랑스로 들어가게 되지만 우리는 먼저 빌바오에 도착하게 된다. 바스크 자치지역의 중심도시이다. 빌바오시 자체의 인구는 약 35만 명 정도이지만 도시권 인구는 약 100만 명에 달하며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에 이어 스페인에서 세 번째로 큰 대도시권이다.

스페인에서 분리 독립하려는 분위기가 가장 강했던 바스크 지방은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으며, 그 면적은 약 20,664㎢(이스라엘 영토 규모)이다.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선에서 보면 스페인 영토에 약 85%가 분포되어 있다. 스페인 바스크 지방에서는 스페인어 외에도 바스크어가 공용어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빌바오를 비롯한 스페인 바스크 지방 도시에 가면 거리의 간판이나 공공 표지판에 스페인 글과 바스크 글이 병기되어 있는데 바스크 글이 먼저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더 신기한 것은 바스크어는 라틴어 어원을 사용하는 스페인어나 프랑스어와는 전혀 다른 어원이므로 발음도 어렵고 그 뜻을 짐작하는 것도 아예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바스크 지방은 원래 해안선을 따라 어업과 농업이 발달한 지방이었으며 바스크 식문화에도 해산물 요리가 많고, 바스크의 대표적 전통스포츠인 펠로타(Pelota)도 실타래를 공처럼 만들어 벽에 쳐서 되돌아오도록 하면서 즐기는 경기였다. 그러나 17세기경부터 빌바오와 주변 산악지역에서 철광이 발견되면서 빌바오는 유럽 산업혁명의 무대로 변하게 된다.

곧이어 다가온 18~19세기 산업혁명 시대를 거치는 동안 빌바오에는 쇳물을 녹이는 용광로가 들어서면서 도시가 제철과 금속공업의 중심지로 변하였다. 또한 빌바오와 인근에서 캐낸 철광석은 빌바오 항구를 거쳐 유럽 전역에 공급되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네르비온 강변에는 제철소와 조선소가 자리를 잡았다. 스페인 국가적으로 보면, 남부에서는 바르셀로나, 북부에서는 빌바오가 근대산업을 이끌어 가는 두 개의 축이 되는 도시였다. 이렇게 200여년이 흘렀을 때 유럽에서 철강 산업과 조선업은 쇠퇴기를 맞이하였고 빌바오는 도시의 미래를 다시 디자인하지 않을 수 없는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 때가 1989년 무렵이었다.

도시 중앙을 흐르는 네르비온 강변에는 버려진 조선소, 더 이상 경쟁력이 없는 물류시설 등만 즐비하였고 오염된 강의 생태계가 파괴된 것은 언제부터인지 잘 알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 무렵부터 빌바오의 역사가 다시 시작된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빌바오의 중심이면서도 더 이상 빌바오가 아니고 폐허처럼 변한 네르비온 강변지역을 도시의 일부로서 되찾아 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작된 사업이 'Bilbao Ria 2000' 도심재생 프로젝트였다. 우선 빌바오는 해안으로부터 약 10㎞ 정도의 상류지역 네르비온 강을 끼고 형성된 도시였기 때문에 쓸모 없거나 경쟁력이 떨어진 강변의 산업시설을 강의 하류로 내려 보내는 것이 가능했다. 이렇게 빈 공간이 만들어졌을 때 이 여유 공간을 밑바탕으로 하여 네르비온 강변의 검은 때를 벗기는 도심재생사업이 본궤도에 오른다. 드디어 강변이 도심의 일부로서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고 문화와 여가의 공간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일자리와 활력을 만드는 고부가 서비스 산업의 중심지로 변한 것이다.

이 사업의 꽃이 바로 빌바오에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유럽분관을 유치한 것이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상상력 높은 현대 미술작품을 보여 줌으로써 문화적 역할을 다함과 동시에 도시의 관광객 유치에 놀라운 기여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더 빛나는 업적은 1997년 개관과 더불어 빌바오가 가졌던 기존의 어두운 도시 얼굴을 환하게 바꾼 것이다. 폐허가 된 조선소, 버려진 창고, 오염된 강물을 뒤로 하고 돌과 유리, 물 그리고 티타늄을 조합하여 해체주의 건축방식으로 구겐하임 미술관은 지어졌다. 현대건축의 걸작품이 네르비온 강가에 우뚝 선 것이다. 미술관 소장품뿐만 아니라 미술관 자체가 건축학도에게는 반드시 보아야 하는 연구과제가 된 셈이다. 그리고 구겐하임 미술관과 더불어 빌바오의 상징처럼 네르비온 강가에 떠오른 건물은 2002년 완공된 '이베르드롤라(Iberdrola) 빌딩'인데 여기에는 스페인 최대 전력회사 이베르드롤라 본사가 입주해 있다.

이렇게 빌바오가 도심재생 사업에 성공하자 전 세계적으로는 '빌바오 효과'라는 신조어를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그 결과 빌바오는 200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세계 최우수 도시 프로젝트상과 유럽도시 및 지역계획 분야 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2013년에는 화이자 재단이 선정하는 스페인에서 가장 건강한 도시로서 상을 수상한 바 있고, 같은 해 빌바오에서 세계 항구도시 총회가 개최되었다.

구겐하임 미술관이 핵심을 이루는 'Bilbao Ria 2000'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인 1995년에만 해도 빌바오를 찾는 외래 관광객은 연간 25,000명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구겐하임 미술관 운영이 본궤도에 오른 2009년에는 약 615,000명의 방문객이 빌바오를 찾아오고 있다. 외래 관광객이 무려 24배나 증가한 셈이다.

그렇지만 빌바오가 당장 풀어야 하는 숙제는 수도 마드리드에서 멀다는 단점인데, 거리가 멀다고 하기 보다 기차로는 4시간 이상 걸린다는 점이다. 그래도 오는 2020년이 되면 마드리드와 빌바오간에도 초고속 열차가 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