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부르고스는 중세부터 눈부신 산업 발전과 함께 스페인의 역사와 예술, 문화유산을 보유한 도시이다. 적들로부터 방어가 용이한 전략적인 위치에 있어 과거 카스티아 왕국의 수도였으며, 덕분에 흥미로운 유적들이 많고 보존도 잘 되어 있다. 그 중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문화유산은 뾰족한 첨탑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더욱 빛나 보이는 부르고스 성당이다.

스페인의 3대 성당, 약 350년의 건축 기간

부르고스 성당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기 위해 카스티야 왕국의 페르난도 3세 통치 기간인 1221년에 마우리시오 주교의 후원으로 공사가 시작되어 1567년 완공되었다. 고딕예술의 집대성이라 불리는 이 성당은 세비야 성당, 톨레도 성당에 이어 스페인에서 3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완공되기까지 약 350년이라는 시간 동안 공사가 중단되고 재기되기를 반복하며 수많은 건축가, 조각가들의 손을 거쳤다. 그만큼 부르고스 성당에는 소소한 전설들이 전해지고 있다.

약속의 선물, 십자가상

'치마 입은 예수상’이라 불리는 이 십자가상은 부르고스 성당에서 가장 많은 경배를 받는 상이다. 이 예수상에 대해 얽힌 이야기가 있는데, 중세의 한 부유한 상인이 플랑드로 여행을 떠나며 아구스띠노스회 수도자들에게 자신이 여행을 잘 다녀올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보답으로 돌아오는 길에 좋은 선물을 가져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상인은 배를 타고 귀국하면서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갑판 위에 서 있던 상인의 눈에 바다 위를 떠다니는 큰 궤가 보여 견져내 열어보니 그 안에는 사람 크기의 십자가상이 들어있었다. 상인이 십자가가 담긴 궤를 싣고 부르고스로 돌아오자 도시의 모든 종이 저절로 울리기 시작했다. 죽은 이를 18명이나 살려냈다고 전해질 정도로 이 십자가상은 수많은 기적을 일으켰는데, 이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상을 무엇으로 만들었는지는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다.

아름다운 여인 대신 입 큰 아저씨, 엘 파파모스카스

성당이라고 경건한 모습의 조각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당에서 예수상만큼 유명한 엘 파파모스카스가 그렇다.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릴 때 거대한 입을 벌리는 인형인데, 현재는 소리가 나지 않지만 중세에는 비명소리가 들렸다고 전해진다. 엔리케 3세가 성당에 기도하러 왔다가 아름다운 여인에게 반하고 며칠 간 그녀의 집 앞까지 따라다녔다. 왕은 용기를 내어 여인에게 손수건을 건네주었고, 손수건을 받은 여인은 자신의 손수건을 왕에게 건네주며 집으로 들어가 슬프게 울었다고 한다. 그 후로 왕은 이유도 모른 체 여인을 볼 수 없었고 상심한 왕은 신하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신하들이 그 집은 아주 오랫동안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라고 말했다. 슬픔에 빠진 왕은 조각가에게 그 여인을 빼 닮고, 흐느낌까지 내는 조각상을 만들도록 명령했지만 왕의 조각가의 솜씨가 좋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장난기가 많았던 것인지 여인을 빼 닮은 조각은커녕 거대한 입에 날카로운 비명을 질려대는 늙은 남자 인형으로 만들었다. 이 비명 소리 때문에 도시의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고, 결국 부르고스의 한 주교가 영영 이 인형이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만들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외에도 부르고스 성당은 유서 깊은 역사와 찬란한 문화 속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워낙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어버린 성당이라 늘 여행자들로 붐비지만 성당을 방문했을 땐 천천히 둘러보자. 오랜 세월 동안 자리를 지켜 온 성당이 지금까지 품어 온 이야기를 나지막이 들려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