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鳥宿池邊樹 僧鼓月下門 (조숙지변수 승고월하문)
‘새는 연못가 나무에서 잠들고, 한밤 나그네는 이 문을 두드린다.’ 피곤한 길손은 그 누구든 괜찮으니 들어와 쉬었다 가라는 주인의 배려, 풍류객들을 위해 활짝 열려 있었다는 강릉 선교장. 민간 주택으로는 처음으로 국가지정 문화재로 선정된 고택인 이곳은 한국의 선풍(仙風)과 풍수 사상이 집안 곳곳에 깊숙이 밴 한국을 대표하는 장원으로서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사람들과 함께 풍류를 즐기고 가족과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고자 한 나눔과 상생의 정신이 살아있는 조선 문화의 미학이 담겨있는 이곳, 지금 선교장의 삼백 년 세월을 따라 들어가 본다.

더불어 피어난 조선 문화의 백미
선교장은 대관령을 경계 삼아 강릉 중심의 동해안 문화권인 관동지역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사대부 고택이다. 수백 그루의 노송이 숲을 이루어 운치를 자아내고 연못에 핀 연꽃이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며 조선 가옥의 진정한 멋이 담겨있다. 선교장은 조선 영조 때(1703년) 효령 대군의 후손인 이내번이 하늘이 족제비 무리를 통해 점지했다는 명당에 지은 집으로 1967년 중요민속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어 조선시대 양반 가옥을 알아보는 중요한 사료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과거 선교장 앞까지 경포호가 연결되어 그 물길 따라 배가 드나들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마을은 배다리마을(선교리)이라 불렸고 선교장이란 이름도 이를 따라 지은 것이라 한다. 99칸의 사대부 상류 주택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는 선교장은 20세기 한국 최고의 전통가옥으로 선정되었다. 안채 주옥을 시작으로 동별당, 서별당, 연지당, 외별당, 사랑채, 활래정, 행랑채, 사당들이 지어졌고 큰대문을 비롯한 12대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대장원을 연상케 한다.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건축 미학의 결정체
선교장의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안채 주옥과 사랑채인 열화당 그리고 조선시대 정원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활래정을 들 수 있다. 먼저 안채 주옥은 선교장의 건물들 중 가장 서민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오량(五樑) 가구의 단순한 민도리집 양식으로 지붕은 팔짝 지붕이고 처마는 홑처마이다. 이곳은 행랑채 동쪽에 있는 평대문으로 들어가는데 건넌방, 대청, 그리고 안방, 부엌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방은 집안에서 가장 어른이 되는 부인이 거처하는데, 안방 뒤 켠으로 골방이 딸려 있어 무더운 여름철을 시원하게 날 수 있게 하였다.

사랑채인 열화당은 순조 15년(1815) 이후가 건립한 선교장의 대표적 건축물로 집안의 화목과 화합을 목적으로 그 명칭은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나오는 "친척들과 정다운 이야기를 즐겨 듣고, 거문고와 책을 즐기며 우수를 쓸어버리리라"에서 따온 것이다. 열화당은 대청, 사랑방, 침방, 누마루로 구성되어있으며, 대청 앞에 반 칸 너비의 툇마루가 붙어 있다. 특히 사랑채 전면에는 차양(遮陽)이 가설되어 석양의 강한 햇볕과 눈, 비를 가리게 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다.
행랑채 바깥마당 앞 넓은 터에는 커다란 연못과 노송들이 어우러져 고전미와 우아미의 극치를 이루는 활래정이 자리한다. 선교장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활래정은 정원에 판 인공 연못에 ㄱ자형태로 세워진 정자로 그 모습은 시원한 계류에 탁족을 하는 선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순조16년(1816) 열화당을 세운 다음 해에 세워진 활래정은 방과 마루 그리고 그사이를 연결하는 복도 옆에 접객용 다실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다실은 선교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으로 벽이 온통 문으로 되어 있어 모두 열어 놓으면 정자에 앉아서도 자연과 하나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활래정은 당시 남자들도 조부의 허락 없이는 드나들 수 없는 특별한 공간이었으며, 일 년에 한 번 정도 정기 연주회를 열었다고 한다.
사람과 문화 그리고 자연의 이치가 한데 어우러져 삼백 년 세월 동안 조선 문화의 진정한 미학을 알려준 강릉 선교장. 한국 전통 건축의 멋을 한껏 보여주는 이곳에서 더불어 살아가고자 한 옛 조상들의 지혜와 그 의미를 되새겨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