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결 가벼워진 옷차림으로 떠나기 좋은 계절, 경기도 양평으로 떠났다. 양평은 들판을 적시며 흐른 남한강이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만나 물이 풍성한 지역으로 흔히 '물의 고장'이라고도 불린다. 물뿐 아니다. 한가운데에는 용문산이 자리 잡고 있다. 볼 곳, 가볼 곳 많은 양평은 봄철 여행지로 제격이다.
봄의 향기가 가득, 산수유마을과 들꽃수목원
봄이 오면 꽃구경을 지나칠 수 없다. 저마다의 탐스러운 색을 뽐내는 다양한 봄꽃들도 좋지만 은은한 향기와 소박한 모양새 하면 산수유꽃이다. 그래서 산수유 꽃은 요즘 같은 초봄과 가장 잘 어울리는 꽃이 아닐까 싶다. 산수유 꽃을 즐기려면 개군면으로 가면 된다. 양평군 개군면 일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산수유나무가 자생하고 있는 군락지다. 특히 주읍리 일대는 산수유나무 7,000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해마다 봄이 오면 온 마을이 노랗게 물든다. 어느 곳에 카메라를 들이대도 사진이 나오는 출사 명소이기도 하다. 주읍리에서 산수유꽃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장소는 마을회관에서 시작해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마을안길. 이 소담한 길과 어우러진 노란 산수유꽃 아래를 걸으며 시골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산수유마을에서 산수유의 향기에 취했다면 들꽃들을 만나러 가보자. 양평군 양평읍 남한강변에 위치한 양평들꽃수목원은 국내 유일의 강변 수목원이다. 들꽃 수목원은 크게 자연생태박물관과 허브ㆍ열대온실, 야외정원, 피크닉장, 미로원, 수생습지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허브ㆍ열대 온실은 신비로운 허브 식물들과 우리나라에선 보기 어려운 열대 식물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야외정원에서는 안데르센의 동화를 주제로 한 조형물들이 방문객들을 동심의 세계로 이끈다. 가족들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넘쳐나는 피크닉장은 떠드렁섬이 내려다보이는 이곳의 명소. 도란도란 모여 밤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들을 감상할 수 있어 가족여행으로 딱이다.
또한, 자연학습체험장에는 우리나라에서 멸종돼가고 있는 토종 야생화가 약 200여 종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나라 토종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체험하며 살아있는 자연학습장으로 부족함이 없다. 생태계의 표본과 실물을 전시한 자연생태박물관도 놓칠 수 없는 관람 포인트다. 이곳에는 호랑나비, 장수하늘소 등 다양한 곤충표본들과 송사리, 쉬리 등 다양한 민물고기들도 만나볼 수 있다.

두 물이 합쳐지는 곳, 두물머리
강원도 금대봉 기슭에서 발원한 남한강과 금강산에서부터 흘러온 북한강이 경기도 양평의 두물머리에서 만난다. 두 물길이 만난다고 해서 두물머리다. 합쳐진 물길은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다양한 매력을 가진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 두물머리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명소다. 2015년 한국관광 100선에도 선정됐을 정도로 빼어난 운치를 지닌 풍경 덕분에 이곳이 배경이 된 드라마와 영화는 부지기수다. 강변을 따라 자전거 길도 생겼고, 산책로도 잘 조성되어 있다.
두물머리의 명물 중 하나는 400살이 넘은 느티나무다. 이 나무는 아랫부분에서부터 갈라진 나무가 마치 하나의 나무처럼 보이기도, 혹은 세 그루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도당할아버지나무라 불린다. 두물머리 마을에는 원래 도당할아버지와 도당할머니, 두 그루의 나무가 나란히 서 있었다. 1972년 팔당댐이 완공되면서 도당할머니 나무는 수몰되어 고사하고 말았다. 이후 마을과 가정의 평안을 위해 지금도 이 느티나무에 제를 올리고 있는데, 이를 '도당제'라고 부른다. 도당제는 매년 9월에 열린다.
최근 두물머리의 새로운 스타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소원나무'로 불리는 느티나무다. 이 나무는 도당할머니와 도당할아버지의 후손이라고 입소문이 났다. 사람들은 소원나무 앞에 있는 조약돌에 저마다의 소원을 새겨 넣는다. 도당할아버지 나무를 시작으로 소원나무를 지나 강을 따라 걷다 보면 '다온광장'이 나온다. 이곳은 한강 8경 중 제1경을 알리는 '두물경' 표석이 세워져 있는 곳으로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이다. 두 물줄기가 만나는 장엄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다.
느티나무가 있는 둔치에서 정면으로 보면 작은 섬이 하나 보인다. 이 섬은 '뱀섬'이다. 물난리가 날 때마다 육지에서 떠내려온 뱀들이 모여들었다는 이야기가 퍼지며 사람들 사이에서 뱀섬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몇 그루의 나무로 꽉 찰 만큼 작은 섬이지만 섬이 들어앉은 자리가 기가 막혀 누구나 안보고는 지나치지 못하는 명물이다. 두물머리는 특히 일교차가 큰 요즘 같은 계절에 이른 아침에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낸다. 자연이 그린 산수화는 매일매일 같은 그림이 없다. 두물머리는 또 일출과 일몰 감상 명소이기도 하다. 하늘과 강물이 만나 노랗게 혹은 빨갛게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분위기가 많은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다.

천왕목이 버티고 있는 천년고찰 용문사
양평의 용문산은 빼어난 산세와 깊은 골이 있는 명산이다. 경기 양평군 용문면과 옥천면의 경계에 있다. 높이는 1,157m다. 용문산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 바로 천년고찰 용문사다. 용문사로 오르는 길에 늘어선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등산객의 눈을 호강시킨다. 마치 하늘에 오르기 위해 용이 비상이라도 하듯이 나무들은 기세가 등등하다. 용이 드나드는 문이라 용문(龍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더니 혹시 이 나무들을 두고 한 말일까. 길 옆으로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청명하다. 물이 많은 고장답게 용문산 계곡에는 맑은 물이 힘차게 흐른다. 물소리 따라 나무그늘 따라 걷다 보면 용문사 입구에 다다른다.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 때 대경선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일설에는 경순왕이 친히 행차해서 창사 하였다고도 한다.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 앞에 있는 은행나무에 시선이 고정된다.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수령이 천 년이 훌쩍 넘긴 은행나무다. 높이가 42m, 줄기의 둘레가 14m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웬만한 카메라로는 뷰파인더에 다 담기도 힘들 정도. 수령이 1100년에서 1500년으로 추정된다고 하는 이 은행나무는 유실수로는 동양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이 은행나무는 천왕목(天王木)이라고도 불린다. 일제 강점기 시절 정미의병 때 일본군이 사찰을 불태우고, 또 한국 전쟁 때에는 치열한 용문산 전투를 치르면서 사찰은 두 번이나 전소하였지만 이 나무만은 끝까지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대웅전 오른쪽 관음전에는 보물 제1790호로 지정된 금동관음보살좌상이 있다. 대웅전 앞으로 난 길을 따라 오솔길을 조금 올라가면 보물 제531호로 지정된 정지국사 부도와 비석을 만나게 된다. 부도는 사리를 안치한 탑으로 고려 후기의 승려이자 나옹의 제자인 정지국사의 사리가 안치되어 있다. 단아한 모양새의 비석에는 사찰 조성 당시 찬조자의 명단이 적혀 있다. 용문사에서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각박한 도시생활과 경쟁에 지친 도시인들이 명상하고 휴식을 취하며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갖기에 용문사라면 더할 나위 없을 듯 했다.
한결 따스해진 봄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어느새 길게 드리워진 햇살이 초봄의 정취를 더욱 짙게 만든다. 바람이 불 때마다 처마 끝 풍경이 흔들린다. 그 바람 따라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