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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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의 목표는 행복에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까? 풀리지 않을 것만 같은 이 화두의 답을 찾는다면 인도 타지마할을 찾아보자. 영원한 사랑을 위해 지상에 지은 천국이 바로 여기에 펼쳐 있다. 인류 건축문명의 상징 '타지마할'을 가다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타지마할은 '인도에 있는 무슬림 예술의 보석이자 인류가 보편적으로 감탄할 수 있는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위대한 건축물이다. 2007년에는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① 중국 만리장성 ② 페루 마추픽추 ③ 브라질 거대 예수상 ④ 멕시코 치첸 이트사 피라미드 ⑤ 이탈리아 콜로세움 ⑥ 인도 타지마할 ⑦ 요르단 페트라)'에 선정되기도 했다. 인도 델리에서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까지는 자동차로 3시간 반 가량이 걸린다. 갠지스 강 상류에 위치한 아그라는 무굴 제국의 수도였는데, 21세기에 이른 지금 고층 건물은 거의 없고 혼잡하지 않은 도로에서는 소떼, 릭샤, 그리고 자동차와 사람들이 사이좋게 어울린다. 타지마할 반경 4㎞ 안에는 매연을 뿜는 자동차나 릭샤가 갈 수 없다. 그래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전기 버스를 타고 타지마할을 만나러 가야 한다. 흔히 타지마할은 힌두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둥근 돔과 첨탑은 모스크 양식이고, 격자 세공과 연꽃 장식은 힌두 양식이다. "흰 대리석 조각 예술의 극치인 타지마할을 보지 않고 인도를 여행했다고 말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 것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순백의 대리석은 태양의 각도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색깔을 바꾼다. 때로는 붉게 때로는 하얗게, 그 빛깔의 향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를 느낀 나머지 하루 종일이 필요할 터다. 1600년대 당시 이 아름다운 궁전을 꾸미기 위해 인근의 미얀마, 중국은 물론 터키, 이집트에서 최상급 보석들을 대량 수입했다. 보석만이 아니라 궁전을 짓기 위해 모인 인도, 페르시아에서 차출한 노동자 수가 2만 명에 달했다. 그들이 이 건축물에 들인 시간이 총 22년에 달한다. 타지마할의 묘궁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고 양말을 갈아 신어야 한다. 묘궁 내부는 정교한 아름다움의 극치인데, 대리석마다 세밀하게 조각하고 황홀한 빛깔의 자개로 꽃과 꽃잎을 새겨 넣은 내부 벽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1654년에 완성된 건축물이 마치 갓 지은 것처럼 산뜻하고, 그러면서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새것에서 풍기는 경박함이 전혀 없다. 한편 이 돔 바로 아래에 있는 16각형의 중앙 홀은 국회의사당 실내에서 가장 핵심을 이루는 공간으로, 헝가리 왕들의 왕관이 2000년부터 바로 이 곳에 보존되어 있다. 이 홀은 하원과 상원 홀로 연결되는데 현재 헝가리 의회는 단원제이기 때문에 상원 홀은 회의실로 사용된다. 이처럼 건물 내부 공간의 배치를 전체적으로 보면 바로크 양식의 복고풍이다. 이와 같이 한 건물에 여러 가지 양식이 절충되고 혼합되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 국회의사당이 건축 시, '민족자존'이라는 명분이 걸려있었던 만큼 "우리의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단순원칙, 즉 건축 자재도 모두 헝가리에서 나는 것으로만 충당하고 헝가리의 기술과 인력으로만 건물이 디자인되고 완공되었다는 사실이다.
세계 최강 무굴제국의 영광이 깃들다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의 제5대 황제 샤 자한이 사랑했던 부인 뭄타즈 마할이 죽자(1631년) 이를 기리기 위해 건설했다. 뭄타즈 마할이 죽은 지 6개월 후부터 2만여 명의 노동자들을 동원해 건설했는데, 샤 자한은 타지마할이 완성된 직후 공사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의 손목을 잘랐다고 한다. 타지마할보다 더 아름다운 궁전을 짓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후를 몹시도 사랑한 황제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뭄타즈 마할를 위해 성대한 무덤을 지을 것을 희망했고, 시신은 잠시 부르한푸르라는 곳에 가매장되었다가 무덤이 지어지자마자 이장됐다. '극상(極上)의 궁전'이라는 뜻의 타지마할이란 이름을 갖게 된 이 무덤은 인도를 대표하는 유적이 됐다. 그렇다면 샤 자한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개인적으로는 사랑하는 황후를 잃는 비운을 겪었지만 그의 재위기간은 무굴제국의 최전성기였다. 인도학자 카오시크 로이는 당시 무굴제국의 1년 세금 수입은 120억 7,187만 6,840 다무(무굴제국의 화폐단위, 320 다무=영국의 1파운드), 즉 영국의 파운드 단위로 3,772만 4,615 파운드에 해당한다. 이 막대한 세금으로 110만 명(보병 90만 명, 기병 20만 명)에 이르는 대군을 유지할 수 있었고, 제국의 영토는 3백만 ㎢에 달했다. 강력한 부(富)와 힘은 당시 유럽국가들과도 비교조차 되지 못할 정도였으며, 중국 황제나 오스만 튀르크의 술탄 정도가 무굴제국에 비견될 만했다. <강대국의 흥망>이란 명저를 쓴 폴 케네디는 무굴제국의 궁정을 두고 "베르사유의 태양왕 루이 14세가 봤다면 너무 사치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함과 막대한 소비의 현장이었다"고 묘사한 바 있다. 전성기에 백만의 대군과 엄청난 영토, 그리고 막대한 부를 누렸던 무굴제국. 그 영광이 고스란히 새겨진 곳이 바로 타지마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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