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신하들아, 아름다움이 적을 이기느니라”

목숨 걸고 적과 싸우는데 어찌하여 험악한 것이 아닌 아름다운 성을 짓느냐는 신하의 불평에 대한 정조의 대답이다. 신하들의 말이 틀리지 않다. 하지만 아름다운 성(城)의 이면을 읽어야 한다. 벽돌과 화강암을 섞어 쌓은 유려한 성벽이 실은 화포의 강한 공격에 아주 강하다는 것, 낮은 성벽이 당시 전쟁의 주 무기였던 대포를 더 잘 견딘다는 것이 바로 숨겨진 진실이다. 위기를 이기는 강인한 아름다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을 만나보자.

수원에 모인 각자의 '신념'

수원 화성 완공의 주역은 무수히 많다. 그 중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이들이 있으니, 축성을 계획하고 실천에 옮긴 '조선의 22대 왕 정조', 혁신적인 공사 계획을 꾸린 실학자 '다산 정약용', 축성 전반을 책임지고 총괄 지휘했던 '번암 채제공'이다. 정조 즉위 당시 조선은 극심한 당쟁(黨爭)으로 정계가 혼란했으며, 덕(德) 기반의 왕도정치를 꿈꾸는 뜻에도 맞지 않았다. 이에 왕권 재정비를 위한 돌파구를 찾던 정조는 부친인 사도세자의 추모사업과 연결, 효과와 명분이 더할 나위 없는 '신도시' 형성을 계획한다. 사통팔달 교통망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가까이에 사도세자의 현륭원이 위치한 곳, 바로 수원에 말이다. 또 다른 핵심 인물은 조선 최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다. 당시 30세라는 젊은 나이의 정약용은 정조의 명에 따라 '성설(城設)'이라는 이름의 화성 설계도를 제작했다. 당시 대부분의 성이 거주 목적의 성(읍성)과 전시 피난처가 되는 성(산성)을 구분하여 지은 것과 달리, 거주와 상시 군사적 방어 기능을 병행하도록 설계한 것은 가히 획기적이었다. 마지막으로 공사 전반을 관리, 감독한 '번암 채제공'이다. 사도세자의 폐위에 죽음을 무릅쓰고 반대를 표했던 그는, 이후 정조의 수원 화성 축성 작업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아름다운 것이 진정 강한 것', '꼭 필요한 것만 잘 만든다'는 정조의 축성 핵심이념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채제공이었기 때문이다.

세계를 납득시킨 치밀한 '고증'

수려하고 견고한 수원 화성도 역사의 아픔을 비껴갈 수는 없었다. 일제기, 6.25 등의 사건을 거치며 크게 파손된 것. 그럼에도 수원 화성이 당당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치밀한 축성의 기록, '화성성역의궤' 덕분이다. 현재의 수원 화성은 훼손된 원본을 상당부분 복원한 것이다. 복원의 근거가 된 '화성성역의궤'는 공사일정, 관계자 명단, 공문서, 자재 명칭, 수요, 도설(圖說)은 물론 노임규정까지 완벽히 기록된 공사기록서다. 원본이 아닌 문화유산은 거들떠보지 않는 유네스코 역시 1997년 이 위대한 기록 앞에 수원 화성의 가치를 인정했다. 수원 화성의 특별한 점은 축성 기술에도 있다. 당시 공사를 계획했던 정약용은 최첨단 기자재의 도입을 망설이지 않았다. 기존의 기중기와 달리 비고정 도르래가 추가된 복합형 도르래를 사용하여 큰 돌을 옮기며 발생하는 사고를 크게 줄였을 뿐 아니라, 11대의 기중기로 4~5배까지 작업 능률을 높였다. 덕분에 10년의 축성 기간을 예상했던 것과 달리 6개월의 공사 휴지기를 가지고도 단 34개월 만에 수원 화성이 완공되었다. 성벽의 재료 역시 잘 다듬은 화강암만 사용하던 당시와 달리, 화강암과 벽돌을 함께 사용했다. 화강암 자체는 매우 단단하지만, 그 성질 덕에 이음새가 딱 맞지 않아 외부의 충격에 쉽게 무너지는 점을 벽돌과 석회 마감으로 보완한 것이다. 이처럼 수원 화성은 심미성뿐만 아니라, 당시 최첨단 기술과 전쟁의 양상까지 치밀하게 계산한 결과다.

시간은 시대와 상대를 막론하고 흐른다. 그 시간 위에 각자의 우직한 신념이 쌓이고, 그 중 누군가의 이야기는 기록되어 '화성성역의궤'처럼 깊은 의미를 얻는다. 우리의 선조들은 수원 화성 속에 몇 번이고 되살아 나는 진정한 아름다움과 함께 올곧은 삶의 자세, 기록의 중요성도 함께 담아 전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