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하면 생각나는 이미지가 몇 가지 있다. 여름이면 연일 뜨거운 온도를 자랑해 '대프리카'라고 불리는 곳, 그리고 국내 최고의 섬유 산업의 도시가 그것이다. 그에 못지않게 최근에는 다양한 콘텐츠로 무장하고 국내외 여행자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유독 지난 여름의 폭염도 물러가고 한결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계절에 대구 중구를 찾았다.

대구의 낭만, 역사와 동행하는 '향촌문화관ㆍ대구문학관'

1950년, 한국전쟁으로 피난길에 오른 예술ㆍ문학인들이 대구 중구 향촌동에 모였다. 향촌동에는 시인 구상이 단골로 묵던 화월여관, 화가 이중섭이 드나들던 백록다방, 시인 이효상의 출판기념회가 열린 모나미 다방이 들어선 낡은 건물들이 어깨를 맞댄 좁은 골목이 있었다. 또 해방을 맞아, 전쟁을 피해 대구로 모인 사람들의 삶의 현장이 있었다. 김광섭ㆍ최정희ㆍ박두진ㆍ조지훈ㆍ박목월ㆍ유치환 등 많은 예술인이 문학과 음악에 관해 토론을 나누었다. 비록 시대는 불우했지만, 낭만이 살아 숨 쉬고 있었던 그 시절의 향촌동. 그곳은 문화예술을 꽃피었던 대구 문학 르네상스의 중심지 이기도 했다. 향촌문화관은 그때의 낭만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향촌문화관ㆍ대구문학관'은 2014년 10월 대구시 중구에 개관했다. 1912년 대구 최초로 건립된 일반은행인 선남상업은행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1~2층에는 향촌문화관이, 3~4층에는 대구문학관이 들어섰다. 향촌문화관의 1층은 '향촌을 걷다'라는 주제로 기억 저편에 남아있던 옛 향촌동의 모습이 펼쳐진다. 광복 전후와 6ㆍ25전쟁 시절 중앙로와 북성로, 공구골목, 교동시장 등이 그것이다. 옛 은행의 금고 자리에 만들어진 설치미술 작품은 그 어떤 것도 예술의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 맞은편에는 한때 양키시장, 도깨비시장으로 불리던 교동시장이 재현됐다. 떠들썩한 시장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함께 곳곳에 붙어 있는 표어들이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향수를, 젊은 세대들에게는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2층은 '향촌을 기억하다'라는 주제로 만들어졌다. 8ㆍ15광복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도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향촌동의 모습이다. 영화관에는 이제는 보기 힘든 페인트로 그린 간판이 걸려있고, 영화인들의 단골아지트였던 선술집과 화가 이중섭이 자주 들러 은박지에 그림을 그리곤 했던 백록다방이 들어섰다.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직접 은박지에 그림을 그려볼 수도 있다.

3~4층은 '대구문학관'으로 만들어졌다. 대구 근대문학의 흐름을 한눈에 보는 아카이브(기록보관소) 전시장은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이름을 떨쳤던 대구 출신의 47명 문인을 조명했다. 지역의 대표적인 문인 이상화ㆍ현진건ㆍ이장희의 명예의 전당도 마련되었다. 문학관 옆은 도서관으로 꾸며 창가에 마련된 자리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으며, 동화감상, 동화 구연방 등을 갖추어 대구 시민들의 문학적 소양을 일깨울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지하 1층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감상실인 '녹향'이 있다. 이창수 선생이 SP 레코드판 500여 장과 축음기 1대로 1946년에 문을 연 이곳은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이었다. 2014년 이창수 선생의 유가족이 녹향 관련 기자재를 기증하면서 이곳 지하로 옮겨왔다. 이곳에서 LP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청춘, 그 이름 '김광석'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세상을 떠난지 2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의 마음 속에 영원한 가인으로 기억되고 있는 가수 김광석. 그는 이제 없지만, 그의 고향인 방천시장 골목 담벼락에서 다시 살아났다. 대구는 그의 고향이다.

김광석길에 들어서면 그의 노래가 잔잔히 흘러나온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그를 잊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그의 노래를 벽화에서 찾으며 사진을 찍고 데이트를 즐긴다. 350m 남짓한 길에는 담배를 피우고, 국수를 말아주는 다양한 김광석의 모습들이 그려져 있고 담담한 어투로 써내려간 그의 노래의 가사들이 벽화들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이곳이 손꼽히는 골목문화 관광지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다. 전통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침체된 상권을 활성화시켜보자는 취지로 기획한 '문전성시 프로젝트'가 대성공을 거둔 것.

김광석 거리가 전국적으로 유명한 거리가 되면서 그 거리가 있는 방천시장 또한 주목받기 시작했다. 방천시장은 대구 도심을 가로지르는 신천의 둑 안쪽에 형성된 재래시장이다. 서문시장, 칠성시장과 함께 대구 3대 시장의 하나로, 한때 점포 수가 1천여 개에 달할 정도로 번성했지만, 산업화 이후 쇠락해가기만 했다. 그랬던 방천시장이 김광석길이 대구의 명소로 떠오르면서 대구 시민들은 물론 대구를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사람이 모이면서 상권도 자연스레 형성되고 있다. 2015년도에는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배부른 행복, '서문시장'

최근 대구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핫'한 곳이 있다면 바로 서문시장이다. 올 6월부터 시작된 서문시장 야시장이 뜨거운 대구의 밤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것. 유독 폭염이 심술을 부렸던 지난 여름, 가장 더운 대구로 여행을 다녀온 여행자들의 후기가 줄을 잇고, 인터넷에는 서문시장에 다녀온 여행자들이 직접 만든 서문시장의 맛집 리스트가 수없이 공유되었다. 그만큼 서문시장은 대구 중심지에 있는 시장이면서 관광지의 역할까지 함께하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을 비롯해 동남아 관광객까지 끌어들이며 지난 여름 휴가철에는 45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고 하니 대구시의 브랜드를 높이는 일등공신이라 할 만하다. 대구시 중구에 있는 서문시장의 옛 이름은 대구장이다. 대구장은 조선 시대에 평양장, 강경장과 함께 전국 3대 장터 중 한 곳이었다. 원래 대구읍성 북문 밖에 자리 잡은 소규모 장이었다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크게 발달했다. 현재에도 대구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전통시장이다.

대구 3호선에서 서문시장역은 이용객이 가장 많은 역이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상관없이 모여드는 사람들 때문이다. 주차타워 입구에 있는 관광안내센터에서는 서문시장에 대한 궁금증을 알아볼 수 있고, 이 큰 시장을 손바닥 보듯 꿰뚫고 있는 문화관광해설사에게 가이드를 받을 수도 있다. 서문시장이 이토록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데에는 시장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는 노점을 빼놓을 수 없다. 점포 번호는 물론 상호까지 버젓이 달고 갖가지 다양한 메뉴로 시장 방문객들의 눈과 입을 사로잡고 있다.

서문시장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메뉴는 칼국수와 보리밥, 삼각만두, 양념오뎅과 나뭇잎만두, 납작만두, 떡볶이 등이다. 특히, 대구, 그 중에서도 서문시장에서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고 알려진 양념오뎅은 속이 꽉 찬 나뭇잎만두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다. 이 양념오뎅은 마치 떡볶이처럼 빨간 고추장에 자작하게 졸여 각종 해물이나 콩나물을 함께 버무려 먹는다. 저녁때가 되면 큰 시장길에는 어느새 큰길로 나가려는 자동차들이 줄을 잇는다. 야시장 오픈 전에 주차장에서 빠져나온 자동차들이다. 해가 지면 서문시장은 야시장으로 다시 태어난다. 흥겨운 공연, 맛있는 음식과 함께 더 떠들썩해진 시장 여행은 초가을밤 시원한 바람과 함께 행복하게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