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5대 궁궐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온 궁궐, 창덕궁. 옛날 조선의 왕들은 정궁인 경복궁보다 별궁인 창덕궁에서 정사(政事)를 더 자주 볼 정도로 창덕궁을 사랑했다고 한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도 미적 관점은 비슷한지, 여전히 창덕궁은 국내외 관광객이 즐겨 찾는 궁궐로 명성을 높여가고 있다. 그렇다면 창덕궁은 어떤 매력을 지니고 있기에 이토록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는 것일까?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창덕궁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자 자연친화적인 궁궐이다. 대부분의 궁궐이 왕의 권위를 상징하고자 대칭과 격식, 웅장함을 강조한 데 비해, 창덕궁은 자연과 상생하기 위해산자락의 불규칙한 지형까지 그대로 살려 건물을 세웠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 덕분에 창덕궁은 봄이면 봄대로, 가을이면 가을대로 사계절 내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정취를 가진 궁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1997년에는 한국의 전통이 살아 있고 자연과 건축, 조경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뤘다는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성과를 이뤘다. 우리나라의 궁궐 가운데 세계유산이 된 것은 창덕궁이 유일하다.

조선과 희로애락을 함께해 온 창덕궁

창덕궁은 원래 조선 제3대 태종 5년(1405)에 경복궁0의 별궁으로 지어진 궁궐이다. 조정의 관료들이 왕을 보좌하며 업무를 본 외조, 왕이 신하를 만나며 국정을 수행한 치조, 왕과 가족이 취침하는 침조, 왕과 가족이 휴식을 취하는 후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창건 당시, 외국 사신의 접견이나 신하들의 하례식을 받는 정전인 인정전(仁政殿), 국가의 정사를 논하는 편전인 선정전(宣政殿), 왕과 왕후 및 왕가 일족이 거처하는 침전인 희정당(熙政堂), 왕비가 거처하는 내전 중 가장 으뜸으로 꼽히는 대조전(大造殿) 등 중요 전각을 완성했고, 이후 태종 12년(1412)에 궁궐 정문인 돈화문(敦化門)을 건립하고, 세조 9년(1463)에 약 6만 2천 평이던 후원을 넓혀 15만여 평 규모로 크게 확장했다.
창덕궁은 조선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왕이 거처한 궁궐이기도 하다. 조선의 공식적인 정궁은 경복궁이지만, 여러 왕이 경복궁을 피한 탓에 창덕궁이 그 역할을 대신할 때가 많았다. 특히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는 서울의 모든 궁이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는데, 창덕궁 역시 화재를 겪었지만, 오히려 재건의 중심이 될 법궁으로 선택받으며 그 위상을 더욱 높였다. 이후 창덕궁의 주요 전각들은 선조 38년(1605)부터 광해군 원년(1609)에 걸쳐 거의 복구되었다.
그 후에도 창덕궁은 조선의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법궁아닌 법궁의 역할을 계속해왔다. 여전히 역대 왕들의 사랑을 받았고, 인조 반정 등으로 화재와 소실의 위기도 여럿 겪었지만, 다시 재건과 복구, 변화를 통해 부활했다. 조선 말기에는 서구 문물을 도입하면서 창덕궁에도 서양식 전등이나 차고가 설치되기도 했다. 대한제국 시기인 1907년에는 순종이 즉위 후 창덕궁으로 이어하여 황궁이 되었다.

국내 최대의 왕실 정원인 창덕궁 후원

창덕궁의 북쪽 넓은 구릉에는 비원이라는 전통 왕실 정원이 있다. 이곳은 자연적인 지형에 꽃과 나무를 심고 연못을 파서 아름답고 조화 있게 건물을 배치한 곳으로, 창덕궁의 모든 매력이 집약된 곳이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는 의미에서 금원 혹은 비원이라고도 불렸다.
과거 왕과 왕비들은 이곳에서 심신을 수양하거나 학문을 닦고, 여가를 즐기거나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인재 등용을 위한 과거, 군사 훈련, 활쏘기 대회를 열고, 왕이 직접 후원에서 농사를 지으며 농민들의 어려운 생활을 경험하기도 했다고. 이처럼 창덕궁 후원에는 조선의 운명을 책임져야 했던 왕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창덕궁 후원에는 시내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 정도로 울창한 수목이 우거져 있다. 옛날에는 호랑이나 표범같은 맹수들이 나타날 정도였다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목은 물론, 각종 희귀한 수목도 곳곳에 자리해 있어 생태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이 밖에도 후원 곳곳에는 부용지, 애련지, 관람지, 존덕지같은 연못들이 즐비해 있다. 이중 부용지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에 의해 만든 가장 크고 네모난 연못으로 옛날에는 이곳에 배를 띄워 놀았다고 한다. 제22대왕 정조가 신하들에게 글짓기를 시켜 제대로 하지 못하면 부용지 한 가운데 자그마한 섬에 유배를 보내는 장난을 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또한, 연못 주변에는 소요정, 청의정, 태극정 등 아담한 규모의 정자들을 세워 조화를 꾀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후원 대부분의 정자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지금 남아 있는 정자와 전각들은 인조 원년(1623)이후 개수ㆍ증축된 것이다.

창덕궁은 조선왕조의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결국 조선왕조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봐야 했던 아픔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1910년 8월 22일 창덕궁 흥복헌에서 나라의 국권을 일제에 이양하는 조선왕조의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렸고,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과 중전인 순정효황후도 창덕궁에서 생을 마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늘날 창덕궁은 조선의 모든 흥망성쇠와 희로애락 속에서도 살아남아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눈 내리는 고궁의 정취와 함께 조선왕조의 역사를 만나보고 싶다면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창덕궁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듯,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