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태생의 파울 클레는 추상회화의 초석을 마련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던 미술가였다. 표현주의, 큐비즘, 초현실주의 등 20세기 초반의 다양한 사조를 거쳐 개성 있는 화풍을 구축했으며 이집트 고대문명, 자연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음악적 운율과 신비로운 색채를 강조했고, 단순한 조형만으로도 심리적인 감동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클레는 미술사, 미학, 예술이론과 같은 미술 관련 인문학 분야뿐 아니라 식물학이나 천문학, 심리학, 과학, 종교 등에 대해서도 박식했다.

클레는 독일의 바우하우스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면서 <형태와 디자인 이론에 대한 논고(Writings on From and Design Theory(Schriften zur Form und Gestaltungslehre)>라는 강의 노트를 썼는데, 이는 모던 아트와 추상미술, 색채론 등을 다룬 미술교재였다. 바실리 칸딘스키(W. Kandinsky)와 함께 바우하우스에 재직하면서 음악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공통점을 보여주었지만, 클레는 아동 미술에서 볼 수 있는 나이브한 요소와 시적이면서도 때로는 유머러스한 이미지를 동시에 구사했다. 스테인드글라스, 카펫이나 직물에서 따 온 구조 등은 클레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주요 특징이다. 클레는 템페라, 유화, 수채화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면서 매체가 지닌 섬세한 특징들을 색채와 표면의 마티에르를 통해 강조했다. 대부분의 회화들은 사이즈가 작으며 시각적으로 화사하고 색채감이 뛰어나 우리의 정서에 편안하게 와 닿는 작품들이 많다.

꿈, 동심, 색채를 강조한 환상적 세계

칸딘스키가 아놀드 쇤베르크와의 교류를 통해 음악과 미술을 접목시켰다면, 클레는 음악 교사였던 아버지와 가수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부인도 피아니스트였다. 어렸을 때는 바이올린을 비롯해 여러 악기를 다루고, 학교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타고난 음악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는 뛰어난 드로잉 실기 능력으로 미술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그림을 그렸다. 1897년부터 1918년까지 클레가 쓴 일기장은 그의 삶과 예술관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며, 선이나 양감처리에 있어 뛰어난 실력을 겸비했음을 알 수 있다.

클레는 1898년 뮌헨의 순수예술 아카데미에서 프란츠 폰 슈툭(Franz von Stuck)에게서 사사했으며, 유럽 전통 미술과는 다른 새로운 미술을 모색했다. 특히 1901년과 1902년에는 로마와 피렌체, 나폴리에서 이탈리아 거장들의 걸작들을 공부하며 자신이 색채에 유독 관심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1905년에는 바늘 에칭을 사용해 >아버지의 초상(Portrait of My Father)>(1906)을 제작하게 된다.

1911년 칸딘스키,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를 비롯해 청기사파(Der Blaue Reiter) 작가들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아방가르드 미술을 직접 경험하게 되었다. 1912년 파리로의 여행은 추상회화를 의미했던 '순수회화'를 목격할 수 있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고, 피카소의 큐비즘을 비롯해 로베르 들로네의 동적인 추상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었다. 독일의 표현주의에 영향을 받았지만, 클레의 작품은 환상적이면서도 꿈의 세계를 강조하였고, 선적인 흐름과 아라베스크 문양, 아동 미술에서 볼 수 있는 유치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내는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스테인드글라스에 많은 관심을 둔 탓인지 클레의 작품은 중세성당의 실내에서 볼 수 있는 신비로운 빛을 체험하게 한다.

빛과 색채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된 것은 1914년 클레가 마케(August Macke)와 함께 튀니지(Tunisia)를 방문하면서 튀니지의 강렬한 빛에 매료되면서였다. 인간이 색채를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색채가 인간을 뒤흔드는 느낌을 받았다. 색채와 자신이 혼연일체가 되는 강한 느낌을 체험하게 되었고 화가로서의 자신의 방향을 체험할 수 있었던 중요한 여행이 되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흰색과 붉은 색으로 구성된 돔>(1914)은 클레의 추상회화를 잘 표현해준다. 사각형과 원형만으로 구성된 단순한 구조는 카이르앙(Kairouan)의 사원을 연상시키듯이 순수한 추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돔 형태를 감싸는 블랙 아웃라인이나 검정색 블록 형태로 화면에 등장하는 구성은 마치 음악의 운율처럼 반복적이며, 조화로움을 부여하는 요소다.

클레는 서로 잘 어울리는 조화로운 색채에 의존하면서도 전혀 맞지 않는 색채를 사용하여 음악의 불협화음을 연상시켰다. 클레에게 있어 순수 추상회화는 음악의 운율과 화음과 불가분의 관계를 보여주면서 시각적 요소에 청각적 감각을 일깨웠다. 뉴욕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지저귀는 새(Twittering Machine)>는 파스텔 톤의 바탕에 새들이 마치 춤추며 재잘거리는 듯하다.

추상과 반추상, 기하학적 패턴의 조합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이후 클레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처음에는 전쟁을 무감각하게 느꼈지만 마케와 마르크가 전쟁 중 사망하면서 더욱 실감하게 된다. 결국 그도 전쟁에 나가게 되지만 공군기에 카무플라주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이 시기 작품들은 대개 추상이나 반추상적인 작업들로, 삼각형, 원형, 초승달 모양의 패턴이 지배적이면서도 색채와 질감을 미묘하게 살린 작업이 많았다. <남쪽 (튀니지) 정원(Southern (Tunisian) Gardens)>(1919), <고대의 소리, 블랙에 추상(Ancient Sound, Abstract on Black)>(1925), <밤의 회색에서 솟아 나오는(Once Emerged from the Gray of Night)>(1918) 작품도 여기에 속한다. 특히 마지막 그림은 몬드리안의 격자무늬, 즉 그리드(grid) 추상회화처럼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구조를 보여준다. 클레가 직접 쓴 시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카펫이나 태피스트리의 직물 구조처럼 따뜻한 느낌을 전달한다. 이 시기 화가로서 클레는 이미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고 1920년에는 300여점의 작품을 보여주는 회고전이 열렸을 정도로 그의 추상회화는 비평계로부터도 호평을 받았다.

클레가 추상회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21년부터 1931년까지 바우하우스에서 강의를 맡으면서 였다.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가 쓴 바우하우스 선언서에는 리오넬 파이닝거(L. Feininger) 그린 이미지가 수록되었다. 파이닝거는 중세 고딕성당을 표현해, 빛이 성당으로부터 퍼져 나오게 그렸다. 이것은 중세시대의 예술이 가졌던 정신성을 부활하고자 했던 상징적 의도를 담고 있었다. 중세의 길드 수업처럼, 스테인드글라스, 금속 연구 등 오늘날 미술교육에 있어 현대적인 토대를 마련해준 바우하우스에서 클레는 책 제본이나 벽화 워크숍, 스테인드글라스 수업 등을 가르쳤다.

클레는 음악과 미술의 상응관계를 조명하며 빨강, 노랑, 파랑색을 중심으로 색채의 구조를 파악했다. 바우하우스 교수로 있으면서 '매직 사각형(magic squares)'을 만들어 색채이론뿐 아니라 <AD Parnassum>(1932)이라는 작품에도 적용했다. 음악의 다음(多音, polyphonic)을 연상시키듯이 회화의 조형적 요소를 배치하였다. 다음적 요소는 클레의 추상회화에서 "독립된 주제들이 동시적"으로 등장하여 음악적 운율을 갖게 되는 시각적 요소로 해석되었다. 그래픽적인 요소는 아폴로와 뮤즈들이 사는 신성한 장소인 파르나소스 산의 정문을 의미하며, 그림에 등장하는 산은 1928년 클레가 이집트에서 봤던 피라미드를 연상시켰다.

즉, 바우하우스 시기에 속하는 1928년 클레는 이집트로 여행을 떠나는데, 피라미드의 이미지뿐 아니라 상형문자, 고대문명에서 느낄 수 있는 체취는 그의 작품에 지속적으로 등장했다. <나일 강의 전설(Legend of the Nile)>은 이집트에서 봤던 벽화나 이집트 상형문자를 단순한 기호로 재해석한 것이다. 클레는 18세기 음악의 대위법을 회화적 요소로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며 색채를 단계적으로 변화시켰다. 그는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세계 외에도 우주와의 전반적인 교감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의 요소를 추상으로 표현했다.

원시미술이나 어린이 미술에서 볼 수 있는 단순한 조형은 추상회화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라스코 벽화를 생각해보자. 텍스트가 없었던 원시 시대에 '이미지'나 간략한 '그림'은 대화의 수단이었고, 또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언어'의 역할을 했을 수 있다. 클레는 선사시대나 원시미술에서 느낄 수 있었던 언어와 이미지가 서로 미분화된 단계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 음악과 회화가 서로 관계하듯이 글쓰기와 이미지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다.

클레는 잠시 뒤셀도르프 아카데미(Dusseldorf Academy)의 교수로 지냈지만 이후 나치의 게슈타포에 의해 유태작가로 낙인찍히면서 이후 독일을 떠나 1933년 스위스로 이주해갔다. 1937년 히틀러가 아방가르드 미술을 "퇴폐미술"이라 규정하며 <퇴폐미술전>을 전시했을 때 클레의 작품도 일부 포함되었으며, 이후 100여점이 넘는 작품이 강제로 나치의 손에 들어가는 등 클레 또한 암울한 시대의 고통을 함께 겪을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 건강도 악화되었다. 1930년대에 제작한 은 극한 상황에 처한 동시대 예술가들의 상황을 암묵적으로 말해주는 이미지다.

클레와 친분이 있던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라는 미학자가 죽을 때까지 소장하고 있었던 작품이 바로 클레의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1920)였다. 유태인이었던 벤야민은 '희망'을 기다리는 절박한 마음을 담아 최후의 글을 쓰면서 이 천사를 유태인들이 갈망하는 미래의 '메시아'로 상상했다. 클레의 작품들은 유럽과 미국 등 여러 곳에 산재해 있지만, 파리의 퐁피두센터를 디자인했던 렌조 피아노(Renzo Piano)가 설계해 2005년 6월 스위스 베른에 문을 연 파울 클레 센터에 많이 소장되어 있다.

자료 네이버 (글 정연심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

노인, 장애인, 거지, 부랑자 등 결함 있는 인물들을 즐겨 그렸고 그 그림들에서 그려지는 대상에 연대감을 가졌던 렘브란트의 시선은 사람뿐 아니라 동물에게까지 미쳤다. 네덜란드에서 죽은 동물은 장르화의 부엌 장면에 자주 등장해 왔으나 렘브란트의 도살된 소(Slaughtered Ox)에서처럼 단독으로 그림의 주제가 된 적은 없었다. 거꾸로 매달려 있는 황소의 시신은 잔인하다고 할 만큼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단순한 부엌 정물화를 대할 때처럼 그림을 편안히 감상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특징은 섕 수틴과 같은 표현주의적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비슷한 작품들을 낳기도 했다.

진실을 말하는 얼굴, 자화상

사람들이 렘브란트에 익숙한 이유 중 하나는 '그려진 자서전'이라고 할 정도로 수가 많은 그의 자화상 때문이다. 초기에 그는 표정 연습과 역할 연기적 성격의 자화상, 판매를 위한 트로니 성격의 자화상들을 그리다가 말년에는 오로지 화가로서의 자신을 탐색하듯 응시하는 자화상만을 그렸다.

1640년에 그린 자화상은 성공한 30대 화가의 지위와 야심을 보여준다. 구도에서 라파엘로의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와 티치아노의 루도비코 아리오스토의 영향을 받은 이 작품은 렘브란트가 라파엘로, 티치아노뿐 아니라 그들의 모델과도 경쟁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르네상스 시대의 전형적인 궁중 대신 카스틸리오네와, 같은 시대의 시인인 아리오스토를 참조함으로써 화가는 자신이 초상화를 주문한 저명인사와 사회적 신분이 동일하고, 손의 예술로만 여겨져 왔던 그림이 정신적 예술인 시와 동등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부와 명예를 누렸던 렘브란트는 규모 없는 생활로 1656년에 파산을 하고 만다. 집과 작품, 수집품들을 처분해야 했고, 자기 그림을 맘대로 팔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던 말년의 십여 년 동안 렘브란트는 정면을 향하고 있는 자화상을 집중적으로 그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려진 작품 중의 하나인 1659년의 자화상에서는 아무런 가장 없이, 얼굴과 눈빛만으로 위엄을 전달하는 화가의 모습이 화면 밖으로 살아 나올 듯 생생하다.

1642년에 죽은 아내 사스키아 대신 아들 티투스를 키워주고 딸 코르넬리아를 낳았던 헨드리케도 1663년에 죽었고, 1668년에는 티투스도 세상을 떠났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갈수록 심해져 1662년에는 사스키아의 묘지터까지 팔아야 했다. 화가는 가족과 재산과 명예를 잃었지만 그림을 멈추지는 않았다. 1668년경 그는 자신을 화가로 묘사한 최후의 자화상을 그렸다. 이 작품에서 그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못생긴 노파를 그리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숨이 막혀 죽었다는 화가 제욱시스(Zeuxis)와 자신을 동일시했다. 그림 표면은 거칠고 자유분방해졌고 화가는 웃음만 남긴 채, 어둠 속으로 휘발되어 사라져 버릴 듯한 모습이다.

평생 외국 여행을 한 적이 없었던 렘브란트의 작품과 명성을 암스테르담 밖으로, 네덜란드 너머로 알린 것은 그의 판화였다. 그는 에칭, 드라이포인트, 인그레이빙을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채색된 드로잉이나 회화의 느낌이 날 정도로 자연스럽고 유려하며 풍부한 효과를 내는 판화를 제작했다.

고전주의적 규범이 지배한 18세기에 렘브란트의 거친 사실주의는 아카데미의 변방에 머물 수밖에 없는 규칙의 파괴로 보여 평가절하되었다. 19세기에 들라크루아 같은 낭만주의 작가들이 그를 재발견했고, '대중들로부터 외면 받는 고독한 예술가'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현대의 대중이 선호하는 표현주의적 화풍을 가진 대부분의 예술가들처럼 렘브란트의 인생에 대해서도 근거 없는 '문학'이 많이 덧붙었다. 그러나 그의 삶에 대해서는 확실한 사실이 많지 않고, 위작이 너무 많아 정확한 작품 숫자조차 파악이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네덜란드 정부의 기금으로 1968년에 만들어진 렘브란트 조사 계획(Rembrandt Research Project)은 그의 그림으로 알려진 모든 작품을 대상으로 진위를 검토하고 그 결과를 렘브란트 회화 전집(A Corpus of Rembrandt Paintings)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로 발표해왔다. 2005년에 4번째 보고서가 나왔고, 그의 진짜 '전집'을 확정하기 위한 조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자료협조 : 네이버(글 김진희 미술평론가, 사진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NM), 지엔씨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