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문화유산뿐 아니라 궁궐과 사찰, 사원과 향교 등 다양한 문화재와 건축물들이 전국에 산재해있다. 그중에서도 경상남도 합천의 해인사(海印寺)는 한국불교의 성지이자, 세계문화유산 및 국보 보물 등 70여 점의 유물이 모여있는 국내 최대의 사찰이다. 가야산 자락에 위치한 해인사는 그 웅장함이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경에 젖게 하는 곳이다.

천년고찰의 장엄함을 느끼다

가야산 중턱에서 만날 수 있는 유서 깊은 절 해인사. 해인사는 신라시대인 802년(애장왕 3년) 순응과 이정이란 승려가 창건한 절로 그 역사가 1,200년을 훌쩍 넘어서는 그야말로 천년고찰이다. '해인사'라는 이름은 <화엄경>에 나오는 '해인삼매'라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해인삼매란 '잔잔한 바다 위의 명상'이라는 뜻이다. 해인사에는 두 개의 문화재가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데, 바로 팔만대장경이라 불리는 고려대장경과 이를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이다. 고려대장경은 세계기록유산으로, 장경판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그러나 이처럼 대단한 세계문화유산 때문이 아니더라도 해인사는 누구나 한번 찾아가 보기 좋은 명소이다. 조선시대까지 왕실에서 보호했던 사찰이라 해인사 진입로와 주변이 아름드리나무와 울창한 숲으로 잘 가꾸어져 있기 때문이다.

해인사 입구에는 가야산의 정상이 비치는 연못, 영지가 잠시 눈길을 끌고, 이어 본격적인 해인사 경내임을 알리는 일주문이 나타난다. 통도사, 송광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사찰로 꼽히는 해인사의 위엄이 몸으로 느껴지는 일주문을 들어서면 해인사 안마당까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장대한 풍경을 이루며 서 있다. 해인사의 전각은 일주문, 봉황문, 해탈문, 구룡루, 대적광전, 장경판고 등이 차례로 4개의 단을 두고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마치 거대한 계단과도 같은 해인사의 전각 배치는 가야산의 장쾌한 산세를 따라 올라가며 층층이 산사의 멋을 뽐낸다.

국가적 염원을 담은 세계적인 유산

해인사가 법보(法寶)사찰이라 불리는 가장 큰 이유는 팔만대장경이 대적광전 뒤편 장경판전에 고이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팔만대장경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정도. 고려 현종(1010~1031년) 재위 당시에 새긴 최초의 팔만대장경(초조대장경)이 1232년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버리고, 이를 대체하기 위해 1236년부터 4년에 걸쳐 다시금 완성한 것이 팔만대장경이다. 몽골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국가적 염원이 담긴 이 역작은 목판에 새겨진 5,200만자가 넘는 글자가 마치 한 사람이 새긴 것처럼 뛰어난 통일성을 갖추고 있고, 현존하는 세계의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체재와 내용도 가장 완벽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팔만대장경이 등재된 이유다.

그 위대한 유산을 후대에 길이 전하기 위해 세워진 또 다른유산, 장경판전.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라 하기에는 그 모양새가 단출해 처음 마주하는 이에겐 큰 감동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금만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예사 건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장경판전은 위쪽 창문과 아래쪽 창문의 크기가 다르고, 맨 아래쪽에는 각 칸마다 구멍이 뚫려 있으며, 가지런히 팔만대장경이 끼워져 있는 안쪽의 선반도 바닥에서 띄워져 있다. 이같은 구조의 장경판전은 목판 보관을 목적으로 지어진 세계에서 유일한 건축물이며, 인류의 위대한 역작인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창건 당시 건물의 원형과 기능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것과 당대의 과학 지식을 총동원한 듯한 놀라운 건축적 장치들을 지녔단 점을 높이 평가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선대의 보물을 고이 보존해 후대에 전하기 위한 선인들의 마음, 그 마음을 과학적 치밀함으로 드러내는 놀라운 지혜를 올가을, 해인사에서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