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가 <근대생활의 화가(The Painter of Modern Life)>에서 썼듯이 19세기 후반 남성 부르주아들은 플라뇌르(Flaneur)라는 이름으로 도시를 활보하고 구경하며, 새롭게 등장한 레저문화를 즐기면서 대로를 산책하였다. 이들 남성은 대부분 부르주아 출신의 소비계층이었으나, 같은 부르주아 출신이라 하더라도 여성의 경우엔 활동하는 영역이나 사회적 공간이 달랐다. 또한, 여성 미술가들이 자신의 그림 속에 여성을 다룬 방식은 남성 미술가들과는 다른 독특한 양상을 보여주었다.

20세기 현대사회에서 여성이 정치적인 파워를 누리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 본격화되었다. 특히, 1960년대 프랑스 등 유럽을 중심으로 진행된 국제적 상황주의, 미국의 흑인들의 인권운동과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 운동 등과 함께 페미니즘이 국제적인 운동으로 대두되면서 1970년대와 1980년대 서구 여성작가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 여성 미술가들은 오늘날의 페미니스트들과 달리 여성 문제를 폭로하고 이를 가시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19세기 남성미술가들이 표현하지 못한 따뜻한 여성의 감수성과 여성만이 느낄 수 있는 모성애라는 특별한 감정을 섬세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인상파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두 여성작가는 단연 메리 카사트(Mary Cassatt)와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일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 두 여성 작가 또한, 경제적으로 특권층에 속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을 둘러싼 주변 미술계의 인맥을 통해서 남성들이 장악한 미술계에 입문하였고, 남성들이 다루지 못한 여성 특유의 감성이나 경험을 강조하여 남성들이 간과한 여성적인 경험과 공간을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요즘은 여성 미술가라는 타이틀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여성들이 사회 곳곳에 일하고 있지만, 19세기 후반은 여전히 남성 플라뇌르들이 소비문화와 여가문화 자체를 지배했었기 때문에 이 두 여성 화가가 남긴 궤적은 더욱 의미가 있다.

메리 카사트는 프랑스에 유학을 갔던 제 1세대 미국 작가다. 처음에는 이탈리아에 가서 그림 공부를 했고, 파리에서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며 에드가 드가(Edgar Degas)를 통해서 파스텔, 판화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실험하였다. 두 사람이 느꼈던 인간적인 친밀감은 드가가 그린 카사트의 초상화에 잘 반영되어 있는데, 드가는 루브르 미술관에서 미술을 감상하는 카사트의 모습을 지적이면서도 친밀하게 그렸다. 두 사람은 파스텔과 같은 매체 사용이나, 색채 등에 대해 많은 부분을 공감하고 있었지만, 주제적인 면에서는 차이를 보여주었다. 드가가 발레, 경마장, 달리는 말과 같은 움직이는 장면에 몰입했다면, 카사트는 여성들이 경험하는 사적인 세계를 독특한 색감을 이용해서 그림으로 그렸다. 아마도 모성애를 보여주거나 엄마와 아이의 친밀하고 애틋한 관계를 가장 많이 그렸던 화가 중 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여성 미술가로서 이러한 주제에 대한 작품 의뢰를 많이 받았다.

서구에서 '모자상'은 성모 마리아상과 아기 예수상과 직결되었기 때문에 주로 종교미술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카사트는 서구 전통에서 등장한 종교미술이 아닌, 일본 채색 목판화였던 우키요에 판화에서 진솔하게 표현된 어머니와 아이라는 도상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 그녀는 서민들이 가는 목욕탕에서 평범한 어머니가 아이를 씻기는 모습과 같은 일상적인 모습이 표현된 우키요에 판화를 높이 평가했다. 즉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와 같은 미술가들이 파리 대로를 활보하는 플라뇌르나 높은 발코니에서 파노라마적인 도시 경관을 내려다보는 모습, 파리를 구경하는 남성들의 시각을 다뤘다면, 카사트는 일상 생활 속에서 아이를 돌보는 여성들의 모습을 중요하게 다뤘다.

물론 카사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대부분 상류계층의 여성이거나 부유층의 여성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직접 아이를 돌보는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지만 목욕한 아이의 몸을 수건으로 닦아 주거나, 아이의 머리를 말리는 엄마의 일상적인 행위는 성스러운 성모 마리아상보다 더 숭고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췄다. 특히 카사트는 타고난 색채 감각이 있었기 때문에 사적이면서도 친밀한 여성 특유의 경험을 초상화 작품들을 통해 잘 드러내었다.

페미니스트로서의 의식과 자각

카사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태생으로 아버지는 금융업에서 일하였으며 주식과 부동산으로 많은 돈을 벌었던 자산가였다. 당시 유명한 미국 가문들은 자제들을 거의 유럽으로 유학을 보냈지만 여자들은 상황이 달랐다. 그러나 카사트는 5년간 유럽에 머물며 스페인 여행 등 유럽 여러 지역을 여행했다. 이러한 특혜는 주로 남자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카사트가 유학을 갈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도 그녀가 동시대 미국여성들과는 얼마나 달랐는지를 보여준다. 카사트는 1855년 파리에서 열렸던 만국박람회를 관람하면서 유럽의 회화적 전통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접하기 시작했다. 기록에 보면 카사트는 당시 미국이나 유럽에서 태동하기 시작한 '신여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고, 보헤미안적인 삶을 추구하면서도 페미니스트로서의 의식과 자각을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보았다.

많은 여성들이 취미로 미술을 공부했지만 카사트는 처음부터 본인의 업으로 미술을 선택했으며, 필라델피아에 있던 미술 아카데미에서도 공부하며 토마스 에이킨스(Thomas Eakins)와 같은 작가들과도 친분이 있었다. 아카데미에서의 미술은 여전히 보수적인 성향이었다. 카사트는 남성 화가들이 지배하는 화단의 분위기 때문에 고향을 떠나 1866년 파리로 유학을 갔지만, 여전히 아버지의 반대는 심할 수 밖에 없었다. 카사트는 여성이었기 때문에 파리의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와 같은 학교에도 입학을 할 수 없었고, 대신 작가들이 개인적으로 운영하던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드가가 그린 그림 중에 카사트가 루브르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그녀가 보수적 경향의 화가들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배우는 것보다 루브르와 같은 대형 미술관에서 과거 거장들의 그림을 보고 '모사'함으로써, 회화의 기술과 기법을 더욱 탄탄하게 배웠음을 알려준다. 카사트는 스스로 '모사가'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드가에게서 파스텔 기법과 에칭과 같은 판화기법을 배웠고, 두 사람은 나란히 작업을 하며 회화와 판화기법에 대해 서로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유학 초기 시절 카사트는 드가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프랑스에서 유학을 온 제1세대 유학생들이 정통 프랑스 화풍이라고 생각했던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했던 것과 달리, 카사트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작가로 제대로 된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여겨진 마네나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의 작품이 더욱 흥미로운 근대회화라고 파악했다. 그녀는 동시대적인 주제와 더불어 일상적인 삶의 궤적이 회화로 그려진다는 사실 자체를 중요한 시대성으로 파악했다. 카사트는 새로운 미적 취향을 동시대 미국 컬렉터들에게 알려주어 인상주의 그림을 구입할 것을 조언했다.

여성이 경험하는 세계

현재 워싱턴 D.C.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는 카사트의 <보트 파티(The Boating Party)> (1893~94)는 주제 면에서 마네의 보트타기를 연상시키지만, 배 위에 아이를 안고 배타기를 즐기는 인물을 그려 남성들이 표현하지 못했던 여성적인 경험을 강조하였다. 또한,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1880)와 같은 작품 또한, 티타임을 즐기는 모습을 다뤄 남성 인상주의자들이 간과했던 여성적 행위나 여성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여성들의 공간에 관심을 두었다.

카사트가 프랑스 미술계에서 활동하고 인정을 받기까지는 드가의 공이 제일 컸다. 드가는 살롱전에 낙방한 그녀를 인상주의 전시회에 소개했는데, 이 그룹에는 베르트 모리조도 인상주의 화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인상주의는 1872년부터 1886년 까지 지속되었는데, 카사트는 적극적으로 인상주의 활동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당시 경제적으로 부각되던 미국인 컬렉터들을 교육시키고, 인상주의 회화에 대해 설명하는 역할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19세기 후반이나 20세기 초반 신여성 운동이나 페미니즘적인 정서에 공감했던 제 1세대 여성들의 특징은 스스로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다는 점이다. 카사트도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스스로 화가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결혼은 가능하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리고 커리어와 결혼은 현실적으로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피력했다. 그러나 주변에는 결혼을 해 아이를 가졌던 지인들이나 후원자들이 늘 함께 있었다. <파란 소파에 앉아있는 어린 소녀(Little Girl in a Blue Armchair)>와 같은 작품에서는 어린 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여성과 남성들은 함께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응시를 보여준다. 카사트가 1879년에 그린 <오페라에서 블랙을 입은 여성(Woman in Black at the Opera)>과 르누아르가 그린 <라 로지(La Loge)>의 오페라 관람석에 있는 남녀를 서로 비교해보면, 확실히 카사트는 여성이 주체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강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카사트의 그림 배경에 있는 남성은 오페라 글라스로 이 여성을 다시금 바라보는 이중적인 시선을 만날 수 있다. 여성이 바라보는 시선과 남성이 여성을 향해 바라보는 시선이 묘한 심리전을 일으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카사트는 오페라를 즐기는 여성의 모습도 종종 그렸지만, 주로 모유를 먹이는 모습, 아이를 씻기거나 아이와 노는 여성들의 행위를 강조함으로써 여성들이 실내의 공간이라는 사적 영역에 머물러 있음을 알려준다. 다시 말하면 그녀가 구축한 이러한 회화적 공간은 여성의 공간과 남성의 공간이라는 것이 19세기 후반에는 다분히 구별되었음을 알려준다.

자료협조 : 네이버(글 김진희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