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원제는 거대 정치세력의 독주를 견제하고 정치세력 간 합의를 촉진함으로써 다수결 민주주의의 정글 정치를 순화한다.”
- Meg Russell
“오늘날 정당의 과두제적 지배와 생산적 논의의 결여 및 반목과 대립의 정치는 열린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정쟁(政爭)으로부터 다소 거리를 둔 상원은 열린 토론의장을 활성화하는 데 기여한다.”
- Donald Shell
소수를 돌보는 양원제 개헌
현행 1987년 헌법질서는 독재청산과 대의민주주의를 부활시킨 공적에도 불구하고, 승자독식 다수제, 과잉 중앙집권제, 엘리트 지배 대의제를 특징으로 한 소용돌이 집중제의 심각한 결함을 지니고 있다.
대권쟁탈의 이전투구 정당정치와 지대추구 엘리트 카르텔의 소용돌이 집중제를 극복하고 포용융화의 권력공유민주주의 헌법질서를 세우기 위해 승자독식 다수제를 소수보호 비례제(다수와 소수의 권력공유제)로, 과잉 중앙집권제를 연방적 지방분권제(중앙과 지방의 권력공유)로 그리고 엘리트 지배 대의제를 대의민주제와 직접민주제가 결합된 준직접민주제(엘리트와 시민의 권력공유제)로 바꾸는 헌법개혁이 필요하다.
선진국 문턱에서 온갖 발전 장애를 야기해온 소용돌이 집중제를 선진통일한국을 지향하는 권력공유민주제로 전환하려면 분권개헌 4대 의제, 곧 ①제왕적 대통령제 개혁 ②연방적 지방분권 ③직접민주제 확충과 더불어 ④소수를 돌보는 양원제(지역대표형 상원과 비례대표성이 강화된 하원) 도입이 실현되어야 한다.
지역대표형 상원과 비례대표성이 강화된 하원
2017년 8월 국회개헌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하원과 지역주민을 대표하는 상원으로 구성된 양원제 개헌안을 제시했다. 이번 국회개헌특위 자문위원회의 지역대표형 상원 개헌안은 2009년과 2014년 국회 헌법개정자문위원회의 제안에 이은 세 번째 양원제 개헌안이다. 이처럼 국회 자문위원회가 연이어 양원제 개헌을 제안한 것은 지난 10여 년 동안 형성된 학계와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공감대를 반영한다.
오늘날 선진 7개국(G7)은 모두 양원제 국가다. 인구 1,200만 명이상의 15개 OECD국가 중 단원제 국가는 터키와 한국뿐이다. GDP 15위 국가 중 상원이 없는 나라도 중국과 한국뿐이다. 그나마 중국은 국회에 해당되는 전인대(全人代)의 대표성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자문적 상원 역할을 수행하는 정협(政協)을 두고 있다. 이렇게 보면 GDP 15위 국가 중 상원이나 유사상원이 없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양원제는 한국 헌정사에서 낯선 제도가 아니다. 양원국회 제도는 1848년 제헌헌법 초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진지하게 논의되었고, 1952년 7월 제1차 발췌개헌을 통해 헌법에 규정된 이후 1962년 12월 제5차 개헌으로 삭제되기까지 10년 5개월 동안 비록 그 대부분의 기간에 사문화(死文化)된 상태였지만 헌법기관으로 유지됐다. 제2공화국 때는 소선거구 직선 민의원과 특별시・도의 대선거구 직선 참의원으로 구성된 양원 국회를 직접 운영한 경험도 있다.
현행 단원국회는 동질적 국민의 일반의사가 단원제를 통해 효과적으로 표출될 수 있다는 논리에 근거한다. 그러나 실제로 국민은 지역에 기초한 이질적 집단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지역간 이해갈등이 다수결원리가 지배하는 단원국회에서 충분히 조정․타협되기 어렵다. 더욱이 지역감정이 정치발전을 가로막고 사회안정을 해치는 한국에서 지역적 소수의 이익을 다수결원리로부터 보호하고 융화상생의 정치를 실현하는 지름길은 바로 국회에 지역대표형 상원을 설치하는 것이다.
적절히 설계된 지역대표형 상원은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를 예방하고 치유하여 선진 통일한국을 세우는 핵심 헌정제도로 활용될 수 있다. 지역대표형 상원은 다수의 전횡을 방지하고 소수이익을 보호함으로써 지역갈등해소와 지역균형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특히 2016년 선거구 개편으로 수도권으로 의석이 늘어난 상황에서 과소지역의 대표성을 우대하는 지역대표형 상원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졌다. 아울러 지역대표형 상원은 지방분권개혁 촉진, 정당 간 극심한 대립과 갈등 완화, 졸속입법 예방과 입법품질 향상, 북한의 민주적 통합과 통일한국의 국민 통합을 고무할 수 있다.
승자독식 다수제의 병폐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대표형 상원의 설치와 더불어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점유율 간에 비례성이 강화된 하원의원선거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201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현행 국회의원 300개 의석을 지역구 의석 200석과 비례대표의석 100석으로 나누고, 권역별로 정당투표에 의해 정당이 득표한 의석수를 결정한 후 지역구투표에 의해 차지한 의석을 뺀 나머지 의석을 비례대표의석으로 정당에 배당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어 2015년 7월 새정치민주연합은 독일식 권역별비례대표제 도입과 함께 국회의원 정수를 현행 300명에서 369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필자는 50명 이내의 지역대표형 상원의원을 제2공화국 참의원선거처럼 제한연기투표제나 단기이양투표제로 뽑고, 300명의 하원의원을 지역구의석(200석)과 비례대표의석(100석)을 혼합한 독일식 하원의원선거제도로 선출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양원제 개헌의 성공조건
소수를 돌보는 양원제 개헌을 성사시키려면 몇 가지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지역대표형 상원의 설치로 인한 국회 비대화와 국회의원의 특권 강화를 우려하는 국민이 있다. 게다가 국회불신이 심상치 않은 데다 양원제 개헌으로 인한 비용증가에 대한우려가 있다. 이 문제는 1987년 헌법 질서의 결함을 시정하기위해 국회가 기득권을 내려놓는 다른 분권의제와 함께 양원제개헌을 추진하고 이로 인한 비용증가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기존 국회운영비를 감축한다면 국민을 설득시킬 수 있다고 본다. 이미 많은 시민단체가 양원제 개헌에 동의하거나 앞장서고있다.
양원제 개헌에 대한 더 근원적인 장애 요인은 지역대표형 상원설치로 인한 기존 정치게임규칙의 변경으로 이해관계가 상충하거나 기득권을 잃는 정치세력의 반대와 저항이다. 유력한 상원의 등장으로 입법권을 공유해야 하는 기존 국회의원이 양원제 개헌을 달가워하지 않을 수 있다. 국회의 견제를 받는 행정부도 양원제 개헌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질 수 있다.
양원제 개헌과정은 원칙이 존중되면서 정치세력 간 타협이 이루어지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해당사자의 자기 이익 추구에 휘둘리지 않는 공론화 개헌과정이 요구된다. 공론화과정에서 ‘규범적 표준’을 제시하고 당리당략과 이기심을 견제할 전문가와 시민사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포용정치를 이끌 양원제 개헌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선진 통일한국의 코리아 르네상스 비전을 실천하는 선공후사의 헌정리더십이 필요하다. 1787년 ‘필라델피아의 기적’을 일군 55명의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사리사욕과 당파심을 얽매이지 않고 로마공화정과 영국 의회민주주의를 벤치마킹하고 정치사상을 두루 참고하여 지역대표형 상원을 포함한 당대 최고의 민주연방 헌법 질서를 창안했다. 총사령관으로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조지 워싱턴은 자신을 새로 탄생할 나라의 국왕으로 추대하려는 부하들을 엄하게 꾸짖었다.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된 워싱턴은 임기 제한이 없었지만 재임 후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시 세계 모든 나라가 군주제를 채택한 상황에서 만일 워싱턴이 권력과 명예를 탐했다면 나폴레옹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머리에 왕관을 얹었거나 군사독재를 실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조국의 부름에 응하여 헌신하되 결코 자신의 권력을 추구하지 않았다. 워싱턴의 위대한 공화주의정신으로 표상되는 헌법제정자들의 헌정리더십은 식민지 신세를 벗어난 인구 4백만의 신생 미국이 머잖아 세계 최강국으로 도약할 토대를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