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지방자치제도
독일의 지방자치 및 지방분권제도는 성문법의 제정을 통해 보장되기 이전에 독일 역사의 중요한 한 부분이라고 묘사할 수 있다. 중소 봉건주의 이래 300여 개에 달하는 소규모 국가로 구성된 독일 전통질서의 해체 후 오랜 역사를 띠고 있는 지역 세력들(영주 등)에게 일정한 규모의 자치와 분권을 보장해주는것은 근대국가 건설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제도적 개혁이었기 때문이다. 프로이센의 당시 장관이었던 Freiherr von Stein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1808년 ‘도시규정(Stdteordnung)’을 제정하였고, 이는 독일 지방자치규정(Gemeindeordnung)의 기반이 되었다. 1808년 ‘도시규정’에서 시작된 독일의 지방자치제도는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확대되었으나, 지방자치의 암흑기였던 나치 시대를 거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연방공화국에서 비로소 헌법적 보호장치를 마련하였고, 현재까지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다. 독일은 매우 강한 분권이 이루어진 연방주의 국가로서 자치권을 중심으로 자치단체를 구분하면, 연방정부, 주정부, 크라이스(Kreis)와 게마인데(Gemeinde)로 구분할 수 있는데, 게마인데는 각 주정부를 구성하는 기초자치단체로서 독일의 행정단위 중에 가장 하위단위이며 동시에
실질적인 독일의 지방자치제도를 실현하는 단위이다.
크라이스는 주의 하위 행정기관이면서 주정부와 게마인데를 이어주는 지방자치단체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기초자치단체에 비해 더 많은 권한과 사무를 지닌 우리나라의 광역자치단체와는 달리 크라이스는 독립적인 지방자치단체로서 법적 지위를 지니고 고유의 사무를 수행하지만, 실질적인 업무는 주로 게마인데를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크라이스와 게마인데는 수직적인 개념보다는 수평적인 대등한 관계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물론 게마인데에 대한 감독청은 크라이스 및 주정부관구(Regierungsbezirk)이지만, 이러한 감독은 엄격한 상하의 지도 감독이라기보다는 게마인데가 처리할 수 없는 사무와 기능에 대한 보완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독일 헌법(Grundgesetz)에서의 지방분권
독일의 지방자치 및 지방분권제도는 연방주의(Bundesstaat)원칙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연방과 주가 권한을 분할해서 행사하는 연방국가(Bundesstaat)의 원칙은 기본법의 중요한 기본원칙 중 하나이다(독일헌법 제20조 제1항). 독일은 최고법인 기본법의 여러 개의 조항을 통하여 지방분권을 광범위하게 보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기본법 제28 조는 각 게마인데가 갖는 권한을 규정하고 있다. 제28조 제2항은 ‘게마인데에는 법률의 범위 내에서 그 지역사회의 모든 사무를 자신의 책임으로 규율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게마인데들의 지방자치단체연합(Gemeindeverbände)도 그 법률상 과제의 범위 내에서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자치행정권을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일반적으로 이 내용을 게마인데의 자치권에 관한 전권한성(Allzuständigkeit)과 자기책임성(Eigenverantwortlichkeit)을 보장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자세히 보면 기본법 제28조 제2항의 자치권은 ‘적법성과 자기책임성의 범위 내에서의 지역적 사무에 대한 규율권’으로 정의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해석이 될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
기본법 제30조에 의하면, ‘국가 권한의 행사 및 국가 사무의 수행은 기본법에서 다른 규정을 두거나 허용하지 않는 한 주(州)의 관장사항이다’라고 명시하여 연방의 각 주는 기본법에 저촉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연방의 구속을 받지 않으면서 주 헌법(Landesverfassung)을 자유롭게 제·개정할 수 있고, 각 주는 연방법(Bundesgesetz)을 집행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독일에서 연방과 주의 권한과 업무는 완전히 분리되어 운영되지 않으며, 국가의 모든 일에 대해 연방과 주가 공동으로 책임지며 수행하는 체계를 이루고 있다. 기본법 제83조에 의하면 연방 법률의 집행을 주의 고유사무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제 85조 1항에서는 주의 사무집행과 관련하여 연방의 위임사무를 게마인데에 재위임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독일의 지방분권 원칙
독일의 지방분권제도를 지탱하고 있는 원칙은 보충성(Subsidiaritätsprinzip)과 견련성의 원칙(Konnexitätsprinzip)이 있다. 보충성의 원칙은 지방분권의 핵심원칙이며, 가장 작은 단위에서 사무를 수행하는 것이 원칙이나, 그렇지 못할 경우 다음 상위 단위에서 권한을 가지고 사무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행정구역 단위별로 지역사무를 그 지역 게마인데가 수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만약 지방자치단체가 그러한 사무를 수행할 역량이 없거나, 적절한 재정을 갖추고 있지 못할 시에 주(Land)가 사무를 수행하고, 해당 사무에 대하여주 역시도 적절한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할 경우 연방(Bund)이 책임진다는 원칙이다. 최근 유럽통합과 관련해서도 이 원칙은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으며, 한 국가 수준에서 감당하기 힘든 사무는 유럽연합이 책임지게 되는 수순이다.견련성의 원칙은 ‘주문한 자가 지불한다(Wer bestellt, bezahlt)’는 것으로서, 사무위임과 재정 간 연계를 위한 기본원칙으로서 독일 기본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기본법 제28조 제2항은 지방자치단체의 자기책임(Eigenverantwortung)과 재정적 자기책임의 보장(Gewährleistung der finanziellen Eigenverantwortung)에 관해 규정하고, 기본법 제104조a 제1항에서는 ‘연방과 주는 기본법에 다른 규정이 없는 한, 자신의 과제의 수행으로 발생하는 비용을 별도로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결국 행정의 경쟁력(Verwaltugnskompetenz)은 지출부담(Ausgabenlast)의 배분이 필수적이고, 결정적이라는 것을 설명해준다. 더불어 기본법 제104조a 제2항에서 연방에서 지방자치단체로 위임된 사무의 경우 재정적 책임은 연방에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재정분담이 전제되지 않은 사무위임을 제한하고 있다.
독일의 자치입법권 및 자치행정권
독일 기본법 제70조는 연방과 주의 입법 권한에 대해 구분하고 있는데, 연방은 주와 지방자치단체에 비해 행정적으로 상당히 제한적인 업무만을 수행한다. 일반적으로 국가의 업무 가운데 기본법이 직접 연방의 업무라고 규정한 경우이거나 또는 기본법에서 위임하여 제정된 연방 법률이 연방의 권한이라고 규정한 경우만 연방의 업무에 해당하며, 연방이 입법권을 행사하지 않는 사항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주가 입법권을 갖는다(독일 기본법 제72조, 제74조). 연방이 전속적 입법 권한을 갖는 분야는 구체적으로 외교, 국방, 통화, 고속도로, 연방철도, 우편제도, 경제·사회정책(사회보장 정책 포함)의 수립, 과학기술 및 학문육성정책, 전국적인 재난에 대한 대응
등이다(독일 기본법 제73조).
독일에서 게마인데는 역사적으로 국가(Staat)보다 먼저 생성되었으며, 이에 자기책임을 가지고 그 지역 내의 모든 업무에 대한 경쟁력이 발전해왔다고 유추할 수 있다. 실제로 독일 기본법은 게마인데의 광범위한 자치권을 보장하고 있는데, 주민의 교육, 사회, 교통·운수, 소방 등 지역사회의 광범위한서비스 업무를 수행하고, 도로·공원 등 각종 시설을 건설·유지· 관리하는 사무와 토지 이용계획·건축계획을 마련하고 집행하는 사무 등도 게마인데의 사무에 속한다. 게마인데는 독일 지방자치제도에서 실질적인 핵심적 주체로서 기능한다.
독일의 자치 재정권
기본법 제10장은 독일의 재정제도(Finanzwesen)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독일 정부(연방, 주, 게마인데)의 세수와 세출구조에 대해 알 수 있다. 우선 기본법 제106조는 연방과 주가 부과할 수 있는 세목과 공동세(Gemeinschaftsteuer)에 대해 열거하고 있다. 연방, 주 그리고 게마인데는 각각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재정이 필요하며, 이러한 재정은 세금을 통해서 충당된다.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세금이 분배되는 과정은 기본법에 매우 자세하게 열거되어 있으며, 기본법에 배치되는 세금부과는 있을 수 없다. 독일의 조세는 개별세와 공동세로 구분되는데, 이는 연방정부와 주정부 간 공동사무나 혼합재정에서 핵심문제다.
이 중 중요한 세금은 ‘공동세(Gemeinschaftsteuer)’이며, 공동세는 우선 세수를 하나의 큰 단지(Topf)에 넣어 두고 모은 이후, 정확한 규정에 따라 연방, 주 그리고 게마인데에 분배된다. 공동세는 독일 조세 세입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5개 세목(소득세 Einkommensteuer, 근로소득세Lohnsteuer, 법인세 Körperschaftsteuer, 매상세 Umsatzsteuer, 이자세 Kapitalertragsteuer)에 대해 일정 비율로 분배하고 있다. 또한, 기본법 제107조에 따른 연방의 주에 대한 재정조정에 있어서도 게마인데의 재정력과 재정수요를 고려하도록 의무화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