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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권레터]지방자치단체와 남북교류협력, 의미와 과제

작성자웹진관리자 소속기관교육홍보부 작성일2021-12-09
정책공간

지방자치단체와 남북교류협력, 의미와 과제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견딘 지방자치가 꽃 피운지 30여년이 되었다. 남북교류협력의 장이 마련된 것도 비슷한 시기로, 지방자치와 남북교류협력은 손잡고 함께 발전해나가는 동반자와 같은 사이다. 지난 시간동안 지방자치단체와 남북교류협력이 어떤 성과와 우여곡절이 있었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발전해 나가야 할지 살펴본다.
고경빈 /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남북교류협력특별위원장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 지 30여년이 되었다. 제헌헌법에 근거를 두고 6.25전쟁 와중에도 지방의회선거를 치루며 착수한 우리의 지방자치는 5.16 군사 정변으로 지방의회가 해산되고 유신헌법으로 그 실시시기를 통일 이후로 미루는 등 30여년 중단된 적이 있다. 그러다가 1987년 6월 항쟁으로 개헌을 이루고 지방자치법이 부활하여 1991년에 지방의회가 다시 구성되고 1995년부터는 지방자치단체장도 주민의 직접투표로 선출하게 되었다.
5.16 군사 정변과 제4·5공화국 등 그 후계 권위주의 정부가 중단시킨 지방자치가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민주화를 통해 부활하여 제6공화국에서 착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제6공화국은 그간 중단되었던 지방자치를 부활했을 뿐만 아니라 분단 이래 금기시해 왔던 남북교류협력의 문도 열었다. 제6공화국 초대 대통령(노태우)은 북한과 평화 공존하면서 교류협력을 통해 점진적 평화통일을 추구한다는 7.7선언(1988년)을 천명하여 대북정책을 크게 전환하였고 남북교류협력법(1990년)을 제정하여 남북교류협력의 추진을 법적으로 뒷받침하였다. 이러한 정책 방향과 법제도는 이후 보수와 진보 정당 사이를 오가는 정권교체와 남북관계의 부침에도 불구하고 제6공화국의 역대 정부가 기본적 방향을 계승해 오고 있다.
제6공화국 이전에도 남북회담이나 남북교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이러한 남북교류협력이 모두 통치행위 차원에서 이루어졌으며 일반 국민의 참여는 제도적으로 봉쇄되어 있었다. 일반 국민의 남북교류협력 시도는 통치행위라고 주장할 수 없었으며 오히려 국가보안법에 의해 반국가행위로 처벌되기 쉬웠다. 그러나 1990년 남북교류협력법은 통치행위 차원에서의 접근이 어려운 일반 국민도 법적인 절차와 요건을 갖추면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 북한을 방문하거나 남북교류협력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가 독점하던 남북관계에 일반인의 참여가 가능해진 것은 역시 민주화 운동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자치와 남북교류협력은 참여의 확대라는 차원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하고 확장한 민주화의 쌍둥이 자녀라고 할 수 있다.
남북교류협력도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진행되어 왔다. 남북교류협력의 전성기는 2000년과 2007년 즉 두 번의 정상회담 사이 기간이다. 이 시기에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 다양한 경협사업과 이산가족 상봉과 문화체육 등 여러 분야 교류협력을 위한 남북왕래와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2007년에는 월 1억달러의 남북교역이 이루어졌고, 우리 국민 1만명이 이런저런 목적으로 방북하였다(월 3만명의 금강산 관광객수 제외). 연간 자동차 20만대, 선박 1만척, 항공기 150대가 남북을 왕래했다. 연간 무역 30억달러, 방문 외국인 10만명은 북한의 형편은 물론이고, 대외무역과 해외여행 규모가 월 600억달러와 100만명이었던 당시 우리 사정에 비추어도 제법 의미 있는 규모로 볼 수 있다. 북한산 바다 모래가 수도권 수요의 50%를 충당하고, 북한산 반입물품의 25%를 차지하는 조개는 국내 시장에서 인기를 얻어 관광지 식당가는 물론 도심에도 북한산 조개구이 전문식당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인천항과 남포항, 부산항과 나진항 사이에는 정기 항로가 개설되었고 부산과 인천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북한 선수단은 타고 내려온 선박을 숙소로 사용하며 항구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우리는 북한 민간선박의 제주해협 통과를 허용하였고 북한은 우리의 유럽행 항공기가 더 짧은 항로를 이용하도록 하늘을 개방하였다.
지방자치단체도 남북교류협력에 참여했다. 강원도는 연어의 회귀본능을 이용한 협력 사업을 진행했고, 제주도의 대북감귤 지원 사업은 도민들의 전폭적 참여로 추진했던 점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북한과 접경을 이루는 강원도, 경기도, 인천광역시는 남북교류협력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여 전담부서를 마련, 본격적인 사업추진에 나섰으며 지금은 전국 모든 광역단체는 물론 일부 기초단체에도 담당부서가 구성되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지역 특성과 환경, 북한과의 역사적 문화적 연고, 경제적·지리적 연계의 시너지 효과 등을 감안한 다양한 남북교류협력 사업이 구상되고 추진되었다.
북한 핵문제와 한반도 정세의 긴장구조의 압도적 제약아래에서 아직은 성과가 없지만 지방자치단체의 남북교류협력은 그 성격상 한반도 긴장완화와 남북화해에 기여하는 중요한 계기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정치이념이나 외교안보라는 거대담론으로 다루어지던 남북교류협력을 우리 주변의 일상적 문제로 마주치게 함으로써 생활담론으로 바라보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추진하는 풀뿌리 평화통일 노력인 것이다.
남북의 중앙정부는 존재론적으로 상호 배타적이다.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를 주장하는 중앙정부간의 관계는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미묘하고 민감하다. 남북기본합의서(1992년)는 “남북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설정된 특수한 관계”로 규정하고 평화공존에 합의했지만 각자의 정통성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정부의 정통성에 조금이라도 의심을 받게 하는 남북교류협력은 남북갈등 이전에 남남갈등의 소재가 되어 국내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결말지을 수 없는 거대담론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지방자치단체의 남북교류협력은 이러한 소모적인 거대담론의 함정을 벗어나서 생활담론의 차원에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중앙정부 사이는 정부의 존립기반 자체가 상대방을 부정하거나 배제하려고 하지만 지방정부 사이에는 그러한 관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와 남북교류협력은 모두 일반 국민의 참여를 통해 발전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지방자치와 남북교류협력의 성장은 한편으로 이에 참여하는 일반국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확장시키기도 한다.
과거 우리는 해외여행을 정부의 허가를 얻어야 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해외여행자유화가 이루어지고 월 수백만명이 해외여행을 떠나는 지금 우리는 해외여행을 특권이 아니라 일반 국민 모두의 권리로 인식하고 있다. 남북교류협력도 그리 될 것이다.
지방자지단체의 남북교류협력이 극복해야 할 한계와 과제도 많다. 첫째, 파트너가 될 북한의 지방정부가 자율권이 없다는 점이다. 지방자치는커녕 기본적인 민주주의 환경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노동당의 획일적 통제 아래에 있는 북한의 지방정부와 교류하려면 먼저 북한의 중앙당국과 협의를 하고 허락을 얻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남북교류협력에 나서는 이유는 이러한 과정을 통하더라도 궁극적으로 북한의 지방정부와 교류협력을 성사시키는 것이 여러모로 유익하다고 본 것이다. 처음부터 각오하고 준비했던 것이고 양적인 변화가 축적되면 질적인 변화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전략이다.
둘째, 우리도 남북교류협력을 중앙정부의 고유권한으로 생각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적인 대북교류에 소극적이다. 지방자치의 역할 범위는 날로 확대되고 있으며 주민생활과 지방산업, 지역문화가 행정구역과 국경을 넘어 발전하고 있다. 국제협력을 중앙정부가 전담하거나 독점할 수 없듯이 남북교류협력을 거대담론이 아닌 생활담론의 수준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확장으로 이해한다면 남북교류협력이 중앙정부의 고유권한이라고 생각하는 기성의 관념에도 변화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셋째, 일반 주민사이에 만연된 남북관계에 대한 소모적인 거대담론을 실용적인 생활담론으로 바꾸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각 개인이 나름 확립한 정치 관념이나 남북관계에 대한 이념적 태도를 바꾸자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하다. 과거 남북교류협력이 가다 서다를 반복했었고 지금은 오랫동안 중단되어 우리 현실과 동떨어진 일로 느껴진다. 금강산 사업을 필두로 남북교류협력이 차례로 중단된 지 10년이 넘었다. 최후의 보루였던 개성공단이 문을 닫은 지도 5년이 되었다. 그동안 남북교류협력의 재개를 위해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큰 성과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희망고문에 지쳐가는 한편, 과거 남북교류협력 전성기에 체험한 사회적 활기나 그 잠재력에 대한 실재적 현실감각을 되살리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과거 남북교류협력에 들였던 노력과 비용이 허사였고 낭비였기에 또다시 힘들여 추진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남북교류협력 무용론이다. 남북교류협력을 생활담론의 장으로 끌어내는데 이러한 무용론은 가장 큰 장애물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용론은 대개는 편향되거나 피상적 생각과 이념에 근거한 관념론이다. 소모적 거대담론의 부작용이다.
과거의 경험에 근거를 두거나 이것을 제대로 반영한 판단이 아니다. 북한산 모래나 조개의 반입은 단기간에 큰 수익을 내었던 사업이다. 초기의 장기적 투자가 필요하였던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사업도 10년 이상 투자회수를 했고 하필 손익분기점 통과시점에 중단되었다.
만족스럽게 진행되지 않았지만 남북협력이 꼭 필요한 분야도 있다. 접경지역의 말라리아 방역과 남북공유하천 관리 사업 등이 있었으며, 긴장의 서해바다를 평화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논의되기도 했다. 수익성을 따지기에 앞서 지금도 여전히 간절히 필요한 사업이다. 남북교류협력이 표류하고 중단되어 있다고 해서 낭비이며 헛수고라는 판단은 우리의 경험과 필요에 비추어 근거가 없다.
넷째, 북한 리스크와 리스크 관리에 대해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북한과의 교류협력에는 여러 어려움과 장애물이 산재해 있다. 남북 적대관계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감수해야 하는 위험, 북핵문제로 인한 국제사회의 제재, 남북의 제도·관습 차이, 북한의 폐쇄성과 불투명성, 북한 내부 산업 인프라와 정보 부족 등이 대표적이다.
북한 리스크는 이런 것을 포괄한다. 남북교류협력 현장에서는 사업추진 환경의 불투명성과 예측 불가능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마디로 북한을 어떻게 믿고 사업 하느냐는 하는 것이다.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등 남북교류협력 중단으로 손해 보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 리스크를 모르고 남북교류협력이 시작된 것이 아니다. 북한 리스크를 감수하는 대신 이러한 리스크를 관리할 책임과 의무를 정부가 지고 시작한 것이다. 남북교류협력사업 현장의 지평에서 보면 북한의 대남도발이나 핵실험 가능성 등 북한 리스크는 언제나 상수였다. 그러나 북한 리스크를 관리하는 우리 정부의 조치가 오히려 예측할 수 없었다.
5.24 조치,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중단 조치 모두 북한이 아니라 우리 정부 조치였다. 과거 서해교전 때에도 중단되지 않았던 남북교역이 천안함 사건으로 중단되었고, 과거 3차례의 북한 핵실험에도 운영을 하던 개성공단이 4번째 핵실험을 견뎌내지 못했다. 북한 리스크에 대한 관리의 실패를 북한 리스크 자체에 전가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회피로 보인다. 그래서 남북경협 기업의 원망이 북한이 아니라 주로 우리 정부에게로 향하고 있는 이유이다.
남북 적대관계가 해소되었기에 금강산 관광을 시작하거나 북한이 핵을 포기했기 때문에 개성공단 사업을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북교류협력은 북한 리스크가 해소되어서가 아니라, 해소하기 위해 추진한 것이다. 남북교류협력이 추진되더라도 북한 리스크가 즉각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지도 않았다. 북한 리스크의 존재를 전제로 북한 리스크를 관리해 가면서 추진한다는 것이 7.7선언의 핵심이다.
마지막으로 주민참여 기반위에 비전을 담아 남북교류협력에 대한 생활담론을 형성하는 노력이 전개되어야한다. 과거의 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은 탄탄한 준비가 없이 남북교류협력 붐을 타고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상당수였다. 더러는 주민참여의 과정이 미흡하거나 주민의 시각에서 생활담론으로 받아들이기 애매한 사업도 있었다. 당연히 그런 사업은 남북교류 현장에서는 물론 지역주민들의 관심사에서도 살아남기 어렵다. 실패는 성공보다 유용한 교훈이 된다고 한다. 남북교류협력의 과거 경험과 시행착오는 새 출발의 중요한 디딤돌로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정부기관과 현장실무가, 전문연구가들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의 발전,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화해협력의 진전을 이루고, 한편으로 거대담론에 질식된 기성의 남북교류협력 논의가 생활담론 수준에서 활성화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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