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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권레터]지방정부의 남북교류협력의 방향과 역할, 6.15공동선언 20주년에 부쳐

작성자웹진관리자작성일2020-06-10
열린공간
지방정부의 남북교류협력의 방향과 역할
6.15공동선언 20주년에 부쳐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것 같았던 남북의 지도자가 만나 6.15 공동선언을 한지 올해로 20주년이 되었다. 그 후로 남북관계는 진전과 퇴보를 반복했고 여러 우여곡절로 평화와 불안의 시기를 넘나들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전무후무한 감염병인 코로나19를 계기로 다시 한 번 한반도의 주체적인 평화를 위해 지방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남북교류협력특별위원장)

6.15 공동선언
의의

우리들의 가슴을 한없이 뛰게 했던 6.15 공동선언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 지났다. 이 선언의 주인공들은 유감스럽게도 세상을 떠났다. 돌이켜보면 이 선언은 1972년에 이루어진 7·4 남북 공동 성명으로부터 거의 한 세대가 지난 후에 이루어진 것이어서 그 감격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로부터 7년 후에 이루어진 10.4 남북공동선언, 18년 후에 이루어진 4.27 판문점 선언 그리고 9.19 평양 선언들도 모두 6.15선언의 후속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선언을 낳은 정상회담들을 계기로 분단 너머에 있는 통일을 보다 적극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고, 평화를 노래할 수 있었으며, 남북화해 조치들을 하나씩 실행해나갈 수 있었다.
남북정상회담
그러나 분단현실은 우리의 생각보다 강고한 것이어서 희망보다는 실망과 좌절의 시간들이 더 많았다. 2007년 10.4선언은 불과 3개월 만에 국내 정치적인 요인에 의해 의미를 상실했고, 2018년의 4.27선언과 9.19선언은 2019년 2월의 하노이 북미회담의 결렬에 의해 그 의미가 반감되었다. 6.15선언만이 약 10년간 유효하게 작동했으며, 이 시기의 남북교류와 협력의 경험이 평화의 기억을 구성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 20년간
남북관계의 득과 실

우리는 지난 20년간의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를 통하여 무엇을 배웠는가. 6.15선언 이후 남북관계는 장기수 송환,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설립을 매개로 하여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 시기에 남북교류가 확대되고 북한 경제의 운용에서 남북간 교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였으며, 시민사회의 대북 지원을 통한 신뢰도 착실히 축적되어갔다. 이 과정에서 통일부와 대북지원단체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 즉 위로부터의 비전과 아래로부터의 열정이 어우러져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중간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의 위상과 역할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제도화에 소홀했다.
이 시기의 남북관계의 순조로운 발전에 가장 큰 장애물은 북한의 핵실험이었다. 북한의 2006년 1차 핵실험과 2009년의 2차 핵실험이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쳤지만, 북한은 자신들의 핵실험이 남북관계가 아닌 북미관계의 맥락에서 불가피한 것으로 설명하곤 했다. 그러나 사실상 동아시아 냉전분단체제하에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완전히 분리시켜 사고한다는 것은 타당성이 별로 없는 것이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7년간의 단절과 갈등의 국면은 전쟁위기까지 불러온 어두운 시기였다. 이 기간에 우리는 한반도 문제가 남북관계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북한의 지속적인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 그리고 미국과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미증유의 경제제재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남북의 화해와 평화가 국내정치 뿐 아니라 북미관계, 그리고 세계의 안보와 평화를 위협하는 사건들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남북

최근 한반도 정세 변화

2017년은 어려운 시기였다. 촛불혁명에 의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지만, 북한은 핵실험과 함께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고, 미국 정부는 이에 맞서서 강력한 제재와 함께 최후의 수단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은 특정 전략적 장소들에 대한 선제 공격카드를 준비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통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평화라는 인식이 커졌다. 평화를 위한 최후의 기회가 평창 동계 올림픽과 함께 찾아왔다. 북한도 올림픽 참가를 명분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2018년 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김정은 두 정상은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하여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을 선언하였다. 특히 65년간 이어져 왔던 휴전 상태를 종식시키는 종전선언과 함께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로 남북이 합의했다. 이어 열린 평양회담과 ‘9.19 선언’은 비핵화, 군사, 경제, 이산가족, 문화 체육 분야 등 5개 영역으로 나누어 과제를 선정하고 이를 이행하는 체계를 만들자고 합의하였고, 이어 군사회담을 통해 비무장지대의 긴장을 낮추는 상징적 조치를 취했다. 상호적대 행위의 중지와 비무장지대 초소의 시범적 철거가 이루어졌다.
2018년 두 차례 정상회담의 성과에 힘입어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는 남북 간 교류협력이 증대될 것을 예상하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남북교류협력특별위원회를 설치하여 교류협력의 방향을 정립하고 업무를 조정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특별위원회에서는 남북 교류협력에서의 지방정부의 적극적 활동을 위하여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최우선 과제는 자유로운 왕래와 사회문화적 소통이 되었다.
남북
한반도 평화를 위한 최후의 결정은 북미정상회담으로 넘어갔다. 역사상 최초로 미국 대통령이 북한 최고지도자를 만났지만, 유감스럽게도 2019년 2월의 하노이 회담은 별 성과 없이 끝났다. 미국의 생각과 북한의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예상과는 다른 것이어서 충격이 컸다. 처음부터 동상이몽이었는지, 회담 과정에서 생각이 달라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결정을 북미회담에 맡긴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남북간 합의로 할 수 있는 일을 북미회담의 영역으로 미룸으로써 우리의 자율적 결정의 영역을 스스로 축소시킨 것은 아니었을까.

코로나19로 인한 북한의 상황
그리고 지방정부의 역할

2020년 정부는 교착되어버린 남북관계를 타개하려는 의지를 표명하기 시작했으나 코로나 19는 이런 움직임을 정지시켰다. 이 바이러스는 중국으로부터 시작되어 유럽과 미국을 강타했다. 한반도도 예외가 아니었다. 세계적 감염병의 대유행의 책임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되고, 신자유주의하에서 급속히 팽창되었던 국제 이동에 장벽이 생기고 있으며, 지방적 상황이 중요해짐에 따라 지방정부의 역할이 강화되고 있다. 세계질서를 포함한 사회 자체가 재구성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신뢰할만한 정보가 부족하지만, 북한은 강력한 방역으로 코로나19의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를 위한 상당한 대가를 치른 것은 분명하다. 북중 국경을 완전히 폐쇄했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의 생존에 필요한 물자가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관광진흥을 위해 마련한 원산 갈마지구의 시설 개장도 미루어야 했다.
남북
북미회담의 교착 원인에 대한 성찰, 코로나19가 가져온 인식의 변화는 한반도 평화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기후나 환경, 감염병 문제에 관한 남북 협력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커지고 있고, 이에 따라 비핵화 패러다임이 상대화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혼란스러운 미중관계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아야 하며, 2018년에 이루어진 남북합의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통일부는 최근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남측 주민이 좀 더 자유롭게 북측 주민과 접촉할 수 있도록 하고, 지방정부를 남북 간 협력사업 주체로 인정하는 내용이다. 이런 개정안이 국회에서 의결되면, 지방정부는 좀 더 의미 있는 남북교류를 추진할 수 있게 된다. 출범 후 1년여 동안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남북교류협력특별위원회는 외부 환경이 어려워짐에 따라 주어진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했지만, 새로운 상황에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각오를 다질 필요가 있다.
  • 담당팀 : 정책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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