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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권레터]한반도 평화의 길에서 짚어보아야 할 몇 가지 의제

작성자웹진관리자 소속기관교육홍보부 작성일2021-06-04
열린공간

한반도 평화의 길에서 짚어보아야 할 몇 가지 의제

평화통일이라는 말은 애초에 전쟁이 아닌 평화로운 방법으로 통일을 해야 한다는 말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평화통일을 추진하는 현재의 과정을 살펴보면, 평화와 통일이라는 말은 방법과 목표가 결합하였을 뿐 아니라 단계를 이야기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 우리에게 평화통일은 평화로운 방법으로 통일하자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평화체제라는 단계를 거쳐 통일체제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평화체제와 통일체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합의된 명확한 정의가 없다. 평화체제와 통일체제는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이다. 그런데 이정표에 단어는 있는데 화살표가 안 보인다. 평화통일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평화통일에 대한 실천적 정의를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헌수 / 남북강원도협력협회 이사장,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남북교류협력특별위원회 위원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남북문제 해결의 일차적인 목표지점은 1민족 2국가의 대결체제에서 1민족 2국가의 두 체제 하에 평화를 구축하는 것이다. 통일은 그 이후의 일이다. 그렇지만 통일의 현실 가능한 방식도 1국가 2체제의 방식이 될 것이다. 궁극적 통일이라고 할 수 있는 1국가 1체제는 1국 양체제 경험의 축적과 우리 민족과 인류가 공동으로 겪고 있는 문명사적인 위기를 극복해 가는 대전환의 길을 열어가면서 만들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1민족 2국가 대결 2체제, 1민족 2국가 평화 2체제, 1국가 2체제, 1국가 1체제로 가고자 하는 통일의 길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 길은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남북협력으로, 생명(바이오) 사회를 향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는 ‘한반도 신문명의 민족협력 통일시대’이다. 이 신문명 통일시대는 남한 자본주의, 북한 사회주의가 아닌 제3의 체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남북 협력과 궁극적 통일의 길은 이 과정에 있다.
지난 1월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북은 70년 넘게 써온 ‘우리민족제일주의’가 아닌 ‘우리국가제일주의’라는 시대어를 내놓았다. ‘우리국가제일주의’는 2017년 11월 30일 북한이 핵 무력을 완성하면서 노동신문에 처음 등장한 말이다. 이는 강고한 제재를 극복하고 군사적으로 전략국가의 지위에 오른 자신감과 ‘북한사회주의 경제강국’을 건설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북한이 내세운 ‘우리국가제일주의’에서의 ‘우리국가’는 ‘북한사회주의국가’를 말하는 것이다. 앞으로 북한은 정치사상강국, 군사강국을 이루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최소 5~10년간 북한사회주의 경제강국 건설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즉 ‘우리국가제일주의’로 정치, 경제, 군사적인 강국으로 우뚝 서, 남한과의 협력과 관계없이 국제제재를 극복하면서 독자적인 사회주의 강국을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남과 북의 공동번영은 그 이후의 일이다. 서로 다른 두 체제로 각자 발전, 공존하는 것이 우선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민족제일주의’에서 ‘우리국가제일주의’로 시대어가 변한 것은 북한사회주의 강국 건설에 집중하여,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하고 민족 공동번영을 위해 협력하고 이후 체제 통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남한은 현재 미·중의 패권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중국과의 경제적 이해관계, 미국과의 정치·군사적 이해관계에 얽혀 다소 곤혹스러운 처지에 있다. 한반도에 영향을 가장 크게 미치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남북평화를 모색해 가야 한다. 미국과의 관계를 무시하고 독자적인 입장에서 계획을 세워 남북협력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남북협력보다 한미동맹이 우선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조건에서 남북협력을 추진하는 남한의 동력은 매우 제한적이다. 북미 간의 관계, 특히 미국의 입장을 존중하고 따를 수밖에 없다.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도 UN과 미국의 제재라는 틀 내에서 이루어지게 되어 있어서 독자적인 공간이 매우 협소하다.
그렇지만 남한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남한 내부에서 남북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은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내부의 민족 분열적 요소를 청산하면서, 남북화해와 협력을 위한 내부의 동력을 키워가는 일은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다. 이는 대북제재와 관계없다. 스스로 민족화해와 협력을 이루는 자강력을 키우는 일은 우리 내부의 문제이다.
촛불혁명으로 만들어진 민주와 평화의 에너지를 남북협력을 위해 사용하지 못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실패이다. 남북평화를 위한 내부의 자강력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가장 기초적인 일이다. 지난 5년을 돌아보면 기본에 충실하지 못했다.
미국이 한반도를 바라보는 기본 입장은 세계에서 팍스아메리카나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관점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남한이나 북한 모두 원하는 한반도의 평화는 미국의 목표가 아니다. 우리 사회 일부에서 막연하게 기대하는, 미국이 우리에게 선의로 남북평화를 만들어주는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다.
현재 미국의 가장 큰 관심은 중국의 세계 패권 도전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바이든의 가치동맹은 이현령비현령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가치는 언어적인 수사에 불과하다. 중국을 봉쇄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솔직한 속내이다. 단적으로 베트남과 협력이 동맹 수준으로 추진되는 것은 미국이 내세우는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와 전혀 상관이 없다. 미국이 말하는 미국적 관점에서의 인권도 보편적 가치로서의 인권이 아니다. 미국의 관점이 보편적 관점이라고 주장하는 것일 뿐이다. 미국이 정치, 경제, 군사적인 힘에 의거해서 만든 규칙을 세계적인 규칙으로 강제해 온 팍스아메리카나의 한 면일 뿐이다.
미국이 보는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는 시대에 따라 변해 왔다. 1945년 한반도를 분단시킬 때에는 소련의 진출을 막는 전초 단위로서, 북한을 악마화하면서 분단체제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최근까지는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봉쇄하는 방어선으로서 북한을 적대시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제는 중국을 견제하는 동아시아 MD 구축(성주의 사드 배치)의 완성으로 북한을 악마화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여기에 더하여 미국은 중국이 미국의 태평양 봉쇄와 관계없는 인도양 아프리카 등으로 진출하는 것을 봉쇄할 필요가 커졌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한반도의 군사 전략적 비중이 줄어든 것도 북에 대하여 적대시할 필요가 줄어들게 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한미일 군사 동맹의 필요성 때문에 북한의 악마화의 필요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게다가 북한은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자위적 무력을 강화해 온 것이 이제는 미국에 대한 현실적 위협으로 되었다. 미국의 세계지배에 동조하는 나라들을 제외하고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나라가 얼마 전까지는 러시아, 중국 두 나라였다. 2017년 북한이 핵무력을 완성함에 따라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세 번째 나라가 된 것이다. 이로써 미국이 일방적으로 북한에 군사적 겁박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일방적인 군사적 압박이 아닌 북한에 의한 대미 도발을 관리해야 하는 처지로 입장이 바뀌었다.
여러 이유로 미국의 대북정책은 전략적 변화를 모색할 조건이 갖춰져 가고 있다.
바이든은 지난 3월 25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북핵 문제가 대외적으로 가장 큰 위협이라고 했다. 미국은 당면한 가장 큰 위협인 북핵 문제를 전략적 인내나 탑다운 방식으로 일괄 타결하는 것을 추진하지 않고 새로운 접근을 하겠다고 한다.
올해 들어 사람들은 미국이 북한에 먼저 대화를 제의할 것으로 예측했다. 예상대로 미국은 검토해서 정리한 대북정책을 북한에 설명하겠다고 했고, 북한은 이를 접수하겠다고 했다. 지금 북한은 여러 가지로 미국이 설명하려고 하는, 즉 미의 대북 제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추측된다. 북한이 즉답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을 보면 미국의 제안이 바로 받기에도, 거절하기에도 애매한 것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싱가포르 선언에서 출발하겠다는 미국의 입장을 고려하면, 미국이 검토 완료한 대북정책안에는 군사적 긴장 완화문제와, 아마도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이 제재해제를 요구한 2016~17년의 UN 대북제재 5개 결의안에 대한 조건부 양보의 내용에 담겼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북한의 완전 고립을 제한적으로 푸는 대신 북한의 마지막 남은 결정적인 대미 위협인 핵잠수함에서의 SLBM 발사실험을 막으려고 할 것이다. 당장은 미국에게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북한의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후 단계적인 비핵화의 과정에 대한 협의가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대중 압박 전선의 강화를 위해서도 장기적으로 북한을 궁지에 몰아 중국 쪽으로 기울게 하는 일은 미국으로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과 베트남 관계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국을 견제하는 데 지장을 초래하지 않을 정도로 북한을 미국 쪽으로 기울게 할 필요가 커지고 있다. 다만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최우선 동맹인 일본이 북한을 계속해서 적대시하도록 요구하고, 남북 간의 긴장을 고조시키려고 하는 일본의 전통적인 한반도 전략은 걸림돌이 될 것이다.
미국과 패권경쟁 중인 중국은 국제적인 고립의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세계 각국이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지만,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인 나라는 소수이다. 미·중의 패권 경쟁 아래서 남한이 어느 한 편에 일방적으로 서는 일은 없겠지만, 남한이 미국과 강하게 결합하여 중국을 압박할수록 중국과 북한은 서로 결합할 필요가 점차 높아진다. 한미정상회담 직후 중국과 북한이 접촉하는 것에서 그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미 국무부의 성김 대북특별대표, 크리튼브링크 동아시아태평양차관보의 임명에 따라 미국의 대북정책 라인들의 면면이 드러나고 있다. 미국의 인사청문회가 마무리되는 5월 말, 6월 초 이후에 북미 간의 공식접촉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여기에서 북미 간의 대화 실마리가 풀리면 올 하반기, 남북관계 교착에서 다시 대화로 분위기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
우리의 희망대로 된다면, 남북의 대화와 협력은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선언의 후속 합의 성격이 강한 남북 간의 9.19 평양선언의 실천에 방점이 두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남북관계가 재개된다면 되돌릴 수 없는 협력의 틀을 확고하게 만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인도적 지원이나 사회문화교류를 넘어서서 개발협력, 경제협력으로 착실하게 발전시킬 준비를 해야 한다. 전국의 각 시‧도뿐만 아니라 기초자치단체 단위에서 실질적인 협력사업의 주제를 발굴하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반기에 시작될 대선정국도 남북교착 상태를 타개해 나가는 데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대선은 총선이나 지선과 달리 남북의 평화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다. 대선에서 남북평화 의제가 어느 수준으로 다뤄지느냐도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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