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 탄소중립시나리오,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모두 지난 정부에서 수립된 중장기 계획과 목표다. 현재의 제반 계획과 활동 그리고 목표로 2050 탄소중립사회 실현은 쉽지 않아 보인다. 기조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대통령 소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이하 탄녹위)는 지난 10월 출범 했다. 지난 정부의 ‘탄소중립위원회(이하 탄중위)’를 그 기반으로 하고 있다. 지난 정부의 ‘탄중위’와 새 정부의 ‘탄녹위’는 그 기조와 방향에서 상당한 차이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지난 한 분기 동안 탄녹위 위원으로 공정전환·기후적응 분과 활동을 하면서 현실적으로 느낀 것은 위원회는 여전히 ‘탄중위’ 기조에 머물고 있는듯 하다.
윤석열 정부의 탄녹위는, “강력한 녹색성장을 통한 탄소중립사회 조기 실현”을 지향하고 있다. 기존 탄소중립위원회에 녹색성장을 더한 이유다. 기본적으로 ‘탄소중립’은 규제적 성격이다. 즉, 규제를 통한 변화와 전환을 이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푸쉬(push) 모델’이라 한다. 그리고 ‘녹색성장’은 인센티브적 성격이다. 강력한 인센티브를 통해 녹색혁신을 촉진하고 이를 통해 녹색성장을 구가하는 개념이다. 그래서 ‘풀(pool) 모델’로 칭한다.
자석은 밀어내는 힘과 당기는 힘 모두를 가지고 있다. 같은 극끼리 만나면 서로 밀어낸다. 일정한 조건 값이 정해지지 않으면 무질서하게 서로 밀어낸다. 자석의 당기는 힘은 간단하다. 흩어져 있는 철과 같은 물체는 당기는 힘이 센 자석 쪽으로 질서 정연하게 모이게 된다. 산업전환이나 사회변혁 활동에서 이와 같은 자석의 상호작용 원리를 활용하는 것은 중요하고 또 실효적인 혁신 방법론 중 하나다. ‘푸쉬(push, 강제하는) 모델’을 통한 혁신은 성공하기 쉽지 않다. 어떤 형태로 작용 반작용이 일어날지 예측하거나 가늠하기 어렵다. ‘풀(pull, 강력한 인센티브) 모델’은 혁신이나 전환 활동에 더욱 실효적이고 성공확률을 높이는 방법이다. 그 지향하는 방향이 미리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때 보조적으로 ‘푸쉬 모델’을 활용할 때 그 성공확률은 배가 된다.
‘탄소중립사회’, ‘온실가스 감축’,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이나 기업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세계 속에서는 그 이행과 실천이 쉽지 않다. 경제성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이를 실천하고 행동하는 것 보다 벌금이나 규제를 적용 받는게 경제적으로 볼 때 더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행태가 이러하다 보니 환경부를 중심으로 정부차원에서는 더욱 강력한 그리고 촘촘한 규제를 내세우고 있다. 여러 규제적 성격의 정책과 제도가 쏟아지니 마치 자석의 같은 극이 만나 서로 밀어내는 힘을 만들면서 무질서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은 형국이 전개되고 있다. 특히 기초 인프라와 제도적 기반이 취약한 지방정부의 관점에서는 과도하고 복잡한 중앙 규제아래서 지역민과 지역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국가적 측면에서 탄소중립사회를 조기 실현하려면, 중앙정부의 규제가 아닌, 지역에 강력한 ‘녹색성장’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이를 널리 알려 많은 지역민과 지역기업이 이 흐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는 ‘탄소중립·녹색성장’ 활동에 참여 하는게 경제적으로 더 유익하도록 정책과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즉, ‘인센티브 행정’이 필요하다.
호주 멜버른시는 2040 탄소중립사회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의 2050보다 10년 앞선 목표다. ‘미래 멜버른 위원회(Future Melbourne Committee)’에 따르면 도시 온실가스 배출의 66%는 건축물(상업용 빌딩 60%, 주거용 건축물 6%)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따라서 멜버른 시는 건물 소유주, 임차인, 업계 관계자, 시설 관리자 및 주 정부에 CBD(도심 상업지구)의 건물 개조 및 무탄소 건물 신축을 민간 주도로 할 수 있는 공동 정책을 개발하고 이를 촉구하고 있다. 무탄소 건물 임대 개발, 배출 감소에 대한 강력한 인센티브 요율제 적용, 민간-공공 공동조달을 통한 전환 및 개조 비용 감축 등 총 7가지 민간의 자발적 참여와 전환을 이끌어 낼 정책을 개발했다.
호주 멜버른 시의회 별관(Council House 2, CH2)은 2040 탄소중립사회 실현이 충분히 가능함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호주 내에서는 CH2로 불리는 이 건물은 2006년 완공된 공공 건축물로 녹색별(그린스타) 6개를 받은 가장 대표적 친환경 건축물이다. 기존 시의회 건물과 비교 시 전기 소비량 85% 절감, 가스 소비량 87% 감소, 배출량의 13%만 생산, 수도 본관 공급량 72%까지 감소 등 동급의 친환경6성(그린스타)급 건물과 비교시에도 온실가스 배출을 64% 절감하고 있다.
총 건설 비용은 5,100만 달러였으며, 이 중 1,200만 달러는 에너지, 물 및 폐기물 혁신에 투자되었다. 제반 절감 효과를 통해 회수 기간은 10년이 채 되지 않아, 이미 ‘본전을 다 뽑은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멜버른 시는 이 경험과 노하우를 빅토리아 주 뿐 아니라 호주 전역의 공공 및 민간 부문과 공유 하고 있다. 호주의 공공 건축물은 이제 CH2 사례를 기본으로 개조 및 신축되고 있다. 민간의 경우도 투자은행인 맥쿼리 은행이 시드니 본사를 새롭게 신축할 때 CH2의 경험과 노하우를 상당 부분 활용했다.
이런 일련의 녹색혁신 활동 과정을 통해 호주, 특히 멜버른 시는 친환경 건축물의 설계와 시공 그리고 운영 기술 등에 있어 세계적 집적지(클러스터)로 평가받고 있다. 새로운 일자리와 고급 전문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 사례를 접하기 위해 멜버른 시를 찾는 국내외 관계자가 많아지니 서비스 산업이 성장하는 것 역시 자연스런 흐름이다. 지역 시민들도 이제 멜버른은 녹색혁신의 성지(메카)로 스스로 인식하고, 일상 생활속에서도 녹색혁신을 실천하는 새로운 공동체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강력한 녹색성장을 통한 탄소중립사회 조기 실현”의 대표적 사례가 바로 호주 멜버른 시다.
우리의 2050 탄소중립사회 실현 목표를 위해 다음의 사항을 제안하고, 탄녹위 위원으로서 실천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계획이다.
첫째,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의 약칭을 현 ‘탄소중립기본법’에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으로 개칭하고, ‘녹색성장’과 ‘녹색경제’를 실현하는 방법론으로 ‘녹색혁신’이 중요하게 기능할 수 있도록 법 제2조(정의)에 반영해야 한다. 또한 같은 법 제5조 1항 공공기관의 책무에서 녹색혁신의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반영해야 한다. 호주 멜버른 시가 공공부문에서 녹색혁신을 주도하고, 그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축적된 자원을 공공 및 민간 부문과 적극 공유함으로써 민간의 경제적 참여 인센티브를 높이는 효과를 우리도 고려하자는 측면이다.
둘째, 법 제2조 및 제7장의 ‘정의로운 전환’을 ‘공정전환’으로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의 ‘정의로운 전환’은 실업자 등 개인 중심의 피해자 보호 관점인데, 이를 개인-기업-지역공공부문 등으로 이해관계자 범주를 확대하고 탄소중립사회로의 전환에 따른 이해관계자 간 공정성의 원칙을 보다 객관화 및 합리화 할 필요가 있다.
셋째, 법 제53조 정의로운전환 지원센터, 제68조 탄소중립 지원센터 등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설치하고 운영하는 제반 실행기구를 ‘기술적 평가·관리 기구’와 ‘전환·혁신 기구’로 이원화 하고, 후자의 경우 ‘탄소중립·녹색성장 종합지원센터’로 개편 운영하며, 광역과 기초 단위의 역할, 기능, 사무, 인력, 조직, 예산, 권한과 책임 등을 보다 정교하게 설정하여 실행과 실천의 합목적성, 생산성, 그리고 효과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를 ‘오픈 그린-이노베이션 플랫폼’으로 그 역할 정체성을 부여하며 민간의 참여와 주도성을 확대하여 ‘녹색 대전환’을 이끌어 내야 한다.
넷째, ‘탄소·기후(C2)테크’를 산업화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녹색혁신의 유효 시장’을 개발 하는 것이다. 공공이 먼저 나서 C2테크에 기반한 공공조달을 광범위하게 적용 함으로써 각 지역 별 ‘녹색혁신의 유효시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지면의 한계상 상세한 사례를 소개하지 못하지만, 미국과 호주의 연방 및 주 정부 차원의 공공조달을 활용한 C2테크 산업화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C2테크 산업화 및 일상 생활 녹색혁신 실천을 위한 지역 별 ‘민간 탄소중립·녹색성장 거버넌스’를 구성하고, 이를 제도적·문화적으로 뒷받침 해야 한다. 공공부문은 혁신에 따른 위험과 실패비용을 감수하고, 민간은 이를 인센티브적 성격으로 활용하며, 생활 속에서 녹색혁신이 일상화 될 때 탄소중립사회는 조기 실현 될 수 있을 것이다.
여섯째, 지역 주민과 기업의 ‘탄소중립·녹색성장’ 활동이 보다 글로벌 스케일로 전개될 수 있도록 탄녹위가 그 연결 고리 역할을 섬세하게 수행해야 한다. 이미 선진국의 지역민과 지역기업은 ‘탄소중립·녹색성장’이 ‘경제적으로 매력적인 성장 동력’ 임을 잘 알고, 그 유익을 누리고 있다.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 새 정부 탄녹위는 “강력한 녹색성장을 통한 탄소중립사회 조기 실현”을 표방하고 있다. 지역과 민간이 주도하는 ‘상향식 혁신(Bottom-up Innovation)’ 그리고 글로벌 스케일의 맥락에서 산업화를 넘어 새로운 지역 공동체 혁신 문화로 승화될 수 있도록 그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이영달 (경영학박사)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사무총장
대통령소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위원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 상근 자문위원
기고 : [월간 국토] 2023년 2월(통권496호) 4p~6P
Copyright 2016 by GOVERNORS ASSOCIATION OF KORE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