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뜨겁다. 각 정당별 후보자가 확정되었고, 부분적으로 공약들도 발표되고 있다.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세계 10대 선진국으로 도약하게 되는 중요한 관문에 서 있는 시기이다. 그런데 대선 후보자들에게서 지방분권 정책과 공약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선 공약으로서, 차기 정부의 중요한 국정과제로서 지방분권 정책의 의미, 이러한 정책이 필요한 이유와 내용을 살펴본다.
김수연 /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분권제도연구부장
지난 1987년 헌법개정으로 지방자치 실시의 헌법적 근거가 마련되었고, 1991년 지방의회 선거, 1995년 전국동시지방선거로 본격적으로 지방자치가 부활되었다. 금년은 지방의회 부활 기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30년 동안 지방행정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왔다. 특히 지역주민들의 편의를 위한 밀착형 행정을 시행했고, 중앙정부가 관심을 쏟지 못하는 영역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로 행정을 선도해 왔다.
주민들의 알권리를 보장해 주는 청주시 정보공개청구조례,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상인들의 상생을 위한 대규모 슈퍼마켓(SSM)의 의무휴일제 도입 등은 법률보다 우선하여 지방에서 조례를 제정하여 법률적 차원으로 발전시킨 사례이다. 또한 정기 버스노선이 다니기 힘든 산간 지역에 택시 운행을 지원하는 100원 택시, 한여름 뜨거운 열기를 막아주는 횡단보도 그늘막 설치 등 주민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는 행정은 지방정부에서 주도해 왔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드라이브스루 방식 검사 도입, 생활치료센터 운영 등의 아이디어도 지방에서 나왔다는 점을 보더라도 현장밀착형 행정의 중요성과 지방정부 역할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지방자치가 부활한지 30년이 되었고, 지방정부가 주민들을 위한 혁신적인 행정사례를 보여 왔지만, 제도적‧재정적 측면에서 여전히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와의 관계에서 충분한 자율성을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약칭:지방분권법)」 제2조는 지방자치분권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지방자치분권이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권한과 책임을 합리적으로 배분함으로써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기능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정책결정 및 집행과정에 주민의 직접적 참여를 확대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정의규정에 비추어 볼 때 지방자치분권의 핵심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균형과 조화에 있다고 하겠지만, 현실은 이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현재 국가 전체 사무 중 지방사무는 35% 수준이고 나머지는 국가사무이며, 지방이 국가사무의 60% 이상을 처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은 국세:지방세의 비율이 7.5:2.5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또한 중앙정부에서 지방에 재정지원을 하는 사업은 대부분 지방비를 매칭하는 보조사업 또는 지방정부 간 경쟁을 전제로 하는 공모사업 형태로 진행하고 있다.
입법권에 있어서도 조례의 제정범위는 법령의 범위로 제한되어 있고, 법률의 근거가 없는 사항에 관해 조례를 제정하더라도 재정을 지출하는 것은 용이하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다. 또한 지방정부가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여 자치조직을 구성 및 운영하려고 해도 지방자치법과 대통령령에 의해 그리고 행정안전부와의 협의 절차 등을 통해 제한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서는 지방정부가 세계 도시들에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줘야 한다. 이는 지방이 중심이 되는 지방분권 정책을 통해 이뤄갈 수 있다. 차기정부에서는 현 정부보다 더 강력한 지방분권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중앙정부에 집중되어 있는 권한을 지방으로 분권화하기 위해서는 현재 권한을 갖고 있는 중앙정부가 지방분권정책이 대한민국의 성공전략이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여야 하고, 특히 국정책임자의 강력한 의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 정부 출범 시에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는 국정과제를 마련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와 간담회를 갖고, 지방분권정책 과제를 국정과제로 채택해 줄 것을 건의한 바 있다. 그에 따른 결실로서 지방분권 및 균형발전 과제들 중 상당수가 국정과제로 채택되었고, 일정부분 성과를 얻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대선 후보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지방분권 강화를 위한 정책공약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부 후보자가 수도권의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추가 이전하여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하고, 자치분권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나타냈으나, 다른 후보자들의 공약에는 자치분권의 강화 또는 균형발전을 위한 획기적인 공약은 보이지 않고 중앙정부 주도의 정책공약들만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발전을 위해서 더 이상 중앙정부 주도의 하향식 국가운영전략은 효과적이지 않다. 국가의 경쟁력은 지역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원동력으로 한다. 이것이 차기 대선 후보자들이 대선 공약으로 지방분권 정책을 채택하고 추진해야 하는 이유이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에서는 지난 5월부터 시‧도에 20대 대선을 대비하여 지방분권 정책공약을 제안해 줄 것을 요청하고, 이를 수합 및 보완 검토하여 8월 초안을 작성 완료하였다. 이에 관해 다시 시‧도의 동의 및 의견수렴을 진행한 결과, 4대 분야 15개 과제를 성안하였다.
첫째, 지방분권국가 기반 확립을 위해 우선적으로 헌법을 개정하여 지방분권국가로서의 체계를 갖추고, 특히 국회를 양원제로 개편하여 지역대표형 상원을 도입함으로써 지방정부의 의견과 지역의 목소리가 입법과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지방자치권의 확대이다. 지방의 자치입법권 및 조직권을 강화하고, 자치경찰제를 개선하여 지방주도형 치안체계를 확립하며, 특별지방자치단체를 통한 자치분권을 확대하고, 국회 입법과정에서 법률이 지방행정 및 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여 고려하는 지방행재정 영향평가제 도입을 제안한다.
셋째, 재정분권 및 재정협치의 강화이다. 지방세를 확충하고 과세 자주권을 강화하며, 지방교부세율의 인상과 함께 지방교부세 산정방식을 합리화하며, 균형과 상생발전을 위한 중앙-지방 간 재정협치를 강화하고, 국고보조금제도 개혁 및 사업의 정비, 소방안전 재원을 확충할 것을 제안한다.
넷째, 중앙-지방 간 기능의 재조정이다. 중앙행정권한을 지방으로 이양을 추진하고, 사무의 구분체계를 개선하며, 특별지방행정기관의 기능‧인력‧재원 등을 포괄적으로 지방으로 이관할 것과 지방정부의 남북교류협력에서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제안한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는 이상의 지방분권 공약과 더불어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정책공약을 추가로 발굴하여 각 정당 및 대선 후보자들에게 제안하고, 적극적으로 공약사항으로 채택할 것을 건의할 예정이다.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다음 정부는 지방분권정책의 성공적 추진을 가장 우선적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