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기후협정 이후 기후환경 변화는 점점 더 가속화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생태, 환경, 사회, 경제적 영향은 날로 심각해지는 가운데, 국제사회에서 기후변화를 바라보는 시각차가 급변하고 있다. 수동적인 기후변화(climate change) 대신 기후 위기(climate crisis), 기후 비상(emergency) 등 자조적인 표현이 그것이다. 이는 하나뿐인 지구의 기후가 ‘변화’하는 수준을 넘어 ‘위기’, ‘비상’ 상황에 직면하고 있고, 결국 인류가 직면한 위험을 좀 더 정확하게 인식하고 비상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김운수 / 서울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세계기상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CO₂ 농도는 410ppm 수준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효과는 0.23ppm 이내로 미미하다고 밝혔으며(서울신문, 2020.11.26.), 이는 그동안 기후변화 대응이 실패했다는 뜻이다. 곳곳에서 감지되는 기후변화 위험신호는 저돌적으로 다가오는 회색코뿔소(grey rhino) 경고음과 다름 아니다. 기후변화 정책은 기후위기를 각성하고 비상행동 계획을 수립하여 끈기 있게 추진되어야만 한다. 기후위기 근본해법은 탄소중립(Net-zero)에 있다. 탄소중립 선언은 시작은 유별나지만 곧 스러져 버리는 일시적 유행이 아닌 현 세대의 위기관리뿐만 아니라 다음세대의 생존을 위한 트렌드이다. 그러나 인간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남은 온실가스를 흡수, 제거하여 실질적인 배출량을 제로(零) 수준으로 맞춘다는 개념인 탄소중립은 도처에 수많은 복병이 도사리며, 험난한 기나긴 여정임에 틀림없다.
최근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맞닥뜨리게 되는 환경위기 극복 과제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 대응과제도 예외일 수가 없다. 이런 계기는 ‘신기후체제’(Post-2020)를 재촉하는 파리협정(2015)과 함께 산업혁명 이전과 비교해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을 1.5℃ 이내로 제한하는 방안 등을 담은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채택에서 시작된다.
탄소중립 선언과 추진일정 제시는 유럽연합 주도로 그동안 이루어졌다. 최근에는 영국, 독일, 스웨덴, 덴마크 등에 더하여 일본, 캐나다 등 전 세계 65개국 이상이 동참하고 있다. 탄소중립의 핵심 키워드는 에너지전환이며, 신재생에너지 확대가 주된 목표이다. 유럽연합은 2050 탄소중립 선언과 실행계획 수립에 발맞춰 법률 제정 및 재정 집행 등 한발 앞서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은 바이든 신 행정부 출범과 동시에 파리협정의 복귀와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청정에너지 인프라 구축을 포함한 적극적인 기후변화 정책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하여 탄소중립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특히 유럽·미국 '탄소 국경세' 도입 전망으로 기후위기 대응이 국가와 기업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직면한 탄소중립 격랑 속에서 중국은 2030년 탄소배출 수준이 최고치를 나타낸 이후 2060년 탄소중립 선언이 예정되어 있어 한 가지 흠으로 회자되고 있다.
정부는 파리협정에 따라 장기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국가 에너지·기후정책의 중·장기 비전을 담은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을 2020년 말까지 수립·제출할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2050 저탄소 사회 비전 포럼’을 구성해 2050년 온실가스 배출 목표(1~5안)를 제시하였다(2020.2). 탄소중립은 이에 포함돼 있지 않으며, 탄소중립 목표 실현과 연계된 주요 의제는 향후 지속적인 논의·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기후위기의 피해 주체인 동시에 탄소배출 주체인 자치단체는 더 적극적인 기후위기 비상대응에 고민하고 있다. 지난 6월5일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전국 226개 자치단체의 의견을 수렴해 ‘대한민국 기초지방정부 기후위기 비상선언’을 했다. 또한 7월에는 탄소중립 지방정부 실천연대를 발족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는 등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동참하듯 서울시는 2050년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담은 ‘그린뉴딜 추진을 통한 2050 온실가스 감축 전략’을 발표했다(2020.7.8).
이러한 시대적·세계적 흐름에 호응해 정부와 자치단체가 기후위기 비상대응 선언하고 실현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하지만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과 탄소중립 실현 과정에서 정부와 자치단체는 기후위기 비상대응 전략 마련에 다소간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 탄소중립은 일상생활에서 선택적 해법을 찾고 합리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신재생에너지 확대, 온실가스 감축, 친환경 차량 보급과 친환경 건물 전환 사업뿐만 아니라 정부가 헤아리지 못한 저탄소 틈새시장 발굴은 모두 자치단체 소관업무이다. 이런 의미에서 풀뿌리 시정을 책임지는 자치단체의 탄소중립 몫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자치단체는 향후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저탄소 실행 계획 수립, 현장 솔루션과 매칭 되는 제도적 기반 구축 확대, 틈새시장 발굴 등 역량 강화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특히 설명 가능한 탄소중립 전략에 대해 지역사회와 긴밀한 소통을 하여 추진과정에 나타날 수 있는 갈등은 최소화하고 공감대 형성이 바람직하다.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위기 비상행동의 시대적인 요구가 만연되면서 탄소중립은 글로벌 신 패러다임으로 정착되고 있다. 정부는 당초 탄소중립의 사회경제 충격과 삶의 질 영향을 고려하여 다소 미온적인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작년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공식 선언한 이후 선제적·능동적으로 입장을 정리하면서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12월 발표하였다. 탄소중립 실현 전략으로 경제구조 저탄소화, 저탄소 산업생태계 조성, 탄소중립사회로의 공정전환의 3대 정책방향과 탄소중립 제도 기반 강화라는 ‘3+1’ 기본 틀을 제시하고 있다.
탄소중립 과정에서 간과할 수 없는 주요 난제들은 경유차 퇴출 프로그램 도입, 석탄화력발전의 축소와 신재생에너지 생산 확대, 전기세 인상, 친환경차 보급 등이다. 하지만 저턴소 그린뉴딜정책 추진에서 시행착오와 같은 사회적 비용을 줄이되, 사회구성원의 참여 및 공감대 형성하기 위한 탄소중립 기초설계가 필요하다.
지역 맞춤형 저탄소 시스템…정부 기후중립 ‘3+1’ 전략 틀과 매칭
정부는 장기적으로 기후 중립성을 달성하는 저탄소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 그린뉴딜 기본법, 에너지전환기본법 등 구체적인 법제화까지 예고하고 있다. 한편으로 2050 탄소중립위원회 설치, 기후위기대응기금 운용, 탄소인지예산 도입, 산업통상부에 에너지 전담 차관 신설, 탈탄소 경제 구현과 정의로운 전환 지원센터 설립 등을 구상하고 있다. 2021년부터는 이러한 탄소중립 관련 법·제도적 과제논의가 본격화되고 실체를 알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기후중립 ‘3+1’ 전략 시스템은 자치단체와 긴밀한 협의와 조정 과정을 거쳐야만 실효성 확보가 가능하다. 또한 자치단체는 정부의 탄소중립 실현 ‘3+1’ 전략 틀 가운데 탄소중립사회로의 공정전환 위해 지역 맞춤형 전략 이행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기반 정비를 적극 검토하여야 한다. 지역 맞춤형 탄소중립의 준비와 실행을 위해 탄소중립 지방예산 편성, 저탄소 행정성과 목표관리 도입, 기후변화조례 및 조직 직제 개편 등이 해당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저탄소 역할분담…‘쌍끌이’ 전술과 ‘맞춤형’ 전략 도입
저탄소 정책 추진에서 간과해선 안 될 것은 ‘쌍끌이’ 전술과 ‘맞춤형’ 전략이다. 전자는 탄소중립 목표실현 과정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협력이 관건이며, 후자는 탄소배출 여건을 고려하여 차별성을 강조하는 의미이다. 이 같은 접근은 국정과제인 동시에 풀뿌리 시정과제인 미세먼지 정책 추진에서 엿볼 수 있다. 2003년 초반 미세먼지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도권 대기환경 개선 특별법을 제정하고 대기환경관리 기본계획 수립과 서울시·경기도·인천시 3개 시·도 시행계획을 마련하여 체계적인 대기환경 관리가 시도되었다. 현재는 수도권에 더해 중부·남부·동남권(4개 권역 8개 특·광역시와 69개 시군)을 대기관리권역으로 추가 지정하는 '대기관리권역의 대기환경개선에 관한 특별법'여 시행되어 정부의 대기개선 목표 달성과 권역 특성에 맞는 대기질 관리 대책이 예정되어 있다.
이러한 미세먼지 정책 추진사례를 참고하여 탄소중립 목표를 정부와 자치단체 간 역할분담이 바람직하다. 탄소중립 실현에서 정부의 저탄소 목표, 자치단체의 지역맞춤형 목표 할당 배분의 쌍끌이·맞춤형 전략을 병행 운영하여야 한다. 또한 시·도지사협의회는 탄소중립을 통괄하는 차원에서 지역 컨트롤타워 지정, 저탄소지역위원회 설치, 시·도 출연 연구원 내 탄소중립 포럼 운영 등을 통합하여 저틴소 경영관리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
한 세대 앞선 저탄소 참여 및 모니터링…청년층과 함께 가야 성과
미래 환경여건 변화에 대한 불확실성을 경감하고 기후위기 비상대응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 숙의·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다. 그 가운데 20~30대 청년세대의 참여·모니터링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청년은 기후위기 비상대응에서 지금은 피동적인 위치이지만 점진적으로 저탄소 사회 실현과 탄소중립의 주체로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시·도 자치단체는 30년에 걸친 탄소중립 ‘계획-실행-행동-점검’ 이행단계별로 청년층의 역할 부여와 참여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야 할 것이다. 청년세대가 공감하는 ‘지역사회 기반 탄소중립 실천 프로그램’ 개발과 유인동기 제공 검토도 한 가지 방법이다. 지역사회 구성원 대상으로 공모하는 녹색실천 공모사업, 지역 참여형 모임에서 탄소중립 주제가 포함된 환경모임 추진을 고려하여야 한다. 그리고 청년층은 탄소중립 학습 과정 경험을 공유하고, 또한 기후위기 비상대응 이행 과정의 참여·모니터링에서 역할을 찾아보는 것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더불어 시·도 지방자치단체는 교육위원회와 협의하여 저탄소 환경교육자재 발간과 학교교육들 통해 저탄소 환경교육지도자 육성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저탄소 사회 안전망 확보…포용적 탄소중립과 에너지복지 격차 해소
정부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사회안전망 강화 등 274건의 법·제도를 2021년부터 새롭게 정비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전환 시대에 발맞춰 에너지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또는 에너지복지 격차 해소 대안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고 있다. 탄소중립의 기본전제는 에너지전환이고, 저탄소 정책은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가 주된 전략이기 때문에 에너지 소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에너지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 서비스 제공 여지가 많지 않다.
이러한 사실은 포용사회가 감내하여야 할 정책 의제 도출을 곤란하게 만들어, 탄소중립의 사회적 갈등요인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에너지복지는 에너지 바우처(energy voucher), 노후주택 효율개선보급사업, 주택난방제도, 주택단열지원 프로그램 등으로 대내외에서 운용중이다. 시·도 지치단체는 에너지 바우처 복지혜택을 적정 늘리거나 지역 내 온실가스 에너지 목표관리제 이행 사업체·기업 대상 목표관리 능력을 지원하고 초과분만큼 포인트 환산한 후, 에너지 취약계층에게 기부 제공하는 전 방위적 방안 검토도 고려해 볼 만하다.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과 탄소중립을 위한 노력은 이제 시작이며, 2021년은 탄소중립 실천의 첫걸음 원년이다. 한 세대를 내다본 장기 전략이어서 향후 추진 과정에서 험난한 좌절과 기회가 높은 파도처럼 다가올 것이지만 기후위기 비상대응을 대내외적으로 약속한 만큼 정부와 자치단체 간 역할분담, 소통, 갈등해결 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래를 위한 선택이 그만큼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한국판 그린뉴딜 및 저탄소 전략을 바탕으로 국민과의 탄소 국부론(國富論) 소통을 확대하고, 반면에 기후위기 비상행동 행동 가속화를 위해 지역사회에 뿌리를 두는 시·도 자치단체의 선(善)한 저탄소 리딩 역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