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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권레터]지역균형발전과 공공의료

작성자웹진관리자 소속기관교육홍보부 작성일2021-06-04
이슈공간

지역균형발전과 공공의료

자치와 분권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지방의 발전은 국가의 발전을 이끌어내기에 중앙과 지방은 공동 운명체이다. 공공보건의료는 지역, 계층, 분야 등을 초월하여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하는 필수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공공의료 강화는 지방자치 강화와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공공의료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우리나라 공공보건의료의 현실을 냉정하게 되짚어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공공의료 인프라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모든 주민들이 불편 없이 필수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공공보건의료가 나아가는데 있어 중요하게 살펴보아야할 점들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의료서비스와 관련한 이슈를 점검하고 갈등을 해소하는 의미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조승연 / 인천광역시의료원장,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
대한민국은 아시아의 4마리 용 중 하나를 넘어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진입하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고, 전쟁의 참화를 딛고 이뤄낸 경제 기적처럼 코로나19 팬데믹 재난을 맞아서도 K-방역의 기적을 세계에 선보였다. 하지만 고도성장의 화려한 이면에 악화하는 양극화는 청년의 희망을 빼앗았다. 치솟은 집값과 생활비, 교육비에 미래가 사라졌는데, 무너진 기회의 사다리가 다시 설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계속되는 자살, 산재사망과 노인 빈곤율 세계 1위 기록은 헬조선이라는 자조적 수식어가 거짓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보건의료 분야도 마찬가지다. 전 국민 건강보험을 가장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정착시킨 우리나라는 누구나 저렴하고 손쉽게 병·의원을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병상 수와 높은 의료 이용률, 가장 긴 입원일수와 최다의 고가 의료장비 보유를 자랑한다. 하지만 교통사고를 당한 어린 환자는 수술할 병원을 찾지 못해 길 위에서 헤매다 사망하고, 자매를 부양하던 엄마의 손목 골절은 세 모녀를 반지하 셋방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의사 수가 OECD의 60%에 불과한데, 의대 정원을 10%만 일시 증원하자는 호소에도 결사반대하는 의료계 앞에 정부는 힘 한번 못 쓰고 만다.
지역 간 격차에 이르면 할 말이 없어진다. 지역별 응급·외상·심뇌혈관질환 사망률의 격차는 지방에 사는 것은 위험하다는 경고로 보인다. 신생아 사망률 격차 또한 지역별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보건의료 격차해소 없이 지역 균형발전이 있을까? 어디서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문제는 공공성이 부족한 보건의료에 있다.
보건의료는 주택, 교육과 더불어 국가가 보장해 주어야 할 생존권에 속하며, 국가의 존립에 필수적인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킨다. 인류사는 전쟁보다 참혹했고 문명의 대전환을 촉발한 감염병의 역사다. 이윤만 추구하는 보건의료는 국민의 삶을 위태롭게 하며 공동체에 대한 위험요소이다. 필수 보건의료는 공공재이며 반드시 제공되어야 한다.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지역, 계층과 분야와 관계없이 필수 보건의료 서비스를 형평성 있게 제공할 의무가 있다.
공공성을 상실한 의료체계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전 국민 건강보험에도 불구하고 재난적 의료비 부담률은 OECD 평균의 3배가 넘어 가계파탄의 주범이 된 지 오래되었으며 높은 자살률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지역 간 의료격차는 나날이 심해져 지역균형발전의 큰 장해가 되고 있다. 의료 인력이 수도권에 몰려있어 지방 병원은 필수진료과목을 운영하기 어렵고, 간호사 부족으로 병동을 운영하지 못하는 병원이 늘고 있다. 지방에서 치료 가능한 환자들이 도시의 큰 병원으로 몰려들고, 대학병원조차 환자 유치와 수익 창출이 교육과 연구보다 우선되고 있다. 최고 수준의 빠른 노령화는 의료비의 폭증을 경고하지만, 급증하는 과잉 진료와 비급여 진료는 오히려 지역 간 의료격차를 부채질하고 있다.
총 경상의료비는 OECD 평균치에 도달했지만 증가 속도는 3배에 달해 재정위기의 목전에 있다. 도대체 우리나라의 보건의료는 왜 이리도 비공공적이고 민간중심적으로 되었을까?
한국 공공보건의료의 취약한 공공성은 일본의 강점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세기 중엽 근대국가의 기초를 닦던 일본은 공공성이 강한 독일(프로이센)의 의료제도를 도입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왕정에 대항하는 막부와의 전쟁(세이난 전쟁)을 치르느라 국고가 고갈되었다. 일본 정부는 민간 자본에 의존해 근대식 병원을 설립할 수밖에 없었고 민간중심 국가 의료제도를 만들게 된다. 일제에 강점당한 한국과 대만이 극도의 민간 의료체계에 놓인 것은 당연했다. 해방 이후에도 가장 상업적인 미국 의료의 영향 아래 공공성 회복을 위한 시도는 전무했으며 외국의 원조에 의해 세워진 소수의 공공병원만으로 공공의료의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고도성장으로 얻은 경제적 여유도 국가의 축소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1989년 전 국민 건강보험이 역사적인 안착을 한다. 사회보험으로서 건강보험은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경감시켜 의료접근성을 높여 국민 건강에 크게 이바지했지만, 거의 준비되지 못한 부실한 일차 의료와 의료전달체계는 과도한 의료 이용과 과잉 진료 관행을 고착화시켰으며, 거대 의료자본의 생성과 재벌 병원의 탄생을 촉발하며 상업적 영리적 의료가 본격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공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과 값싼 의료비라는 국민의 착각 속에 우리나라의 보건의료는 국가주도 민간 의료(?)라는 기이한 형태를 유지한 채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공공병원은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기타 공공단체가 설립 운영하며 공공보건의료 수행을 목적으로 설립된다. 대부분 나라는 민간병원도 공공적 의료수행을 당연한 기능으로 여기고 있지만, 우리는 공공병원만이 주로 공공의료를 수행한다. 경영이윤으로 운영하는 민간병원이 수익 없는 분야에 투자하기란 불가능하다. 의료 서비스는 가장 약자인 환자를 대상으로 하므로 자체적으로 복지의 영역이자 국가의 관리책임 분야이다. 보건의료는 그 자체가 공공재적 성격을 가지며 이윤추구는 바람직하지 않다.
생명을 다루는 필수 분야일수록 더더욱 수익을 올릴 수 없는 이유다. 영리적 의료는 수익을 좇아 응급, 외상, 심뇌, 모자, 장애인 등 필수적 의료 분야보다 미용, 성형 등 비필수 분야에 집중한다. 인구가 적은 지방의 의료 공백은 당연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공공병원만이 ①취약계층과 지역의 안전망 ②보건의료 재난에 대비 ③과잉·과소진료를 지양한 적정진료 수행 ④정부 정책 수행기관 역할을 맡는 유일한 기관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공공병원의 현실은 부끄러울 정도로 열악하다. 총 221개의 공공의료기관은 전체의 5.7%에 불과하며 병상 수는 10%로 OECD국가의 평균인 52.4%와 71.4%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일반종합병원 기능을 가진 지역거점 공공병원은 일제가 강점기에 설립한 자애의원의 수와 같은 40개에 불과하다. 2013년, 만성적 적자를 이유로 103년 역사를 가진 진주의료원이 강제로 폐원되며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취약한 공공의료가 공론화되고 마침내 ‘공공의료 정상화를 위한 국정조사 결과 보고서’를 역대 최초로 국회의원 여야가 만장일치로 채택함으로써 공공보건의료의 강화가 시대적 과제임을 천명하게 된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별다른 성과 없이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이하게 되었다.
한국 의료체제 문제의 개선 방향은 다음으로 요약할 수 있다. ①표준적정진료 확립 ②일차의료 강화 ③지역거점병원 확충·강화 ④의료전달체계 확립 등 4가지가 핵심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공공병원확충과 강화이다. 제대로 된 공공병원이야말로 국가보건의료 공공적 개혁의 선봉대이자 수행기관이기 때문이다. 강력한 군대가 없다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K-방역의 성공은 보건의료의 성공이 아닌 공직자의 희생과 국민의 인내력에 기댄 우연히 얻은 성적에 불과하다. 공공병원 확충과 강화는 우리나라 보건의료 정상화의 필수조건이다.
2000년,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제정 이후 역대 정권은 수많은 보건의료 개혁 정책을 선보였다. 참여 정부의 ‘공공보건의료 확충 종합대책’부터 박근혜 정부의 ‘4대 중증질환 국가보장정책’까지 나름대로 의료보장성 강화와 취약계층 지원 예산을 늘려왔다. 현 정부의 ‘공공의료발전 종합계획’도 출발은 좋았지만 마찬가지로 뚜렷한 성과가 없다. 개혁의 핵심인 ‘공공병원 확충과 강화’를 주저했기 때문이다. 메르스 사태를 겪고도 공공병원과 공공병상과 공공의료 인력은 제자리 걸음이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한다. 강력한 군대를 키우지 않고 총탄만 공급해도 전쟁에 이기리라 착각한 결과다.
공공병원 확충·강화를 위한 과제는 다음과 같다.

① 공공보건의료발전종합계획에 근거한 70개 권역별 300병상 이상의 공공병원을 키우고, 신설해야 한다. 3개에 불과한 신설에 몇 개 병원의 이전과 증축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② 공공의료 인력 충원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지방의료원 수련병원 지정과 대학교수 파견을 통한 단기적 방안부터 공공 의대 설립을 통한 공공의사 양성 같은 장기적 계획까지 전방위적인 정책수립이 시급하다.

③ 국가 공공보건의료의 체계적인 지원조직이 필요하다. 국립중앙의료원과 국립대병원의 공공병원 지원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공공성 낮은 현 국립대병원의 보건복지부 관리도 핵심 고려사항이다.

④ 지자체에 과도하게 부여된 지방의료원 운영비를 중앙정부가 분담해야 한다. 다양한 지자체의 재정 상황은 공공병원의 지역별 격차의 원인이며, 공공병원 추가설립의 가장 큰 장해요소다. 경제성 산출이 중심인 예타의 높은 문턱 또한 재정 부담에 대한 우려가 그 기저에 있다.

지역의료의 중심으로서 가장 중요한 지방의료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잘못 지어진 공공병원이 지방정부와 시민에게 계륵과 같이 지속적인 부담을 안기는 예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필자는 2016년 봄부터 경기도 성남시에 신설된 공공병원의 개원 과정을 주도해볼 기회가 있었다. 고도성장 시기에 도시 빈민 강제이주라는 불행한 역사를 갖고 만들어진 성남시는 2003년 지역 종합병원 두 곳이 동시에 문을 닫으며 심각한 의료공백에 처했었다. 그러나 시민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성남시의 중심에 500병상 규모의 대형병원이 설립되었다.
성남시의료원은 설립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 시민의 요구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공공병원이며 둘째, 중앙정부의 비협조에도 지자체 자체 예산만으로 설립하였다. 셋째, 값싼 부지를 찾아 도시 외곽에 만든 여타 공공병원과 달리 인구가 밀집한 도시 중심에 자리 잡았고 넷째, 대학병원에 버금가는 큰 규모와 좋은 장비, 충분한 인력으로 계획되었다. 또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공공병원 설립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지역 의사회와 지속적 소통 결과, 협력적 지역 의료체계의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성남시의료원은 기존 병·의원과 경쟁하는 구도를 지양하고자 외래진료를 최소화하고, 공공병원만이 가능한 장애인, 희귀질환을 가진 의료적 취약계층을 위한 미충족 의료 서비스를 강화했다. 당시 수행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지불제도개혁에 관한 연구에서 지역의료계의 협력과 상생이 가능하면서 실행 가능성이 가장 높은 모델로 인정받기도 했다. 개원 단계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와 코로나19 때문에 이후 과정이 순조롭지는 못했다. 성남시의료원의 새로운 시도는 아직 진행형이고 향후 지역 의료체계에서 공공병원의 역할을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32년 만에 지방자치의 역사가 다시 쓰이고 있다. 자치분권 2.0시대는 지방의 발전과 국가의 발전이 같은 운명임을 명심해야 한다. 공공보건의료는 지역, 계층, 분야에 차별 없이 형평성 있는 필수 의료 서비스를 국가가 제공하는 것이다. 공공의료 강화는 지방자치 강화와 동의어이다. 공공의료에 대한 투자는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는 국가의 책무이며 그 중심에 공공병원 확충 강화가 있다. 20년 넘게 이어온 공공의료 강화의 외침이 이번만큼은 지방자치제의 큰 도약과 더불어 큰 성과로서 국민에게 기여하는 중요한 전환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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