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공간
지방정부 남북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한
법·제도 개선방향
2020년 10월 현재 남북관계는 여전히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거치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향한 남북평화협력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하지만 이듬해 북한 비핵화 방안을 둘러싸고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남북관계 또한 다시금 예전의 단절과 침체 국면으로 빠져들었고, 지금까지 반전과 재기의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방정부 남북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해서는 법과 제도가 어떤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할지 알아본다.
김동성 /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남북교류특별위원회 위원,
경기연구원 균형발전본부장
한반도 통일기반 조성을 위한
남북교류협력의 필요성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며, 한국 또한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로서 북한의 비핵화를 강력히 요구하고 또 이를 반드시 얻어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북한 비핵화를 요구하고 관철시키는 것 못지않게 한반도 통일기반의 조성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가 한국의 국가안보에도 매우 중요한 과제임에는 틀림없으나 그보다 더 큰 민족적 과제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이다. 따라서 북한이 핵 개발을 단념하지 않는다고 해서 남북관계를 통째로 닫아서는 안 되며, 북한의 비핵화만을 위해 한국 대북‧통일정책의 다른 모든 것들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 즉 북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봉쇄와 압박 전략이 북한 주민들의 마음까지 봉쇄하고 압박해서는 안 된다. 북한 주민들을 잃으면 한반도의 미래도 잃게 된다.
개혁과 개방을 향한 북한 사회의 변화 그리고 한국 사회와 통일 한반도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동경심과 기대감은 미래의 한반도 통일을 위한 필수적인 선결요건이기 때문이다. 북한 사회의 변화를 견인하고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남북 경제협력과 사회문화교류 그리고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 등의 남북교류협력이 지속되어야 한다. 한국은 남북교류협력의 지속적인 추진과 확대를 통해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얻고 북한 사회 내부에 변화의 물길을 내고 개혁의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고수하고 이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우려와 대응이 깊고 굳건한 현 시점에서 한국의 중앙정부가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본격적으로 재개하고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압박과 봉쇄의 국면에서 한국의 중앙정부도 국제사회와 함께 강력한 입장을 견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라는 또 다른 미래를 위해 북한에 대한 관여와 유인의 전략도 아울러 추진해야 한다.
지방정부의 남북교류협력 역할 강화를 위한
법제 개선 현황
한국의 중앙정부가 당면한 딜레마는 국내의 지방자치단체들을 남북교류협력에 활용함으로써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의 남북교류협력은 중앙정부 및 민간과 비교하여 유연성과 공공성 그리고 일관성의 측면에서 상대적인 장점을 보유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남북교류협력을 추진함에 있어 중앙정부에 비해 남북 당국 간 관계의 부침이나 동맹국과 국제사회의 공조 압박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또한 민간과 비교할 때는 공공 재정과 다양한 인력 그리고 정부기관이라는 특성을 바탕으로 남북교류협력사업의 공공의 목적성과 추진 사업의 일관성을 보다 많이 확보할 수 있다.
실제로 독일의 동‧서독 분단시기에 행해진 서독 지방자치단체들의 대동독 사회교류협력 노력은 동‧서독 주민들 간의 동질성 유지와 동‧서독 통합에 대한 수용성 제고 등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의 중앙정부도 지방자치단체들에게 대북·통일정책 추진의 파트너 지위 또는 Track II의 역할을 부여할 필요가 있으며, 중앙정부가 직접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중앙정부를 대신하여 남북교류협력사업의 선봉대나 선발대의 기능을 맡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남북교류협력과 남북통일을 위한 기반 조성에 지방자치단체들의 역할이 이처럼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법률과 제도 하에서는 지방자치단체들의 남북교류협력사업 추진이 상당 부분 제약을 받아 왔다. 가장 대표적인 제약으로 중앙정부(통일부)는 그동안 지방자치단체를 남북교류협력사업의 공식적인 ‘협력사업자’ 또는 ‘대북지원사업자’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일부 예외적 상황을 제외하고서는 남북협력기금의 지원 대상에서도 배제해왔다.
이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들은 대북지원사업자 자격을 갖고 있는 여타 민간단체들과 공동으로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해야 했으며, 중앙정부의 재정지원 없이 자체 예산만으로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이끌어가야만 했다.
다행스럽게도 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을 제약하는 요인들에 대한 재검토와 개선 논의가 최근 들어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일부 전향적 조치도 이루어졌다.
통일부는 2019년 10월 부처 자체규정인 「인도적 대북지원사업 및 협력사업 처리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여 지자체가 대북지원사업자로 승인받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통일부가 21대 국회에 발의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의 일부개정법률안에도 지방자치단체가 남북 간 ‘협력사업’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명시하는 내용을 담았다. 아울러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남북관계 및 남북교류협력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위상과 역할 강화를 담은 관련 법률 개정안들을 의원 발의 형태로 21대 국회에 상정해 놓고 있어 그 결과가 크게 기대되고 있다.
지방정부의 남북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한
법‧제도적 개선 과제
지방자치단체가 남북교류협력의 선봉대가 되고 나아가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이에 상응하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의 활성화와 역할 강화를 위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법·제도적 핵심 개선 과제는 1)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의 주체적 위상 확립 2)남북협력기금의 지원 대상 자격 확보 3)남북교류협력 관련 중앙정부 정책과정에 대한 참여 보장이다.
지방자치단체가 남북교류협력사업의 주체적인 사업자로 인정받아야 하며 아울러 지방자치단체의 남북교류협력사업도 중앙정부(통일부) 남북협력기금의 지원 대상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지방자치단체들도 중앙정부와 더불어 남북교류협력의 중요한 행위자인 만큼 우리나라 남북교류협력정책의 수립과 평가 과정에 마땅히 정식 구성원으로서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
상기의 세 가지 핵심 개선과제의 완수를 위해서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남북협력기금법」 등 남북교류협력 관련 법령들과 「지방자치법」의 개정과 보완이 필요하다. 이들 법률의 주요 개정 및 보완 방향은 남북교류협력에 있어 지방자치단체의 참여 가능성 제고 및 주체성 확보,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중앙정부의 재정 및 인력 지원 그리고 남북교류협력 관련 정책과정 참여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 간의 협의기구 설치 등이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의 경우 ‘제2장 남북관계 발전과 정부의 책무’에서 제7조(남북경제공동체 구현), 제8조(민족동질성 회복), 제9조(인도적 문제 해결), 제10조(북한에 대한 지원) 등의 주체를 정부로만 한정하고 있는 현행 조문을 개정하여 상기 조항들에서 정부와 함께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도 명문화하고 이를 각 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 사무의 가장 기본적인 법적 근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또한 제14조(남북관계발전위원회)를 개정하여 ‘남북관계발전위원회’에 지방자치단체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자(2인 이상)가 정규 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명문화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도 제4조 및 제5조의 ‘남북교류협력 추진협의회’의 설치 및 구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여 지방자치단체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자(2인 이상)가 동 협의회의 정규 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동법 제17조(협력사업의 승인 등)와 관련하여 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경우에는 각종의 승인 요건을 완화하는 규정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앞에서 언급한 통일부의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서 담고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남북 간 협력사업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 협의회를 신규 설치한다는 개정내용도 매우 필요하며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남북협력기금법」은 제8조(기금의 용도)에 정부가 남북협력기금을 지방자치단체에 지원할 수 있다는 명문의 규정을 신설하여 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사업도 남북협력기금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보다 명확하게 보장해야 한다. 「지방자치법」은 제9조(지방자치단체의 사무범위)에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사무를 신설하여 지방자치단체가 남북교류협력을 추진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함이 필요하다.
물론 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 추진의 법·제도적 보장을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을 별도로 제정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확실한 방안이다. 가칭 「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의 제정이 필요하다. 동 법률은 주요 내용으로 지방자치단체의 남북교류협력사업 주체성 인정, 남북협력기금의 지원 등 재정 지원, 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사업에 대한 특례 부여, 중앙과 지방/지방과 지방 간 협의체 구축, 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 전담조직 구성 및 인력 충원, 관련 계획 수립 및 위원회 설치 등을 담아야 할 것이다. 남북교류협력과 한반도의 통일기반 조성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역할과 기능이 매우 크고 중하다는 것을 중앙정부와 대다수의 국민들이 깨닫고 인식하게 된다면 향후 「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의 제정도 기대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