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개헌 논의의 성과와 과제
김수연(전국시도지사협의회/정책연구실/책임연구위원)
1. 지방자치 개헌 논의의 쟁점
헌법 개정에 대하여 2007년 참여정부 당시 대통령 임기조항 개정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한 이래로, 2010년 2월 대통령의 제한적 개헌 언급 이후 지금까지 정계 및 학계의 관심의 고조와 저조가 반복되어왔다가 최근 이재오 의원의 개헌발언으로 다시 정치권의 반응이 뜨거운 가운데 있다. 특히 올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어떤 후보가 개헌론의 입장을 들고 나올 것인가가 관심의 대상이다.
최근 몇 년간 헌법개정의 논의에 있어 정계와 학계에서 개최한 학술대회, 세미나 등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내용을 살펴볼 때, 개헌의 핵심이 분권형 헌법에의 지향, 즉 중앙에 집중된 권력구조의 재편 및 중앙집권적인 시스템 개선에 있음은 당연히 환영할 것이나, 대부분 권력구조, 특히 대통령의 임기 및 분권형 대통령제의 구현을 위한 정부형태의 논의에 집중되어 있다. 즉 현재 5년 단임제 대통령중심제적인 권력구조를 4년 연임제 대통령제로 할 것인가, 분권형 대통령제로 할 것인가, 아니면 아예 의원내각제로 전환할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이는 정치권의 관심이 여기에 집중된 탓이기도 하고 동시에 다른 분야 특히 지방자치분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은 두 가지 화두의 다른 성격에 원인이 있기도 하다. 즉 정부형태의 문제는 국가의 핵심적 권력구조 개편문제이므로 그 영향력이나 파급효과가 지대하고, 동시에 옳고 그름을 단정할 수 없는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과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지방자치 내지 지방분권은 당연히 해야 하고, 잘 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의견의 일치가 존재하는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심과 논란의 중심에서는 벗어나 있게 되는 점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일부 지방자치 영역에서의 개헌논의가 꾸준히 진행되었고, 권력구조 개편 논의와 맞물려 지방분권을 지향하는 개헌안이 몇몇 등장하였다. 대표적인 개헌안을 살펴보면, 2009년 8월 국회 헌법연구자문위원회의 보고서, 2010년 경기개발연구원의 「지방분권형 헌법(안)연구」, 2010년 7월 발표한 대화문화아카데미 헌법개정안, 2010년 전국시도지사협의회가 의뢰하고 한국헌법학회에서 연구수행한 「선진지방분권국가 실현을 위한 헌법개정안 연구」등에서 지방분권을 지향하면서 구체적인 조문화작업을 완료한 개헌안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까지 진행된 지방자치 개헌논의를 정리하면, 지방자치 부분에서의 개헌은 필요한가? 개헌이 필요하다면 어떤 내용으로 개헌하여야 하는가? 라는 단계로 축약되고, 지방자치 부분에서의 개헌이 필요하다는 원칙에는 반대의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방자치의 영역의 어떤 내용을 어떻게 개헌에 반영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지방자치 부분에서의 개헌론의 공통적 내용상 쟁점사항을 꼽아보면 지역대표성을 표방하는 상원의 설치로 국회 양원제의 도입, 지방자치의 장 신설, 지방자치의 일반원칙(보충성의 원칙) 명시, 지방자치단체의 종류 명시, 지방자치단체의 입법권 확대, 지방의 자주재정권 명시, 주민투표?주민소환제도 근거 규정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쟁점에 대하여 위에서 소개한 개정안들은 일부는 동의, 일부는 부동의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 모형의 설정이 지방자치 내지 더 나아가 지방분권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분모를 보여주고 있다.
2. 현황 및 문제점
현행 헌법에서 전문과 부칙을 제외한 130개 조항 중 지방자치와 직접 관련된 조항은 제117조와 제118조 단 두 조항뿐이다. 헌법 제117조는 지방자치단체의 존립과 권능을 보장함과 동시에 지방자치단체 종류의 법정주의를 규정하고, 제118조는 지방자치단체의 기구와 조직구성방법을 규정하고 있다. 이들 헌법 규정은 지방자치법을 비롯한 일반적ㆍ개별적 법령과 지방자치단체의 조례?규칙 등에 의하여 구체화되고 있다. 즉 헌법의 이 두 조항이 지방자치의 구체적인 내용을 포함하지 않고 지방자치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의 형성을 법률로 정하도록 위임 또는 유보하고 있어, ‘자치사무의 존재’, ‘주민의사에 기한 자치기구의 구성’, ‘자기 책임성’, ‘독립성’ 등의 실질적 지방자치의 요소를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미흡하다. 결국 현행 헌법으로는 수직적 권력분립 원리의 실현과 풀뿌리 민주주의 요청의 실현이라는 당위성을 갖고 있는 지방자치의 실현 과제를 온전히 수행하기 어렵다는 점에 지방자치 개헌의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헌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다수의 논의가 지방분권을 위한 개헌 내지 지방자치 개헌론으로 집중력 있게 발전하지 못하고 권력구조의 개헌론 내지 (대통령 권한의)분권형 개헌의 주장과 그 반대론으로 양분화되어 있다.
문제점은 이러한 현재 논의에 대해 지방자치 개헌을 주장하는 학계에서는 이렇다 할 방향 전환의 화두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분권형 개헌을 얘기하지만 분권의 대상이 대통령에 한정되고 있는 논의의 한계에 지적과 이를 국가통치구조 전반의 분권 지향으로 확대 발전시키고 있지 못하는 점이다.
또한 지방자치 내지 지방분권을 지향하는 다수의 개헌논의에서는 논의의 쟁점이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즉 지방분권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의 의견을 보이고 있으나, 구체적인 하나하나의 제도형성 부분에 있어서는 치열한 논쟁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지역대표형 상원을 설치하는 문제에 대해서 과연 지역대표형 상원이 필요한 것인지, 우리의 정치 환경에 양원제 도입의 문제점은 없는지, 그 성격을 지역대표형으로 형성해야 하는 것인지, 그렇다면 제도적 설계는 어떻게 할 것인지, 즉 대표성을 띠는 지역의 단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상원의 구성방법은 어떻게 할 것인지, 권한은 얼마나 부여할 것인지, 하원과의 권한 배분은 어떻게 할 것인지, 상원과 하원의 명칭은 무엇으로 할 것인지 등등 수많은 쟁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관심은 높지 않다. 지방자치 내지 지방분권을 위한 개헌을 위해서는 개별 지방자치 관련 개헌 사항과 쟁점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검토와 치열한 논쟁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3. 외국의 지방자치 개헌
다수의 선진국에서 지방분권을 강화하기 위한 헌법개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프랑스는 1992년 개헌을 통해 지방분권에 대한 헌법차원의 명문규정을 신설하여 국가적 통일성 속에서 지방분권을 가속화하고자 하였고, 2003년 헌법개정을 통해 지방분권에 대한 헌법차원의 규정을 보다 구체화하였다. 즉 헌법에서 지방분권 국가임을 천명하고 수차례에 걸쳐서 지방분권을 위한 법률개정을 진행하였다. 2003년 헌법 제1조, 제7조, 제13조, 제34조, 제39조, 제60조, 제72조, 제74조 등에 대한 개정이 있었다. 프랑스는 2003년 15개 조항에 대한 헌법개정을 통해서 정치구도를 변화시키면서 새로운 지방분권 원칙으로 보충성 원칙(수정헌법 제72-2조), 선도역할을 하는 지방정부의 활성화, 제도실험법 등을 도입하여 지방분권을 촉진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1997년에 헌법개정을 통하여 스코틀랜드와 웨일즈, 북아일랜드의 입법권을 강화하는 등 대대적인 권한배분을 실현하였다. 이탈리아는 2001년 헌법개정을 통해 지방정부의 법적 권한을 확대하여 강력한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였다. 즉 지방정부에 대한 권한 및 세원 이양에 대한 기본틀을 완성하였고, 지방정부가 가진 권한에 부합하는 조세 및 세입권한을 인정하였다. 이후 이탈리아는 연방국가제도를 도입하여 지방분권을 대폭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헌법개정절차를 밟았다. 비록 2006년 국민투표에서 연방제 헌법개정안이 실패하긴 하였지만 국회를 통과할 정도로 지지를 받았다. 독일에서도 2006년 헌법개정의 핵심적인 내용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권한배분 내지 배분의 명확화에 초점을 두었다.
이러한 외국의 사례를 보건대 헌법에서의 지방분권의 지향은 전세계적으로 적극적으로 진행되어 온 현상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헌법개정을 통해 지방분권정책 추진의 전환점을 삼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법률 개정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한계를 헌법개정을 통해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헌법에 명시적인 지방분권의 이념을 천명함으로써 국가의 정체성을 지방분권적 지향점에 두고 있음을 분명히 하여, 향후 진행되는 법률과 제도의 설계를 헌법의 지향 이념에 부합하도록 만드는 당위성을 얻게 된다는 점이다. 또한 연방제 국가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제도들이 단방제 하에서도 그 도입가능성을 검토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4. 성과와 과제 및 전망
현재까지 진행된 전반적인 지방자치 개헌논의의 성과라고 한다면 우선 지방자치분야에서의 개헌 논의는 적어도 지방분권을 지향하는데 있다는 점에 대한 공감대의 형성에 있다고 할 것이다. 다수의 개헌논의에서 통치구조의 형태를 어떤 것으로 선택하느냐에 대한 의견의 일치는 없으나, 지방자치분야에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과 지방자치분야를 포함하여 개헌한다면 그 방향성은 지방분권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에 대한 의견의 일치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과인 동시에 지방자치 개헌논의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즉 지방분권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하지만 어느 정도, 얼마만큼의 분권을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진척이 없다는 점이다. 이념은 동일하나 이념의 내용, 방법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논쟁이 없이 “하자, 하자”라는 구호의 외침에만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하겠다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면 이젠 무엇을 어느 정도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지방자치 개헌안 논의에서의 과제로서 개별 지방자치 개헌 사항에 대한 다각도의 심도 깊은 논의가 전개되어야 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논의가 충분히 바탕이 될 때 지방자치?지방분권 개헌 주장이 그 정당성과 타당성을 인정받아 현실적인 개헌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분권”이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모든 권력에 적용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대통령을 포함한 집행부는 물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에도 적용되고 추구되어야 마땅하고 권력의 지방이양 및 지방분권은 행정권의 영역에 한정될 것이 아니라 입법부, 사법부의 영역에서도 추구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지방자치는 헌법상 ‘제도보장’이라는 틀에 갇혀 소위 ‘최소한의 보장’이면 충분하다는 쪽으로 축소되어 인식되었다. 이제 그 틀에서 벗어나 지방자치?지방분권은 국가권력과 기능의 모든 영역에서 추구되고 추진되어야 한다.
따라서 먼저 입법부의 지방분권 방안으로서 앞서 예를 든 지역대표형 상원의 도입을 고려할 수 있다. 법률에 과도한 선점으로 인해 실질적 지방자치의 영역이 축소되는 것을 방지하고, 동시에 입법단계에서 지방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대표성을 달리하는 제2원의 구성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지방분권의 이념은 입법부를 비롯하여 사법부에서도 추구되어야 하고, 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단일국가, 단일법체계를 따르고 있는 한 사법부의 영역에서 지방분권의 실현은 불가능 내지 적지 않은 제약이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적어도 지방자치단체의 조례가 법률 선점에 의하여 과도하게 제약받는 현실에서 벗어나 각 지역마다 준자치법으로서 제 기능을 발휘하여 다양한 자치조례가 성립되고, 지방의회의 견제역할이 제대로 이뤄지는 경우에는 지역법원, 지역법관의 설치도 가능할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해 본다.
오늘날 지방자치단체가 자치권을 발휘하기 가장 어려운 이유를 재정에서 찾고 있다. 즉 자주재정권의 보장이 이뤄지지 않는 한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은 유명무실하거나 반쪽짜리가 될 수밖에 없다. 법률에 의한 최소한의 기준범위 내에서 지방세에 대한 세목과 세율을 결정할 수 있는 자치권의 보장이 가능하길 기대해 본다.
지방자치 보장을 위한 문제로서 간과하고 있는 문제 중의 하나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감사문제이다. 헌법은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을 보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정감사와 감사원의 무제한적인 감사권 행사에 의해 자치권이 위축되고 지방자치단체의 자기 책임성의 원칙을 훼손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상 몇 가지 지방자치 개헌론에서 논의의 쟁점으로 부각되어야 할 사안을 언급하였다. 이에 대한 문제의 제기가 그동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니 이제 문제제기 차원을 넘어서, 현행 헌법의 개정이 필요하고, 개헌은 지방분권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설계에 대한 논의를 성숙시켜 가야 할 때가 이르렀다. 올해 특히 대선을 맞아 개헌논의가 다시 화두로 대두된 가운데 단순히 대통령의 권력 분산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 개헌의 논의를 성숙시켜 지방분권형 헌법으로의 개정을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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