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글서글한 인상과 달리 거침없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충북도청 ‘섬기는방’에서 만난 김영환 충북지사의 답변은 직설적이었고 망설이는 법이 없었다. ‘충북 홀대론’을 설명할 때는 목소리 톤이 높아졌고 손짓은 더 역동적으로 변했다. 김 지사가 그리는 충북 발전전략의 키워드는 있는 그대로의 충북을 직시하면서 이를 새롭게 해석하는 ‘역발상(逆發想)’으로 이해됐다. 충북에는 바다가 없는 대신 호수가 있고, 항구가 없는 대신 백두대간이 있다며 내놓은 대표 공약 ‘레이크파크 르네상스(Lake Park Renaissance)’도 이런 고민의 결과물이었다. 충북이 대한민국의 변화를 이끌 거대한 ‘테스트 베드’가 될 것이라고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평소 ‘시(詩)보다 아름다운 정치’를 강조하고 있는데 쉽게 와닿지 않는다.
“시는 고통을 먹고 자란다. 고통 때문에 시가 생겨났고 여러 어려움과 환난 속에 시가 나오듯 정치는 시보다 더 많은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데 필요한 장르라는 점에서 같은 부류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한 인간의 고통과 아픔을 표현하는 시보다 정치는 훨씬 광범위한 사람들의 운명을 열어주는 장르인데, 지금의 정치는 그렇지 못하고 불신과 증오의 대상이 돼 있다. 정치를 원래의 역할로 돌려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4선 국회의원, 과학기술부 장관을 역임했지만 도지사로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모두 다루는 종합행정은 처음인데 지금까지 경험이 지사직을 수행하는 데 있어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취임 후 직접 겪어본 충북의 현실은 어떤가.
“무엇보다 지역소멸 위기에 처한 농촌의 처지가 좀 참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도 심각하지만, 지방 내에서도 불균형이 심하다. 지금 출생률 저하와 농촌의 소멸위기가 맞물려 돌아가는데 충북에서 이런 점이 더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펄펄 끓는’ 투자가 유치되고 사람이 몰려드는 청주, 진천, 음성, 충주와 달리 제천, 단양, 보은, 옥천, 영동 등은 지역소멸 위기가 커 충북 내에서도 뜨거운 물과 얼음처럼 공존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총체적 모순을 모두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리더십과 변화를 바라는 도민들의 기대가 클 것 같다.
“도민들은 정부와의 원활한 소통, 협력을 통해 충북에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이끌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나를 도지사로 뽑아 주셨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의 힘에만 의존하고, 스스로 강해지지 않는다면 충북의 지속 가능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과감한 개혁과 혁신으로 힘을 키워야만 하고 그 선봉에 서서 궂은일과 어려운 일을 피하지 않겠다. 충북도정을 대한민국 최고, 세계 최고의 클래스로 만들어 충북에서 산다는 것이 도민들의 자부심과 자긍심이 될 수 있도록 오직 도민만 바라보며 나아가겠다.”
―대표 공약으로 내세운 ‘레이크파크 르네상스’는 무엇인가.
“레이크파크 르네상스는 단순한 관광사업이 아니라 인식의 전환을 통해 지역의 장점을 재발견하고, 충북이 가진 정체성, 브랜드를 바로 세우기 위한 프로젝트다. 충북은 바다가 없는 대신 충주호, 대청호, 괴산호 등 757개의 아름다운 호수·저수지가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어우러진 백두대간을 비롯해 종교·역사·문화유산을 품고 있는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스위스’와 다름없다. 찬란한 이야기와 낭만, 힐링이 가득한 충북을 하나의 거대한 관광단지로 조성해 ‘레이크파크 르네상스’를 실현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충북 홀대론’을 역설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어떤 피해를 보았나.
“홀대론의 시작은 경부선이 잘못 놓인 것하고 관련이 있다. 1960년대 이후 정부의 수출 지향적 공업화 전략으로 수도권, 항만, 경부선을 중심으로 발전 축이 형성되면서 충북은 철도와 도로 건설 등에서 소외되고 차별을 받았다. 지도를 보면 충북과 충남이 병렬로 서 있다. 경부선이 들어올 때 충북과 충남 가운데 어디로 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는데 백두대간이 있는 충북을 피해 충남으로 노선이 돌아가면서 충북이 패싱됐다. 이로 인해 국토 균형 발전의 축이 ‘삐뚤삐뚤’ 잘못 놓이면서 1970년부터 지금까지 우리 국민은 서울에서 부산을 오갈 때 한 시간 반을 공회전하고 있다. 또한, 충북은 수도권 2500만 명이 사용하는 물의 70%를 공급해 주고 있다. 물은 우리 건데 다 수도권에서 쓰고 한국수자원공사는 수천억 원씩을 벌어가면서 우리한테 주는 것은 고작 60억 원이다. 이런 불공정·불평등의 문제가 있어서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지금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충북지원특별법을 추진하는 것도 홀대론을 극복하기 위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나.
“그동안 충북은 댐, 호수와 백두대간의 환경·생태 보전이라는 이유로 중첩규제에 묶여 각종 개발에서 소외돼왔다. 이로 인한 사회간접자본(SOC) 부재로 지역소멸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막대한 피해를 본 충북도민의 희생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이뤄져야 할 시기라고 판단했다. 그동안 받아온 부당한 차별과 희생, 낡은 규제 등을 바로잡고,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차원이다. 주요 내용은 각종 오염원의 호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환경보호시설의 국가 설치, 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철도·도로 건설 지원, 교통망 단절지역의 정주 여건 개선과 SOC 건설을 위한 정부의 포괄적인 지원 등이다.”
―다른 시·도에서 형평성을 문제 삼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복안은 있나.
“그래서 법안에 충북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안 되고 또 충북만을 특별히 지원하는 법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임시로 그렇게 불리고 있지만, 법안의 내용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볼 때 합당해야 한다. 식수와 산업용수를 공급하면서도 각종 규제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고스란히 받는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륙연계발전지역 지원 특별법’ 등 다양한 방향으로 명칭을 검토한 후 타 시·도와의 공통분모를 포함한 법명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특별법 제정이 지역 간 경쟁과 갈등이 아닌 상생발전을 위한 노력이라는 점을 설득해 나가겠다.”
충북도는 지난 16일 충북지원특별법 입법추진위원회 2차 회의를 열고 법안 명칭을 내부적으로 ‘중부내륙연계발전지역 지원 특별법’으로 정했다. 앞으로 주변 시·도와의 연계협력을 통해 특별법 추진을 위한 공감대를 확산해 나갈 계획이다.
■ 김영환 지사는…
시인 · 치과의사 · 국회의원 · 장관 ‘다양한 이력’
4선 국회의원 출신의 김영환(67) 충북지사는 굴곡진 인생을 거치며 다양한 이력을 쌓은 정치인이자, 지금까지 총 10권의 시집을 발표한 시인이기도 하다.
1955년 충북 청주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김 지사는 5세 때 가족이 괴산으로 이주하면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괴산 청천국민학교, 청천중, 청주고를 졸업한 김 지사는 1973년 연세대에 입학한 후 인생의 중요한 길목을 마주하게 된다.
장남이었던 그는 당시 아버지의 건강이 안 좋은 상황에서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치과대학으로 진로를 결정했다. 하지만, 대학 입학 후 엄혹했던 시대상은 그를 유신독재에 맞서는 민주화운동으로 이끌었고 이후 노동운동에 투신하는 계기가 된다. 그는 노동 현장에서 5년간 근무하면서 긴급조치 위반 등으로 고초를 겪었고 이 과정에서 전기기술자 자격증 6개를 취득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 지사는 “집안을 일으켜야 하는 소명이 있었는데 (대학) 그걸 졸업을 못 하고, 학생 운동과 노동 운동을 했다. 또 이런 이력 때문에 결국 정치를 하게 됐는데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김 지사가 32세 때 공장 생산직에 취직해 있다가 해고를 당한 후 썼던 시 ‘단순조립공의 하루’는 민중가요로 다시 태어나 노동계가 파업할 때 제일 많이 부르는 노래가 되기도 했다.
해고 후 대학으로 돌아간 그는 입학 15년 만인 1988년 졸업하고 병원을 개업하면서 치과의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95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한 후 경기 안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안산에서 민주당 계열로 4선(15·16·18·19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재선 의원 당시에는 최연소 과학기술부 장관(2001∼2002년)을 역임했다.
그러나 이후 20대 국회의원 선거(안산 상록을·국민의당), 2018년 경기지사 선거(바른미래당), 21대 국회의원 선거(경기 고양병·미래통합당)에서 연이어 낙선하며 정치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맞는다. 그러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선거캠프에 합류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다. 이어 올해 3월 윤 대통령 당선인 특별고문을 맡으면서 입지를 다졌고 충북지사 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노영민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이기고 당선되며 고향에서 재기에 성공했다.